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 시 발생하는 발암물질 ‘조리흄’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2010년 조리흄을 폐암 위험요인으로 분류했다. 이후 세계적으로 조리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으며 국내에서도 ‘제5차 실내공기질관리기본계획’에 조리공간 맞춤형관리가 포함되는 등 여러 조치가 행해졌다. 그러나 아직 조리흄과 관련된 법적 강제성이 부재하며 국내 실정에 맞는 연구도 부족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학교 급식실을 비롯한 다중이용조리시설 노동자는 조리흄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2년 17개 교육청에서 4만4,548명 급식종사자에 대한 건강검진을 실시한 결과 폐암의심환자 379명(0.85%) 및 폐암확진자 52명(0.12%)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인 여성(35세 이상 65세 미만) 폐암발병률 0.0288%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노동자건강 및 학생안전과 직결된 조리흄을 해결하기 위해서 법제화‧모니터링체계‧통합발주 도입 등 실질적 개선방안이 필요하다.
조리흄 연구부족 및 법적 규제 부재
조리흄이란 조리 시에 발생하는 흄(Fume)으로 입자상 대기오염물질의 한 종류다. 입자크기는 0.03~0.3㎛으로 매우 작아 PM2.5기준을 가진 현행 대기오염물질 관리 법령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일반적으로 급식종사자가 노출될 수 있는 조리흄 입자는 △TVOC(총휘발성유기화합물) △포름알데히드 △이산화탄소 등으로 다양하다. 위 오염물질에 대한 개별연구는 존재하나 조리흄에 대한 통합적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대부분 외국(중화권)에서 수행된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국내환경에 적합하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연구부족 외에도 법적 규제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조리흄 관리는 △교육부 △고용노동부 △환경부 등 여러 부처가 관여해야 하는 복잡한 사안이다. 그러나 현재 각 부처가 담당하는 영역이 분리돼 있어 일관된 정책추진이 어렵다. 미국에서는 산업안전보건청(OSHA)을 통해 주요 유해화학물질의 허용기준을 정하여 관리하며 초과여부에 따라 벌칙을 부여하는 규제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조리흄을 명확히 측정하여 파악하는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이와 관련한 제도를 세우기가 힘든 상황이다. 우선적으로 조리실 내 조리흄을 측정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며 지자체별 조례 제정을 통해 법적 강제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통합관리 모니터링체계 도입 시급
교육부는 2022년부터 급식종사자 호흡기질환 예방을 위해 조리실환경 개선사업을 추진해왔다. 경상남도 교육청의 경우 전체 970개교 중 2023년까지 151개 학교를 개선했으며 나머지 819개교에 학교당 약 3,000만~3억원을 투자해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서울‧경기‧세종 등 7개 교육청도 2027년까지 관내 학교 급식실 환기시설 개선에 약 9,064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조리흄 저감을 위해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단순한 공조‧설비 공사만으로는 학교 조리실 환경 개선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홍천상 고려대학교 교수는 “공조‧설비 부문만이 아니라 오염물질 관점에서 조리흄 저감방안을 검토해야 된다”라며 “조리흄을 단순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농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이에 맞춰 설비를 효율적으로 가동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매뉴얼은 급기‧배기설비 설치 및 관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효율적인 오염물질 제거를 위해서는 통합적인 환기시스템 관리가 선행돼야 한다. 조리실 내 조리흄 농도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국소지역센서를 활용해 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공기흐름에 따른 급배기비율을 설정하고 설비를 최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특정 오염물질 농도가 높을 경우 이를 외부로 배출할 때 2차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필터처리도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IoT기술을 적극 도입해 조리흄 모니터링체계를 구축해야할 필요가 있다.
설계‧시공 분리발주 문제... 사후관리 의무화 필요
급식실 환기시설 공사가 진행될 때 설계와 시공이 분리돼 발주되는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경우 사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각 과정에서 검수 시 문제가 없었다는 것만 증명하면 시정을 요구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설계와 시공을 통합해 입찰하며 검수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부여하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환기설비 설치 후 설계에 맞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테스트의무화와 함께 최소 2~3년에 한 번 정기점검을 시행해야 한다. 필터 교체와 덕트 내부 청소가 정기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환기성능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 실제 현장조사에 따르면 후드와 연결된 배기덕트에 유증기가 누적돼 심각한 오염이 발생했으며 오염물질 재비산으로 인한 2차 피해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급식실 조리흄 문제가 개선된 후에는 군대 조리실 등 다른 다중이용시설로 관리체계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 뉴욕시는 2023년 1월부터 대기환경법에 요리매연을 관리 대상으로 포함시켰으며 일주일에 397kg 이상 고기를 소비하는 레스토랑에 요리매연 저감 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급식조리원과 종사자들이 조리흄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됐으나 체계적 관리와 예방대책은 미흡했다”라며 “지금부터라도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조리흄 측정기준을 마련하며 이를 미세먼지 배출원으로 포함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