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데이터센터 에너지·용수효율을 시설별로 공개하는 등급제 도입을 추진한다. 일정 규모 이상 데이터센터가 매년 제출하는 에너지·용수 데이터를 활용해 전력사용효율(PUE)과 물사용효율(WUE)을 각각 A~G등급으로 표시하고 전자라벨 형태로 공개하는 방식이다.
EU 집행위원회는 2026년 3분기 발표를 목표로 ‘데이터센터 에너지효율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패키지에는 현재 운영 중인 데이터센터 보고제도의 평가, EU 공통 등급제 도입과 최저성능기준 마련을 위한 후속작업이 포함된다.
다만 8월3일 현재 등급제가 최종 확정·시행된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공개초안에 이어 7월 수정안이 제시됐지만 최종 위임규정은 아직 EU 관보에 게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PUE·WUE 등급구간과 라벨 항목, 최초 발급일은 최종 입법과정에서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EU 집행위 공식 홈페이지도 해당 패키지를 ‘준비 중’인 제도로 안내하고 있다.
EU 데이터센터정책은 △운영데이터 보고 △공개등급 부여 △최저성능기준 도입 등 세 단계로 진행되고 있다.
첫 단계인 보고의무는 이미 시행 중이다. EU 위임규정 2024/1364에 따라 설치된 IT전력수요가 500kW 이상인 데이터센터 운영자는 매년 5월15일까지 전년도 에너지·용수·폐열·재생에너지 관련 정보를 유럽 데이터센터 데이터베이스에 제출해야 한다.
여기서 500kW는 건물 전체의 수전용량이나 계약전력이 아니라 서버·스토리지·네트워크 등 IT설비에 설치된 전력수요를 의미한다. 데이터센터의 수전용량과 IT설비 전력수요를 혼동하면 규제대상 여부와 시설규모가 잘못 산정될 수 있다.
현재 제출자료 중 외부에 공개되는 정보는 회원국별·EU 전체 단위로 집계된 데이터다. 개별 데이터센터의 상세 성능자료는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등급제가 시행되면 이러한 구조가 달라진다. 개별 데이터센터의 보고자료를 바탕으로 PUE·WUE등급과 주요 환경정보가 포함된 전자라벨을 자동으로 만들고 시설별로 공개한다. 즉 데이터센터별 실제 운영성능을 고객사, 투자자와 일반 이용자가 비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UE·WUE 각각 A~G등급 부여
3월 공개초안과 7월 수정안에 따르면 PUE와 WUE에는 각각 별도의 A~G등급이 적용된다. 다만 두 지표를 합쳐 하나의 종합등급으로 표시하는 방식은 아니다.
PUE A등급은 1.15 이하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데이터센터가 IT설비에 연간 100만kWh를 공급할 때 냉각·전력변환·조명 등 비IT설비를 포함한 전체 소비전력을 115만kWh 이하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WUE A등급은 IT설비가 사용하는 전력 1kWh당 물사용량을 0.10L 이하로 관리해야 한다. WUE 1.0은 IT전력 1kWh당 약 1L의 물을 사용하는 수준에 해당한다. PUE와 WUE의 구체적인 A~G 구간은 공개초안에서 제시됐으며 7월 수정안에서도 유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PUE는 데이터센터 전체 에너지사용량을 IT설비 에너지사용량으로 나눠 계산한다. 전체 에너지에는 전기뿐만 아니라 냉각에 사용되는 연료와 다른 에너지원도 포함된다. IT에너지는 UPS 등 규정이 정한 측정지점에서 연간 사용량을 계측한다.
WUE는 데이터센터 경계 안으로 들어온 물의 양을 IT에너지사용량으로 나눈 값이다. 7월 수정안은 기존 ‘먹는 물’ 중심의 개념을 ‘담수 입력량’으로 확대해 하천수·지하수 등 비음용 담수도 관리범위에 포함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폐쇄형 또는 반폐쇄형 냉각수계에서 순환해 되돌아오는 물은 매번 새로 사용한 물로 중복 계산하지 않는다.
‘PUE A·WUE F’도 가능… “종합등급 아냐”
EU 데이터센터등급제를 해석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은 PUE와 WUE가 서로 독립적인 등급이라는 점이다.
증발식 냉각탑이나 직접증발냉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압축식 냉동기 운전시간을 줄여 PUE를 낮출 수 있지만 물사용량이 늘어 WUE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드라이쿨러를 이용해 물사용량을 줄이면 WUE는 개선되지만 고온기 팬과 압축기 운전이 증가해 PUE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한 데이터센터가 PUE는 A등급을 받으면서 WUE는 E 또는 F등급을 받을 수 있으며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공개초안도 PUE와 WUE의 상호의존성과 절충관계, 지역별 물스트레스, 외기조건을 라벨의 설명자료에 포함하도록 했다.
현재 제안에는 PUE·WUE와 재생·저배출에너지, 폐열활용 등을 합산해 하나의 종합점수를 산출하는 방식이 포함되지 않았다. 7월 수정안은 2028년 말 제도를 재검토하면서 종합 지속가능성지표, IT장비 에너지성능지표와 보고자료 인증·감사제도를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이번 제도를 가전제품처럼 하나의 에너지소비효율등급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초기 등급제는 데이터센터의 전력효율과 물효율을 각각 보여주는 공개라벨에 가깝다.
시설명·운영사·위치까지 전자라벨 공개
공개초안에서는 2027년 8월15일까지 첫 번째 전자라벨을 발급하고 이후 매년 갱신하도록 했다. 라벨은 유럽 데이터센터 데이터베이스가 사업자의 연차보고자료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하며 유효기간은 1년이다.
전자라벨에는 데이터센터 명칭과 유형, 운영사, 보고연도, 위치, 시설규모, 가동연도와 QR코드가 표시된다. 이와 함께 PUE·WUE등급, 냉방도일(CDD), 전력망 유연성 제공 여부와 폐열회수 준비 여부 등이 포함된다. 재생에너지 사용정보도 현장 생산, 전력구매계약(PPA), 원산지보증서 등 조달방식별로 구분해 표시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7월 수정안에서는 에너지원을 재생에너지에 한정하지 않고 원자력 등 저배출에너지를 별도로 평가하는 ‘저배출에너지계수’가 추가된 것으로 분석됐다. 원자력의 저탄소전력 인정범위를 둘러싼 회원국 간 이견이 등급제 확정일정이 늦어진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다만 저배출에너지의 최종 표시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전자라벨에 포함된 항목은 개별 시설단위로 공개되지만 운영사가 데이터베이스에 제출한 모든 세부정보가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수정안은 라벨에 표시되는 정보 외 개별 데이터센터의 상세자료는 영업상 비밀로 취급하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500kW 미만 데이터센터와 아직 가동하지 않은 계획·건설단계 시설도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건설단계 데이터센터는 가동 후 2년 내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설계성능을 제출하고 실제 가동을 시작한 뒤 운영데이터로 갱신하는 방식이 제안됐다.
최저성능기준은 별도…‘G등급 퇴출’ 아직 아냐
EU 등급제와 최저성능기준은 구분해야 한다. 현재 제안된 등급제는 데이터센터 성능을 공개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G등급 시설의 운영을 금지하거나 일정등급 이상을 의무적으로 달성하도록 요구하는 기준은 아니다.
EU 집행위는 등급제와 별도로 데이터센터 최저성능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는 2026년 1월 말 시작돼 약 24개월간 진행되며 기존 보고자료와 등급체계를 바탕으로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비례적인 규제기준을 검토한다. 향후 최저성능기준이 도입되면 일정 수준 이상의 PUE나 WUE, 폐열회수, 재생·저배출전력 사용 또는 에너지관리요건을 신규·기존시설에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적용지표와 기준값, 시설규모별 차등 여부, 기존시설의 개선유예기간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등급제가 법적 최소기준보다 먼저 도입되더라도 시장 영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개별 데이터센터의 라벨이 공개되면 클라우드·코로케이션 고객의 시설선정, 공공조달, 녹색금융과 데이터센터 자산가치 평가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정안도 등급정보를 보다 지속가능한 디지털자산과 서비스의 조달에 활용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EU 기존시설, 단순 대입 시 E·F등급 비중 클 듯
EU 집행위가 첫 번째 보고자료를 분석한 결과 770개 데이터센터가 정보를 제출했다. 이는 조사기관이 추산한 EU 전체 데이터센터 수의 약 36%에 해당하지만 전체 추정치에 500kW 미만 시설이 포함돼 있어 법정 보고의무 준수율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6개 회원국에서는 분석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제출되지 않는 등 데이터 완전성과 품질도 충분하지 않았다.
제출된 데이터센터의 PUE는 1.6~1.9 구간에 가장 많이 분포했으며 전체적으로는 약 1.5~2.3 사이에 집중됐다. PUE 1.1 수준을 달성한 시설은 소수였으며 대체로 규모가 크거나 비교적 최근 건설된 시설이었다.
제안된 등급구간을 단순 적용하면 PUE 1.6~1.7은 E등급, 1.7~1.9는 F등급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기존 EU 데이터센터 상당수가 초기 라벨에서 중하위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는 공식적인 등급분포가 아니다. 기존 분석자료의 PUE 구간과 신규 등급구간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며 시설규모, 부하율, 기후, 준공연도와 측정품질도 다르다. EU가 라벨에 냉방도일과 시설규모·가동연도를 함께 표시하려는 것도 단순 PUE 수치만으로 서로 다른 지역과 시설을 비교할 때 발생하는 왜곡을 줄이기 위해서다.
액체냉각 적용, A등급 보장 못해
이번 등급제는 AI 데이터센터 액체냉각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DTC 액체냉각은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공기보다 효율적으로 회수하고 서버팬 운전을 줄일 수 있지만 액체냉각 적용 자체가 PUE·WUE 상위등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CDU 펌프와 시설수계 펌프, 드라이쿨러 팬, 냉각탑과 칠러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데이터센터 전체 에너지사용량에 반영된다. 서버 측 기술냉각시스템(TCS)이 폐회로라고 하더라도 최종 열방출단에서 증발식 냉각탑을 사용하면 보충수 사용량이 WUE에 포함된다. 데이터센터 물효율은 콜드플레이트나 CDU만이 아니라 시설 전체 냉각계통의 경계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특히 PUE는 전체에너지를 IT에너지로 나누는 지표이므로 IT장비 자체의 에너지효율을 직접 평가하지 못한다. 액체냉각으로 서버팬 전력이 감소하면 전체 전력뿐만 아니라 분모인 IT전력도 함께 줄어든다. 반면 CDU와 시설수계 펌프전력은 비IT 전력으로 반영될 수 있어 서버 자체 효율개선이 PUE 개선으로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AI서버 가동률과 랙밀도가 높아 분모인 IT전력이 커지면 절대 전력소비량이 증가해도 PUE는 낮아질 수 있다.
EU 수정안이 향후 별도의 IT장비 에너지성능지표를 검토하도록 한 것도 PUE만으로 데이터센터의 유효연산량이나 전체 에너지효율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온수 DTC와 드라이쿨러를 결합하면 중간기 냉동기 운전을 줄이고 증발식 냉각탑 사용을 최소화해 PUE와 WUE를 동시에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고온 외기조건에서 칠러 또는 증발냉각을 얼마나 가동해야 하는지, 서버가 허용하는 냉각수 공급온도와 실제 부분부하 운전성능을 함께 검증해야 한다.
폐열 ‘실제 활용’ 아닌 ‘준비 여부’ 표시
전자라벨에는 데이터센터가 폐열회수 준비상태인지 여부도 표시될 예정이다. 수정안은 ‘폐열회수 준비 데이터센터’를 외부 수요자에게 폐열을 공급할 수 있도록 열교환기, 전용 수배관계통과 열량계를 설치한 시설로 정의했다. 데이터센터 내부에 승온용 히트펌프가 설치돼 있거나 외부 열수송망이 실제 연결돼 있어야만 준비상태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전자라벨에 ‘폐열회수 준비’로 표시됐다고 해서 폐열이 실제 지역난방이나 인근 건물·산업시설에 사용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 제안에서는 폐열 재이용량을 A~G등급으로 평가하지 않고 외부공급을 위한 기본 인프라 구축 여부를 표시한다.
이 기준은 고온수 액체냉각, 열교환기, 폐열회수용 수배관, 열량계와 승온 히트펌프시장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신규 데이터센터가 운영 초기부터 폐열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향후 연계를 위한 배관과 계측공간을 설계단계에서 반영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정격효율보다 ‘연간 계측성능’ 중요
EU 등급제 시행은 국내 데이터센터 냉각·전력장비기업에도 간접적인 공급조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PUE·WUE등급은 장비의 정격효율을 더해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데이터센터의 연간 운영자료로 산정한다. 고효율 칠러나 CDU를 적용하더라도 시설수계와 제어가 비효율적이거나 IT부하율이 낮으면 데이터센터 전체등급은 낮아질 수 있다.
EU 규정은 데이터센터 전체에너지를 EN 50600-4-2 또는 동등한 방법으로 측정하고 물사용량은 EN 50600-4-9에 따른 시설경계를 기준으로 계측하도록 하고 있다. 냉각에 사용되는 전기·연료와 IT설비 전력, 물유입량, 폐열회수량과 재생에너지 조달량의 측정지점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이에 따라 칠러·CDU·드라이쿨러·냉각탑·펌프·팬·BMS·DCIM기업에는 다음과 같은 대응이 요구될 전망이다.
장비기업은 정격효율뿐만 아니라 외기온도와 냉각수온도, 부하율별 소비전력과 물사용량을 제공해야 한다. 설계사와 시공사는 데이터센터 경계와 IT·비IT 설비의 계측지점을 명확히 하고 부분부하 운전에서도 데이터를 누락하지 않도록 서브미터링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운영사는 라벨산정에 활용되는 원천데이터의 정확성을 확보해야 하며 장비교체와 제어변경이 연간 PUE·WUE에 미친 효과를 검증할 측정·검증체계를 갖춰야 한다. 코로케이션시설은 고객사가 관리하는 IT장비 데이터까지 통합해야 하므로 운영사와 입주고객 간 데이터제공 책임도 계약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향후 EU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냉각설비 발주에서도 단품 COP나 정격냉각용량보다 △연간 PUE·WUE 기여도 △부분부하 성능 △계측데이터 제공 △폐열회수 준비도 △성능보증과 검증방법이 핵심 평가항목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효율제도도 ‘보고–공개–최저기준’ 순서 필요
EU 사례는 국내 데이터센터 에너지효율제도 설계에도 시사점을 준다. 데이터센터 등급제를 도입하려면 먼저 시설 전체와 IT설비, 냉각, 전력변환 및 용수의 측정경계를 통일해야 한다. 사업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산정한 PUE·WUE를 그대로 비교하면 시설성능보다 계측방법의 차이가 등급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EU의 PUE A등급 1.15와 같은 수치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북유럽과 한국의 고온다습한 여름철 냉각조건은 다르며 물스트레스와 재이용수 공급여건도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외기조건, 시설규모, 부하율과 준공연도를 함께 공개하고 동일 조건의 시설끼리 비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EU는 운영데이터 보고제도를 먼저 시행한 뒤 실제 자료를 분석해 등급구간을 마련하고 있으며 최저성능기준은 별도의 장기연구로 검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단기간에 획일적인 PUE 의무수치를 설정하기보다 표준계측, 데이터 검증, 비교등급과 저효율시설 개선지원 순으로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EU 데이터센터정책의 핵심은 PUE 수치를 한 차례 신고하는 데 있지 않다. 개별 시설의 실제 전력·물·폐열·전원조달 성능을 매년 공개하고 이를 조달과 투자, 향후 최저성능규제의 근거로 활용하는 데 있다.
국내 데이터센터 냉각산업도 ‘고효율 장비를 공급했다’는 설명에서 벗어나 해당 장비가 데이터센터의 연간 PUE와 WUE, 물사용량 및 폐열활용에 어떤 성과를 냈는지를 계측자료로 입증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