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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태원 박사(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장)

두 마리 토끼 잡을 BEMS정책 기대한다
기술 수준·산업 현실 직시, 올바른 성장 위한 대비 중요

내년부터 공공기관이 연면적 1이상인 건축물을 새로 짓고자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에너지신산업 활성화와 공공기관의 에너지이용 합리화를 위해 지난 7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을 개정, 고시한데 따른 결과다. 정부는 매년 100여개의 건물에 약 10% 수준의 에너지 절감효과가 예상되는 BEMS를 설치함에 따라 연간 약 200억원 규모의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시에서도 이미 작년에 고시한 건축물 및 정비사업의 환경영향평가 항목 및 심의기준을 통해 연면적 10이상의 건물에 BEMS의 설치를 의무화한 바 있다. 지금까지 권장만 해오던 BEMS를 의무화함으로써 대형 건물의 에너지소비를 계획단계부터 줄여나간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 같이 정부와 서울시가 앞 다퉈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을 명목으로 BEMS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에 대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성급한 시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중앙집중식으로 관리되는 건물들에는 국내 대부분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건물자동화시스템이라는 장비가 설치, 운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최근 건물의 사용자 등 소비자들은 새로운 관리시스템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 제품에 소비자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고 소비자를 만족시킬 만한 제품은 아직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은 과연 어떤 것일까?

 

먼저 BEMS를 포함한 에너지관리시스템은 수행하고자 하는 업무나 적용 대상의 시설에서 에너지소비와 관련된 수집정보를 활용해서 시스템에 저장돼 있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에너지의 효과적인 활용과 절약방법을 찾는 정보화 시스템의 일종이다. 이를 위해서는 분석이나 관리를 위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에게는 이에 관한 원천기술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지금도 정보의 수집을 위한 많은 제품들이 있고 지금도 활용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물론 외국 제품과 이를 모방한 국내 제품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은 요구되는 최소한의 데이터 흐름을 제공할 수는 있을지라도 데이터의 활용 측면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들을 제공하는 제조업체는 공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만 제공할 뿐 데이터의 활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제품이 폐쇄적이라는 데 있다. 즉 지금과 같은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설치한 후에도 기능의 보완이나 추가 등 수정이 불가피한데 이 경우 반드시 원 제조회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즉 기존의 제품에 다른 회사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추가로 설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제조업체의 도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관련 산업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새로운 개방형의 운영체계가 요구되는 결정적인 이유다.

 

제품의 핵심요소인 지식정보가 축적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문제다. 에너지관리시스템은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둔 지식정보서비스 산업의 결정체다. 하드웨어는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소다. 결국 소프트웨어에 담을 내용이 있어야 한다. 적용 대상이나 시설의 에너지 소비내역을 분석하고 또 절약을 유도하는 방법론, 즉 컨텐츠를 말한다. 이들은 시설의 관리업무를 담당해온 전문가인 운영자의 노하우나 운영데이터로부터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부분이 극히 취약하다. 건물분야를 예로 들면 운영데이터는 건물자동화시스템에서 제한적으로 수집돼 자동제어에 이용된 후 일정기간 보관됐다가 사라진다.

 

운영데이터가 수집조차 안 되는 건물은 훨씬 더 많다. 또 건물의 운영관리는 외부관리업체에 위탁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운영자의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관리에 유용한 지식정보가 축적될 리 없다.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이 개발, 보급돼야 한다. 돌이켜 보면 자동화시스템은 1750년대 산업혁명과 1890년대부터 1900년대 초반 전기와 통신기술의 개발을 거치면서 한 세기 이상 우리 산업사회를 지배해 왔다.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인류에게 안겨준 공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배타적인 전문영역을 구축하고 정보를 독식함으로써 갖가지 불평등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들 자동화시스템의 단점과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관리도구가 필요하다.

 

에너지관리시스템은 하드웨어 중심의 자동화시스템에 이를 잘 사용할 줄 아는 유능한 관리자가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능한 관리자의 역할을 소프트웨어가 대신한다. 하지만 여기에 전제가 있다. 관리자를 대신하는 소프트웨어가 시스템 공급업체의 도움 없이도 설치, 운용될 수 있어야 한다. 이 전제를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자동화시스템의 아류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아직 이와는 거리가 멀다. 기존 제품을 대체할 진화된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최근 에너지와 환경 분야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에너지관리시스템은 해당분야 전문가의 경험과 노하우에 바탕을 둔 창의적인 소프트웨어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제조업에 비해 설비투자비가 적어 앞으로 고부가가치 국가 신성장산업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성급한 기대나 성과를 내기에 급급하기보다 관련 기술의 수준과 산업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올바른 성장을 위한 차분한 대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결과적으로 도입효과에 대한 검증이 불충분하거나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은 제품의 도입을 의무화함으로써 정부가 기대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BEMS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낙후된 기술수준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장이 확대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국내 대부분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에 의한 종속이 심화되리란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에너지 소비절약과 온실가스 배출억제는 물론 국가 신성장산업의 발굴,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신중한 정책추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