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환경보호청(EPA)은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2023년 수립한 'Technology Transitions Rule'을 전면 재검토해 최종 개정규칙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냉동공조분야에서 Low GWP냉매로의 전환 의무시한을 최장 6년 연장하며 해당기간 동안 허용되는 GWP 상한선을 대폭 높여 최근 글로벌 추세를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HFC(수소불화탄소)냉매는 에어컨, 냉동창고, 산업용 냉동설비, 반도체 제조공정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아 과거 CFC·HCFC의 대안으로 도입됐지만 이산화탄소대비 수백~수천배에 달하는 지구온난화지수(GWP)가 문제로 지적돼왔다.
이를 배경으로 미국은 2020년 AIM Act(미국혁신·제조법)를 제정해 HFC 생산·소비량의 단계적 감축에 나섰으며 바이든 행정부는 2023년 이 법의 Technology Transitions 조항에 근거해 냉동·공조·히트펌프분야별 냉매 GWP 상한선과 전환 시한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규칙을 공포했다.
그러나 트럼프행정부는 출범 직후인 2025년 3월 이 규칙을 31개 규제완화 우선순위 중 하나로 지정하고 재검토에 착수했다. EPA는 지난해 10월 개정안을 공고하고 공청회와 업계의견 수렴을 거쳐 이번 최종 규칙을 확정했다.
EPA의 관계자는 "비현실적이고 과도한 이행기한이 물가 상승을 유발했다"라며 "기존 규칙이 그대로 시행됐다면 슈퍼마켓의 식품 냉장장비 확보가 불가능했을 것이며 반도체 생산이 중단되거나 가정용 에어컨 설치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개정배경을 설명했다.
분야별 전환 시한 최장 6년 연장
이번 개정으로 슈퍼마켓 냉동시스템은 GWP 150 또는 300 이하 냉매사용 의무시한이 기존 2027년 1월1일에서 2032년 1월1일로 5년 연장됐다. 원격 응축장치(Remote Condensing Units)는 6년이 연장돼 역시 2032년 1월1일이 기준이 된다. 두 분야 모두 그때까지는 GWP 1,400 이하 냉매가 잠정 허용된다. 냉동창고(Cold Storage Warehouse)도 마찬가지로 기존 2026년 1월1일이던 기한이 6년 미뤄져 2032년 1월1일부터 적용되며 잠정기간의 GWP 상한은 700이다.
반도체 제조용 산업공정 냉동설비·칠러(충전량 45㎏ 이하)의 이행시한은 2026년 또는 2028년에서 2030년 1월1일로 조정됐다. 주거용·경상업용 에어컨 및 히트펌프부문에서는 2025년 1월1일 이전에 제조·수입된 GWP 700 초과 시스템의 설치기한(기존 2026년 1월1일)이 사실상 폐지됐다. 재고소진 시까지 계속 설치할 수 있게 되면서 EPA는 수만~수십만대에 달하는 R410A 시스템 재고처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 냉동운송용 인터모달 컨테이너의 적용 제외 온도기준이 냉매진입 온도기준 -50℃에서 컨테이너 내부 온도기준 -35℃로 변경됐으며 실험실용 냉동 원심분리기·진탕기의 High GWP 냉매 제조·수입금지 시한은 2026년에서 2028년으로 2년 연장됐다.
EPA는 이번 개정으로 2026년부터 2050년까지(3% 할인율 기준) 약 9억7,600만달러의 비용이 절감되며 35만개 이상의 고숙련 일자리가 보호될 것으로 추산했다. 동시에 도로용 및 인터모달 컨테이너 운송용 냉동장치(TRU)를 냉매누설 수리의무에서 면제하는 별도의 제안규칙도 공고했으며 이 규칙이 최종 확정되면 추가로 15억달러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 불확실성만 키울 것" 업계·환경단체 우려
이번 개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AHRI(미국냉동공조난방협회)와 책임대기정책연합(Alliance for Responsible Atmospheric Policy) 등 주요 업계 단체들은 이번 조치가 비용 절감 효과보다는 오히려 반대효과를 낳거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전환일정을 준수해 Low GWP 냉매시스템에 이미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제조사들에게는 시장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또한 HFC 사용기한 연장이 AIM Act의 HFC 생산·소비 총량 규제와 맞물리면서 오히려 냉매수급 불안과 가격상승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환경단체들의 반발은 더욱 강하다. 환경조사기관(EIA)의 Avipsa Mahapatra 기후캠페인 디렉터는 "위험한 폭염과 기후재난, 치솟는 에너지비용 속에서 행정부가 가장 효과적인 기후대응 수단 중 하나를 약화시키고 있다"라며 "이는 기후행동과 공중보건, 경제적 확실성 측면에서 무모한 후퇴"라고 비판했다.
이번 개정은 키갈리개정서에 따라 HFC 단계적 감축에 속도를 내고 있는 국제사회 흐름과 역행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럽연합(EU)이 F-Gas 규정을 강화하며 Low GWP 냉매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반대방향으로 선회함에 따라 글로벌 냉매시장 및 친환경 냉동·공조기술분야에서의 경쟁력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EPA는 이번규칙의 근거자료와 세부내용을 연방규정관리시스템(Docket ID No. EPA-HQ-OAR-2025-0005)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