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여름 한반도를 덮쳤던 기록적인 폭염은 우리에게 지구온난화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줬다.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에어컨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으며 문득 우리가 지금 누리는 쾌적함이 미래의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냉방을 위한 전력소비 증가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고 더워진 지구는 다시 더 많은 냉방을 요구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힌 듯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냉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에 달한다.
이는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약 14%)의 절반 수준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더욱이 기온 상승 추세가 지속될수록 냉방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 자명하다.
도시화와 소득 수준 향상 또한 냉방기기 보급을 가속화하며 이는 다시 전력망에 막대한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여름철 전력피크 시간대에는 냉방이 전체 전력수요의 30~40%에 육박할 정도로 그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냉방전력이 전력수급 안정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범임을 시사한다. IEA가 최근 전력사용량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인공지능(AI)기술 발전과 함께 지구온난화로 인한 냉방수요 증가를 꼽은 것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AI 데이터센터의 냉각은 이미 엄청난 전력을 소모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청정냉각기술 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바로 ‘청정냉각(Clean Cooling)’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도입이다.
기존의 에너지다소비적인 냉각방식에서 벗어나 에너지효율을 극대화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혁신적인 냉방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해야 한다. 특히 냉방기술의 접근 방식은 용도에 따라 달라져야 함을 인지해야 한다.
데이터센터 냉각의 경우 주로 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배출하고 온도만 낮춰서 일정한 작동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사람이 생활하는 건물냉방은 단순히 온도를 낮추는 것을 넘어 습도까지 함께 떨어뜨려야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고온다습한 여름철에는 습도만 낮춰도 체감온도가 크게 떨어져 냉방 에너지사용을 줄일 수 있다.
이에 따라 데이터센터 냉각은 주로 공기 또는 액체냉각 효율을 높이는 기술에 중점을 두는 반면 건물냉방은 냉매사용을 줄이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기술,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냉방시스템, 특히 제습냉방기술과 같이 습도 조절에 특화된 기술개발이 필수적이다. 습도조절방식은 적은 에너지소비로도 충분한 쾌적함을 제공하며 에너지절감 효과가 매우 크다.
더 나아가 이 제습냉방기술은 향후 큰 성장세가 예상되는 공장형 스마트팜에 적용될 경우 막대한 잠재력을 가진다. 스마트팜은 작물 생육에 최적화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항온·항습을 유지해야 하는데 식물로부터 발생하는 다량의 수증기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스마트팜 연구는 자동화나 재배기술 등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해 엄청난 에너지소비 문제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나 효율적인 냉방기술 개발이 부족하다.
이러한 에너지 비효율성은 스마트팜 보급 확산에 큰 장애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제습 냉방기술은 스마트팜의 에너지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농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기술이 될 것이다.
미국의 여러 연구기관과 기업들은 이미 이러한 청정냉각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사전 조치·사후 검증, 저질 제품 퇴출
이러한 기술개발 및 보급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현재 시행 중인 에너지효율등급제와 같은 사전 조치는 물론, 설치 후 실제 에너지사용량 측정과 성능검증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제품 출시 단계에서 아무리 효율이 높다고 홍보해도 실제 사용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에너지소비가 발생하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능 저하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저질 제품의 경우 인증만 어떻게든 통과하고 그 이후의 관리가 소홀한 틈을 악용해 실제 성능과는 거리가 먼 제품을 버젓이 출시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행태는 청정냉각기술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떨어뜨리고 궁극적으로 에너지효율 개선이라는 목표 달성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냉방기기 설치 후 정기적인 에너지사용량 측정 및 데이터 공개를 의무화해 실제 에너지절감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건물의 에너지성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해 냉방시스템의 효율성을 유지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사후관리제도는 소비자들이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하도록 돕고 기업들로 하여금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통해 더욱 효율적인 청정냉각기술을 개발하도록 독려하며 저질 제품의 시장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신정부 기후정책, 청정냉각 시너지 기대
새롭게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의 기후변화대응 정책 방향은 이러한 청정냉각기술의 중요성과 맥을 같이 한다.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에너지정책을 추진함에 있어냉방부문의 효율 개선은 핵심적인 과제다.
정부는 에너지효율이 높은 냉방시스템 개발 및 보급을 장려하고 관련 기술 투자를 확대하며 기업들의 기술 혁신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특히 스마트팜과 같은 신성장산업분야에서 청정냉각기술이 활발히 적용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에너지효율등급제를 강화하고 친환경냉매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정책적 노력을 통해 시장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나아가 글로벌 기후변화대응에 기여하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지구는 우리 모두의 집이며 현재의 위기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긴급한 과제다. 끓어오르는 지구를 식히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우리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가 청정 냉각기술 개발과 도입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때다.
터무니없는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의 삶에 와닿는 실현 가능한 ‘반값 냉방기술’이 엄연히 현존한다. 현명하고 효율적인 냉방을 통해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과연 우리는 이 중요한 전환점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할 준비가 돼 있는가?
<홍희기 경희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