우리는 이제 막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기존건축물의 수가 700만동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신축건축물만 가지고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한계가 있다. 지금 우리에겐 과감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녹색건축물 정책은 대부분 신축건축물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린리모델링사업이 공공주도로 진행되고 있기는 하나 전체 건설업, 부동산시장에서 파급력을 논하기는 이르다.
2020년 한 해에만 건물수가 3만1,794동 증가해 전체 727만동에 이르렀다. 이는 탄소배출 저감의 잠재력은 바로 기존건축물에서 찾아야 함을 말해 준다. 2050년 탄소중립은 노후화된 기존건축물의 에너지성능 개선 정책과 그 방향에 달려있는 것이다.
기존건물 인증제도 손질 필요
기존건축물의 운영상태를 평가하는 인증제도가 필요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축물 인증제도로 녹색건축인증과 건축물에너지효율등급인증이 있다. 공통적으로 건축물이 지어진 상태의 성능을 서로 비교한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하면 높은 인증등급이 곧 운영·사용단계 높은 성능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효율 1등급 취득 건축물이라도 실제 운영시 에너지소요량은 인증서와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높은 등급을 취득함으로써 환경적으로 우수한 건축물을 지은 건축주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타당하나 왜 인증등급에 맞춰 건물을 사용하지 못하느냐며 사용자로부터 인센티브를 회수하거나 과태료를 부여하는 것은 불합리한 면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능수준이 아닌 운영·사용단계에 맞는 인증제도가 필요하다. 건물 자체는 친환경건축물이 아니더라도 운영을 친환경적으로 한다면 인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 LEED는 건축물이 에너지나 물 절약, 폐기물재활용율 개선 등 친환경적으로 꾸준히 관리되는 경우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평가기준이 신축과는 별도로 운영된다.
준공 후 도서관리절차 법제화
건물의 현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건물정보플랫폼(BIP: Building Information Platform)’도 필요하다. 친환경건축물이 기준과 같이 운영·사용되고 있는지 현장점검을 하려 하면 가장 난감한 점이 도면관리가 대부분 제대로 돼있지 않다는 것이다.
준공 후 필요에 따라 크고 작은 공사가 수시로 이뤄지는데 그 정보(수치, 재료 등)는 어디에도 보관되지 않는다. 법이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현재도 건축물관리법에서 행정조치나 유지관리행위에 대한 기록보관은 의무화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도면관리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신뢰할 만한 도면이 없는 현장에서 과연 어떤 현장점검이 실효성 있게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녹색건축정책에 있어 이제 질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부분 신축건물이 제로에너지건축물로 지어지는 2025년 이후 과연 어떤 정책이 시장에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사뭇 걱정이다.
지금 큰 틀의 방향전환이 없다면 앞으로는 축소지향적 정책으로 시장의 신뢰하락, 해외시장 공략 불가, 신산업과의 확장성 부족 등의 이유로 점점 생기를 잃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관계자들 사이의 진지한 논의를 제안한다.
<정보현 한국그린빌딩연구소(KGBI)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