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입니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 속에서 탄소중립을 향한 노정을 겪고 있는 우리가 모두 그 나그네일 것입니다. 의무화 중심의 강한 바람보다는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따뜻한 햇볕이 탄소중립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건물부문 탄소중립에 대해 우리나라는 그간 나그네의 행동변화를 위해 대부분 규제 중심으로 강제적인 조치를 취해 왔습니다. 제로에너지건축물(ZEB)인증 의무화가 그렇고 녹색건축물인증(G-SEED)이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공건축물 신재생에너지 의무도입비율, 친환경주택 에너지효율화, 건축물 에너지절약 설계기준, 건축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 의무설치 등 많은 의무제도가 시행 중입니다.
ZEB인증 의무화 대상확대, 공공건물 그린리모델링(GR) 의무화, 서울시 온실가스 배출 총량제 등 다른 의무화조치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의무대상이 아닌 건축물이 이러한 조치를 하면 제한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으며 그나마 건축기준 완화를 통해 투입비용을 일부 보전해주거나 융자금액에 대한 이자를 일부 덜어 주는 수준입니다.
물론 기후위기 대응을 통해 전 인류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대의를 위해 행동을 강제하는 조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공동체에 바람직한 공리적, 공익적 방향성에 개인을 동참시키는 더욱 강력하고 지속성 있는 조치는 스스로 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행동변화를 이끄는 더 큰 동인은 의무화보다는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며 관건은 이익이 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가입니다.
험난한 탄소중립 여정, VCM으로 햇빛 비춰야
건물부문 탄소중립은 많은 비용이 소요됩니다. 단열, 열교, 기밀 등 외피성능 강화를 위해 고성능 자재와 정밀시공이 필요한 것은 물론 고효율설비, 하이테크 엔지니어링시스템 등 에너지절감 냉난방공조 기계설비가 적용돼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값비싼 신재생열 및 전력생산설비를 대규모로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고비용 구조를 오히려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방안으로 VCM(Voluntary Carbon Market: 자발적 탄소시장)이 필요합니다. 이는 그간 주력해 온 CCM(Compliance Carbon Market: 규제적 탄소시장)보다 한발 더 나아간 고도의 시스템진화입니다.
VCM은 인증평과기관의 검증을 통해 탄소중립 활동으로 절감한 배출량만큼 ‘탄소크레딧’을 얻어 크레딧이 필요한 대상에게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얻는 시장입니다.
기업·기관은 ESG경영, RE100 동참 등을 위해 탄소크레딧을 실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크레딧 구매를 위한 비용을 지출하게 됩니다. 개인도 다양한 주체의 탄소중립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부차원에서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은 고효율 에너지설비로 교체하고 완전히 새로운 혁신적 신기술 HVAC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조치로 에너지와 탄소배출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직접적 에너지비용 절감효과를 매년 누적하는 것에서 나아가 탄소크레딧 판매를 통해 초기투자비를 낮춤으로써 투자비용회수기간(ROI)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리나라는 정부는 이러한 시스템을 정착하기 위한 정책·제도 및 기준·가이드라인을 정립해야 하며 기관은 에너지절감 신기술·신제품이 원활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신뢰도 높은 인증평가기준과 방법론을 개발해야 합니다.
일선 현장에 있는 HVAC기업들도 정확한 평가를 통해 투자자가 실익을 얻을 수 있도록 정부와 기관에 전문성을 제공하기 위해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특히 탄소크레딧이 원활히 거래되고 유통될 수 있도록 많은 주체의 참여를 이끌어낼 접근성과 신뢰성이 우수한 플랫폼도 등장해야 합니다.
VCM이 건물부문 탄소중립시장에 따뜻한 햇볕을 비춤으로써 사회구성원들이 탄소중립 활동을 하기에 유리하도록 온화한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