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계통영향평가 ‘초읽기’… 韓 DC산업 퇴출위기 촉발

  • 등록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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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평가방법‧내용‧절차‧체계‧파장 등 제도전반 우려 제기

 

전력계통영향평가가 데이터센터(DC)산업에 치명타를 가할 전망이어서 업계 전반에 위기감과 분노가 팽배하다. 전력계통영향평가는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이하 분산에너지법)’ 시행에 따라 새롭게 마련된 제도로 에너지다소비시설이 전력계통 포화지역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방지함으로써 계통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력계통영향평가는 국내에서 10MW 이상 전기를 사용하려는 사업자가 실시해야하는 것으로 기존 전력수전예정통지를 대체한다. 인허가 신청 3개월 전에 전력계통영향평가 대행자를 통해 평가서를 작성한 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해야 한다. 산업부는 접수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개선조치를 통보해야 한다.


평가항목은 기술적 항목과 비기술적 항목으로 나뉜다. 기술적항목은 △전력공급 여유 △전력공급 여유 확보 난이도 △적정전압 유지가능 여부 △전력공급 영향 최소화 방안 △부지제공을 통한 공급능력 확보기여 여부 △적정전압 신청여부 등이다. 비기술적 항목은 △지역사회 수용성 △사업안정성 △지방재정 기여도 △산업활성화 효과 △지역낙후도 △전력자립도 △해당지역 지원사업 △특별법 지원사업 대상 여부 등이다.


지난 6월14일 분산에너지법 시행에 앞선 5월30일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운영에 관한 규정’이 행정예고되면서 세부내용이 공개되자 걱정반 기대반이었던 업계는 우리나라 DC산업 존폐에 까지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강승훈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KDCC) 팀장은 “전력계통영향평가는 제도체계 측면으로나 내용측면으로나 합리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 DC산업에 대한 이해가 전혀없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라며 “제도개발에 누가 관여했는지 공개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DC산업생태계, 구조, 시스템, 밸류체인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행정예고 이전 내용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데다 업계 의견수렴을 위한 절차를 단 한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준화 한국데이터센터에너지효율협회(KDCEA) 사무국장은 “제도가 철회되거나 대대적으로 수정되지 않는 이상 국내에서 DC사업은 불가능한 상황이며 전 세계적인 AI산업 성장에 따라 각국이 치열한 투자유치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며 “우수한 지리적입지와 인프라, 숙련기술자 등을 무기로 높은 잠재력을 평가받아 온 우리나라지만 이미 해외 투자자들이 이탈하기 시작했으며 국내에서 활동하던 많은 기업들도 해외로 떠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평가항목 조목조목 비판
DC업계는 현재 발표된 전력계통영향평가의 평가방법 및 내용, 절차, 체계, 파장 등 제도전반에 대해 우려를 제기한다. 평가방법상 사업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평가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총배점 100점 중 70점 이상을 획득해야 하지만 이를 만족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실정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적 평가항목 중 ‘전력공급 여유’ 항목에 따라 여유지역일수록 배점이 높지만 이러한 지역에서는 배전망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음에도 ‘전력공급 여유 확보 난이도 배점’ 항목에서 공사가 필요할수록 배점을 낮게 부여토록 하고 있어 모순이 된다.


또한 ‘자가발전 운전계획’ 항목은 계약전력 50% 이상 용량을 확보하면 만점을 부여한다. 이에 대해 업계는 통상 태양광 1MW를 설치할 때 1만㎡에 육박하는 부지가 필요하므로 최근 추세인 DC용량 20MW를 기준으로 20만㎡(약 6만평) 부지가 필요하게 돼 불가능한 조건이라고 토로한다.


비기술적 평가항목의 경우 반발이 더욱 크다. 제도 취지인 전력계통과 무관함에도 총 배점의 40%를 차지하는 데다 지자체의 자의적 판단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수용성 배점’ 항목은 광역‧기초 지자체의 동의 및 재정지원 여부가 포함될 경우 배점한다. 업계는 지자체가 사업을 담보로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경우, 사업자가 지자체의 동의를 얻기 위해 음성적 로비를 하는 경우 등 우려되는 상황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경우 프로젝트의 건전성, 사업성은 물론 사회‧경제적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업 안정성’ 배점의 경우 사업주의 자기자본 비율이 30% 이상, 업계평균 총사업비 70% 이상, 사업주 신용평가 등급 BBB 이상일 경우 만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수전규모를 평가받기 위해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진행해야 하는데 전력을 얼마나 수전받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투자자 및 상면임차자(테넌트) 유치가 불가능하므로 사업비를 책정할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또한 AWS, MS, 구글 등 해외자본을 포함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사업이 추진되는 특성상 사업주의 자본비율 및 신용등급만으로 안정성을 평가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에 대해 최성준 산업부 전력계통혁신과장은 “사업비 확정 전이라도 계통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대행자를 통해 잠정적인 윤곽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므로 점수를 매길 수 있다”라며 “또한 계통영향평가와 투자자 유치의 선후관계는 DC업계의 현재 사업모델인 것이며 법으로 정해진 사항이 아니다”라고 밝혀 제도시행에 맞춰 업계가 대응하면 된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력계통 부담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전력을 운용하자는 것인데 잠정적 내용이나 투자유치 목표를 기반으로 한 불확실한 사업계획으로 수전용량을 결정하는 것이 이번 전력계통영향평가의 취지인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직접고용 효과’ 항목도 문제로 지적된다. 직접고용이 300명 이상일 경우 만점을 받을 수 있지만 DC는 직접고용보다도 대규모 건축‧설비투자에 따른 파급효과나 DC운영을 통한 서비스활동 등으로 주변산업에서의 고용파급효과가 크다는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순기능 미미한데 부작용 치명적” 지적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존 체계에 비해 새로운 제도시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편익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전력계통영향평가 시행취지는 계통안정성 확보이며 수도권, 대도시 등 계통집중화 현상을 완화하고 전력공급에 여유가 있는 지역으로 수요를 분산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마련된 성격이 짙다.


최성준 산업부 과장은 “계통이 뒷받침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도권에 DC가 밀집된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추가로 기획되는 현상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접근토록 하려는 목적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준비 중인 제도는 계통포화지역이 아닌 전국을 대상으로 시행토록 하고 있어 계통에 여유가 있는 비수도권으로 입지를 정해 사업을 추진코자하는 경우에도 통과가 어려운 절차를 따르도록 해 비판이 거세다.


이에 대해 최성준 산업부 과장은 “계통포화를 행정구역 단위로만 지정하기 어려우므로 개별적 입지상황을 판단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업계는 현행 제도로도 전력수요 포화지역에 대한 진입 차단이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산업부는 지난해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5MW 이상 에너지다소비시설이 전력계통에 지나친 부담을 주는 경우 전기공급을 거부할 수 있게 했다. 또한 한국전력 공급약관 개정을 통해 대규모 전력사용시설의 전기사용 신청취소 및 전기사용 계약해지 조건을 신설했다.


이번 제도시행을 통해 기대되는 효과로 제시되는 DC사업의 부동산 투기화 현상에 대해서도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크다는 의견이 앞선다.


국내 대표적 투자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통해 사업화 가능성과 관계없이 무분별한 DC계획을 방지한다는 취지일 수 있다”라며 “그러나 현재 내용대로라면 사업가능성을 낮추고 비용만 높이게 돼 사업성 악화에 따른 투자유치 실패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강승훈 KDCC 팀장은 “수전예전통지 허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일정기간 동안 사업이 진행되지 않거나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사업취소를 강제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가 있는 부분만 제거할 수 있는데도 전방위적으로 비합리적인 규제를 설치하는 것은 오히려 DC산업을 퇴출시키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여인규 기자 igyeo@kharn.kr
저작권자 2015.10.01 ⓒ Kha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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