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모터시장에서 EC모터가 주목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스마트시티 바람이 불고 인공지능, 빅데이터, 5G 등 첨단 ICT가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면서 기반시설인 데이터센터(IDC), 통신인프라 경기전망이 밝아졌다.
다른 축에서는 기후변화와 온실가스라는 위기가 덮치면서 이들 시설의 에너지효율화가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데이터센터, 통신인프라의 냉각을 최소한의 에너지와 비용으로 수행하기 위해 고효율 쿨링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팬·모터시장은 EC(Electronically Commutated)모터 경쟁의 장으로 변모할 전망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EC모터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팬·모터산업을 둘러싼 시장상황을 점검한다.
모터, 국내 전력소비 54% 차지
모터는 기계설비·생산설비·가전제품 등 사용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어 국내 총 전력사용량의 54%를 차지할 정도로 에너지소비량이 크다. 모터효율을 1%만 높여도 전력소모량이 0.5%가량 줄어든다. 즉 모터효율 1%가 발전소 개수를 좌우할 수 있다는 말이다.
팬 역시 HVAC분야만 해도 에어컨, 공조기, 환기장치, 항온항습기, 냉동·냉장설비, 송풍기 등 수많은 분야에 적용된다. 에너지절감이 기계설비분야 최대 화두인 지금 팬·모터산업도 국가적 수요관리 관점에서 잠재력이 크다.
그러나 아직 사회적으로 팬·모터 에너지성능개선 의지가 크지 않다. 개별설비·기기에 적용되는 팬 단일기기의 에너지소비량이 적기 때문이다. 제조기업에게는 고효율 팬·모터로 교체 시 원가상승요인이 되고 발주처·소비자에게는 초기투자비 증가부담이 큰 만큼 시장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신규설비의 프리미엄급 전동기(IE3) 의무화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체주기가 15년에 달하고 일부 의무화대상 예외조항이 있어 교체율이 미미한 실정이다.
AC·DC모터 ‘일장일단’
모터는 입력전압의 종류에 따라 AC모터(교류), DC모터(직류)로 나뉜다. AC모터는 60Hz로 방향이 주기적으로 변하는 전류를 이용한다. 모터 내부의 코일과 전류가 만들어내는 자기장에 의해 회전자를 동작시키는 원리다.
AC모터는 일반적으로 수명이 길고 내구성이 강하며 악조건을 견딜 수 있어 산업용 등 대형기기에 유리하다.
다만 정격속도(RPM)가 고정돼있어 항상 100% 최대속도로 가동해야 해 에너지절감효과가 낮다. 인버터를 연결해 주파수를 변경함으로써 부분부하운전이 가능하지만 인버터를 가동하기 위한 전력을 고려하면 에너지절감에 한계가 있다.
DC모터는 배터리, 태양전지, DC변환기 등 직류전원을 사용하는 모터다. 고정자로 영구자석을 활용하고 회전자로 코일을 사용해 구성한 것으로 코일에 흐르는 전류방향을 전환함으로써 자력의 반발·흡인력으로 회전력을 생성시킨다.
DC모터는 AC모터보다 내구성이 약하고 비용이 비싼 단점이 있으며 고속화가 어렵다. 그러나 효율이 좋고 인버터 제어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비교적 작은 설비·기기에 사용하기 적합하다.
모든 DC모터는 단상이며 브러시*의 유무에 따라 일반DC모터와 BLDC(Brush less DC)모터로 구분된다. 브러시가 있는 DC모터는 구조상 물리적으로 접점이 있기 때문에 소음이 크고 마찰에 따라 내구성이 낮은 편이다.
BLDC모터는 마모되기 쉬운 브러시를 제거해 내구성이 높으며 고속회전에 무리가 없다. 또한 소음이 작고 에너지효율이 높으며 속도제어가 가능하다. 다만 비용이 비싸다.
EC모터, 인버터기능 내장
EC모터는 BLDC모터에 외부에서 제어신호를 보낼 수 있는 장치를 탑재한 모터다. BLDC의 인버터제어를 위해 외부에서 전류방향전환 신호를 보내는 장치를 별도로 탑재한다. EC모터는 이를 일체화·콤팩트화한 모터다.
EC모터는 회전자의 위치에 따라 외륜구동과 내륜구동으로 나뉜다. 외륜구동은 회전자가 외부에 위치해 회전함에 따라 내륜구동에 비해 회전 시 동적균형을 최적화할 수 있다.
회전부품의 무게가 양쪽 베어링에 치우침 없이 고르게 배분됨에 따라 베어링의 수명을 높인다. 통상 모터를 이루는 부품에서 베어링의 수명이 가장 짧기 때문에 베어링의 수명은 곧 모터의 수명이다.
또한 냉장·냉동부품으로 사용 시 내륜구동과는 달리 찬공기가 모터를 지나치는 구조여서 자체 냉각을 통해 모터수명이 증가한다.
EC모터는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이미 IE4기준을 만족하는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가격은 일반제품대비 350%에 달하지만 에너지절감률이 높아 투자비회수기간이 짧다. 프로젝트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2~3년 이내로 나타났다.
다만 EC모터는 대형화가 곤란해 정격출력이 가장 큰 제품이 약 12kW, 15마력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동기 효율규제 ‘허점’
한국에너지공단은 효율등급제도로 600V 이하 저압전동기의 효율을 규제하고 있다. HVAC에 주로 사용되는 모터가 삼상유도전동기다. 이는 저압유도전동기라고도 불리며 AC모터의 일종이다.
통상 효율등급제도는 1~5등급을 부여하고 최저소비효율에 미달하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지만 삼상유도전동기는 최저소비효율만 제한하고 있다.
삼상유도전동기의 소비효율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 따라 정격출력 7.5kW 기준으로 IE1(일반효율, 87.5%), IE2(고효율, 89.5%), IE3(프리미엄, 91.7%), IE4(슈퍼프리미엄, 92.4%) 등으로 구분돼 있다.
우리나라 삼상유도전동기의 최저소비효율은 IE3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단계적으로 의무화돼 현재는 정격출력 0.75kW~375kW까지로 확대됐다.
그러나 IE3사용은 저조한 실정이다. 슈퍼프리미엄급 전동기를 요구하는 유럽시장에 비해 우리나라는 프리미엄급을 요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이마저도 기준이 강화된 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도 많은 사업장·건물에서 IE2를 사용하는 실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사용비율은 IE1이 94.4%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IE2가 3.9%, IE3가 1.7%에 그친다.
산업용전동기의 내구연한이 15년 이상으로 길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에서 사용하거나 현장에 적용할 수 없는 경우, 해당용량이 아닐 경우는 교체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규정이 있다. 2018년 10월 이전 생산된 제품도 IE3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산업부는 문제를 인식하고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하 에기본)을 통해 2030년까지 7.5kW기준 최저소비효율을 4.2%p 높인 91.7%로 규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에너지효율향상 의무화제도(EERS)를 2020년까지 의무화함으로써 IE3전동기 교체를 독려할 계획이다.
그러나 에기본은 장기계획이다. 기준강화가 10년 이후에나 이뤄지게 되며 EERS를 도입하더라도 어느 정도 규모로 확산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에 더해 에너지공단에서 효율을 규제하는 것은 AC모터 중에서도 일부인 삼상유도전동기뿐이다. DC·EC모터는 물론 모터·부하기기 결합 후 효율 역시 관리되지 않고 있다.
EC모터, 명분·기회 모두 갖춰
현재 모터는 국내 최고효율인 프리미엄급(IE3)의 경우 소비전력에 따라 77~96%까지 나오고 있어 나쁘지 않다. 그러나 모터와 팬을 결합할 경우 완제품의 에너지효율은 20~30%대로 급격히 떨어진다.
이비엠팝스트코리아의 관계자는 “모터의 에너지효율은 부하기기가 결합한 상태에서 완제품의 효율을 측정해야 한다”라며 “모터효율을 더욱 끌어올려야 하고 이에 더해 팬이나 임펠러**가 저항을 덜 받도록 형상을 디자인함으로써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도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 규제는 강력하지 않은 반면 유럽은 2015년 규제를 강화했고 2020년 한 차례 더 강화를 앞두고 있다”라며 “우리나라도 비슷한 방식의 규제가 시행되면 EC팬의 개발, 제조, 사용이 많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은 에너지관련제품(ErP) 규정으로 팬·모터 결합제품의 에너지효율을 규제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10kW 모터를 만들 경우 팬·모터효율이 40%가 돼야만 유럽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기준은 2020년 강화돼 슈퍼프리미엄급(IE4)을 사용해야 하며 팬모터의 효율도 50%로 상향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기존 AC모터대비 효율이 좋은 BLDC모터,나아가 EC모터가 시장에 확산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EC모터는 BLDC모터에 인버터기능을 하는 장치를 세트로 구성한 제품이다.
우리나라 프리미엄 팬·모터, EC모터시장은 이비엠팝스트, 질라벡 등 글로벌기업이 활약하고 있다. 이어 태양전기가 최근 자체적으로 EC모터를 개발해 이들을 추격하고 있으며 대륜산업 등 송풍기·모터분야 기업들이 EC모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한국 팬·모터시장에서 국내·외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조짐을 보이는 것은 고효율 팬·모터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에 더해 시장성도 높기 때문이다.
국내 미흡한 의무화제도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센터, 5G 통신시설 등 기반시설의 확산에 따라 프리미엄 팬모터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지속적으로 몸집을 불릴 전망이어서 기업들이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조치에 착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비엠팝스트의 관계자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대비 한국시장은 작지만 최근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급증하고 있다”라며 “또한 5G 등 인프라확충에 따라 통신사를중심으로 에너지 및 유지관리비용 절감을 위해 유럽수준의 EC기술을 적용한 팬모터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시장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조만간 국내 전동기기준 역시 IE4에 준하도록 기준이 강화될 전망이어서 이 역시 시장확대를 가속화할 요소로 지목된다”고 밝혔다.
독일 프리미엄 EC팬모터 질라벡 제품을 국내 독점공급하는 JAT의 관계자도 “에너지세이빙이 화두가 되면서 장비의 효율적 운용이 중요해지고 있다”라며 “이를 위한 프리미엄 팬모터 필요성도 증대됨에 따라 속도제어, 자동제어기능이 포함된 EC모터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위 고급환경을 필요로하는 클린룸, 데이터센터 등에서 효율을 극대화하고 정밀하게 제어하기 위해 EC모터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추세”라며 “최근에는 일반 건물에서도 공조기의 제작크기가 줄고 팬룸의 사이즈를 줄일 수 있어 건축물의 공간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에 따라 EC팬을 도입하는 등 변화가 감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