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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택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시절부터 바이오의료, 에너지환경, 공공안전, 미래교통, IT서비스를 5대 중점산업을 선정하고 이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 중 에너지분야는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20년간 육성하면 500조원 수출규모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6월 취임한 임춘택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은 국방과학연구소를 시작으로 청와대 행정관,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 및 원자력·양자역학과 교수, 광주과학기술원 융합기술원 교수를 두루 역임했다.

에너지분야 전문가인 동시에 다양한 국정경험을 가진 정책전문가인 임춘택 원장은 지난 6월12일 에너지 전문기자단 간담회를 통해 국가 에너지산업발전에 대한 견해를 거침없이 밝혔다.

■ 혁신이 강조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국방, 원자력·재생에너지, 항공·우주분야에서 오랜기간 몸담고 종사해왔다. 이 세 분야의 공통점은 모두 보수성이 강하며 정부주도로 산업이 육성돼왔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앞선 세 가지분야에서 보수적 가치를 매우 중요시했다. 안정적 운영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항공·우주는 한 번 실행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에 10~20년 이상 사용하고 검증이 끝난 부품들을 사용한다. 고장이 안나게 만들기 위해서는 보수적 가치가 빛을 발휘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가치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부작용이 생긴다. 원자력분야에서는 정부가 연 6,000억원을 투자해 기술개발을 해도 실제로 산업에 적용되는 것은 거의 없다. 이는 구조적 문제로 보수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사례다.

보수는 안정성, 진보는 혁신과 도전을 대표함으로써 모두 소중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는 예전에 중요시 여기던 가치가 도전을 받고 있으며 진보적 가치, 즉 혁신이 세 산업에서 다 부각되고 있다.

민간기업이 통신, 교통, IT 등에서 빠른 기술발전을 보이다보니 전통적으로 보수적 분야에 갖혀있던 국방, 우주항공, 에너지도 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글로벌 추세다.

미국의 이라크 파병에도 민간이 파병한 병력이 정부군의 두 배 이상이었을 정도로 국방분야도 민간이 정부를 앞서나가고 있으며 우주개발 역시 민간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에너지분야도 혁신과 변화를 추구해야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에기평이 에너지 R&D를 하는 이유가 이러한 목적이다.

■ 국내 에너지산업 전망은
그동안 국내 에너지산업은 내수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대표적인 에너지공기업 한전은 매년 40조원 이상의 매출을 국내에서 올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수출경쟁력이 매우 약하다.

발전공기업을 포함한 국내 대기업들은 수출위주의 성장을 지향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중소기업들이 수출을 목표로 기술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고 중소기업이 상생협력하는 에너지산업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다.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산업 수출은 연간 30조원 규모로 나쁘지는 않은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패스트팔로어를 지향했지만 이제는 단순히 선진국을 뒤쫓아가는 전략으로는 위태로워질 것이다.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에 있을 때 △바이오의료 △에너지환경 △공공안전 △미래교통 △IT서비스를 5대 중점산업으로 선정하고 이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중 에너지분야는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20년간 육성하면 500조원 수출규모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에너지R&D가 연 2조원 정도 투자되고 있는데 꾸준히 에너지분야를 집중 육성하면 정부혁신을 주도하는 중요한 산업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에너지분야에는 태양광·풍력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 발전, ESS를 비롯한 에너지저장분야가 있다. 그 다음으로 에너지효율이 큰 산업이지만 지금은 육성이 안되고 있어 중점 투자가 필요한 부분이다.

전 세계 에너지산업 트렌드는 이미 자원중심에서 기술중심으로 옮겨갔다. 자원이 산업의 원동력이었던 시기에는 지정학적 요소가 발전을 결정했지만 기술중심 사회에서는 고급인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에너지분야 고급인력 양성을 소홀히 했다가는 결국 글로벌경쟁에서 쇠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력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R&D지원 방향은
에기평은 18개 국가 연구기관 중 가장 모범적으로 혁신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도 연구관리 혁신을 가장 선도하는 기관이 되겠다는 것이 비전이며 이미 절반 이상 바뀌었고 안착 중이다.

이를 위해 에기평은 양극형 R&D를 추구하고 있다. 선도형 연구개발기관으로 전환을 위해 TRL(Technology Readiness Levels: 기술성숙도)에 따라 세계최초 아이디어(첨단기술성)이거나 글로벌시장 경쟁력이 있는(시장진입성) 연구개발로 구분해 집중 지원하고 있다.

TRL이 낮은 세계최초 아이디어와 같은 첨단기술성이 있는 경우 원천기술연구 등의 형태로, TRL이 높아 시장진입이 임박해 수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은 실증사업 등을 통해 지원한다.

TRL에 따라 부가가치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가운데가 아래로 내려간 스마일커브 형태가 나온다. 연구를 기획할 때부터 TRL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구분하고 지원을 결정하고 있다.



에기평에 처음 부임했을 때 지금까지 진행해온 R&D의 TRL을 분석해보니 80%가 가운데 몰려있었다. 이런 과제는 남이 먼저 했기 때문에 목표달성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결과는 시장에 임팩트가 없고 새로운 특허도 거의 없다.

이제는 연구과제들이 스마일커브 양쪽에 80%, 가운데 20% 위치하도록 비중을 바꿨다.

원천기술 개발은 원칙적으로 결과를 묻지 않는다. 위험이 높은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쪽은 실패가 중요하지 않으며 도전이 클수록 지원도 많이 한다.

오히려 실패하려고 하는 과제이며 실패 자체가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인지, 수행기관이 도전할 만한 실력이 있는지가 판단기준이다. 물론 성실실패냐 아니냐를 따지긴 하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실리콘 태양광기술을 예로 들면 효율이 0.1%p만 높아도 시장이 움직인다. 거기서 효율을 0.5% 올릴 수 있는 기술개발을 하겠다고 하는 기관이 있으면 대환영이다.

또한 실리콘 태양광 효율이 현재 24% 근처인데 새로운 방식으로 높은 효율의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하면 실패가능성이 높아도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상, 능력상 현재 개발된 효율보다 더 낮은 목표를 제시하고 사업화에만 몰두한 과제는 지원하지 않는다.

■ 에기본이 확정됐다. 에기평의 역할은
에너지기본계획은 산업부가 이끌어가고 있지만 에너지전문기관인 에기평이 지원해 만든 것이다. 에너지정책연구센터가 있어 다양한 보조활동으로 에기본을 만들어냈다.

이의 후속으로 지금은 제4차 에너지기술개발계획을 수립하는 중이다. 원래 계획은 이번 상반기 중으로 완료하도록 돼있는데 에기본이 조금 늦게 나와서 일정은 다소 길어지고 있으나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기본은 국가 에너지정책에 대한 큰 틀로 범위가 굉장히 넓다. 에너지기술개발계획은 R&D에 대해 깊게 만드는 작업이다.

“원천기술 개발은 위험이 높은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쪽은 실패가 중요하지 않으며 도전이 클수록 지원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실패 자체가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인지, 수행기관이 도전할 만한 실력이 있는지를 판단합니다”

■ 수소산업 연구개발은
대표적인 신에너지 중 하나가 수소다. 정부가 추진하는 수소경제 핵심은 수소차와 수소연료전지로 이 두 분야를 집중 육성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수소산업은 이미 시장경제가 작동하고 있는 분야이며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지원자에 머무른다. 정부는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지원할 것이지만 결국은 선택은 민간이 한다.

정부가 먼저 기술개발을 선도해 판을 깔아주면 대기업은 구미가 맞는 분야를 골라 투자해 성공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산업발전 추세다.

수소경제는 시장이 결정할 일이다. 정부는 약속한 대로 충실하게 지원할 것이다. 수소차분야도 인프라 구축이나 안전기술개발 등은 정부가 지원하겠지만 사업은 기업의 몫이다.

이미 수소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은 많이 이뤄졌다. 현대자동차가 수소연료전지차를 선보였지만 그동안 정부지원금이 5,000억원 넘게 투입됐기 때문에 수소차는 정부주도로 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연료전지도 수소만 쓰는 것이 아니라 가스도 사용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연료전지는 수소연료전지를 포함해 SOFC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발전분야에서 SOFC의 가능성이 돋보이지만 결국 가스터빈과 경쟁을 피할 수 없다.

■ 에너지투자금융 육성 진행상황은
지난해 에너지분야의 대규모 프로젝트 투자, 중소·벤처기업 자금융자, 국민참여형 사업지원을 위한 펀드 설립을 제안했고 현재 에너지투자금융 협의체를 준비하고 있다.

협의체에는 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금융위원회 등 정부기관과 시중은행·증권사·투자기관·공제조합·연금 등 금융·기금운용사, 한국전력·발전 5개사·대기업 등이 시행사로 참여할 예정이다.


에너지부문 투자는 20~30년 초장기간 안정적인 이율을 얻을 수 있어 해외에서는 재생에너지나 에너지효율 등 에너지분야의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관들이 있다. 이러한 조직들의 결정권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에너지금융 투자에 필요성을 공감하고 투자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투자자와 설치운영자들을 서로 연결시켜줄 수 있는 전문가가 부재한 상황이다. 에기평은 정부예산을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주체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에너지분야의 금융투자를 촉진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난 정부부터 쌓아온 기반으로도 투자할 만한 요소는 충분하다고 판단되며 이번 정부의 에너지정책으로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