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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이명주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

에너지는 건축물 외피를 따른다

우리는 지구 온도를 2°C이상 낮춰야 하는 신기후체제에 살고 있다. 지난 1월 지면을 통해 100년 만에 미국을 강타한 한파 소식과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8월의 문턱에서 우리나라에 닥친 111년 만의 폭염 소식을 접했다.


이번 폭염기간 동안 눈에 들어오는 거리의 많은 것이 뜨거웠다. 아스팔트, 보도블록, 건축물, 자동차, 심지어 구석구석에서 돌아가는 에어컨 실외기까지 도시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런데 우리가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지 태풍과 집중 호우를 겪고 이슬이 맺히는 백로를 지나다보니 폭염의 기억이 다소 희미해져간다.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도 계속 여름이 길어지고 더 더워진다고 하는데 가을이 온다고 쉽게 여름의 고통을 잊을 일은 아닌 것 같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크게 나타나면서 도심 속 건축물은 여름에는 더 덥고 습해지며 겨울에는 더욱 추워질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부실하게 지어진 건축물은 이러한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에너지를 퍼먹는 하마'가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아끼며 사는데 익숙한 우리 시민들은 팍팍한 살림 속에서 무더위와 추위에 상당부분 몸으로 맞서야 할지도 모른다. 시민의 삶이 쾌적함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기'에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비단옷을 입고도 밤에 돌아다니니 참 실속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이 만드는 미래도시라고 하면서 계절마다 특별재난도시로 선포된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을지 싶다. 우리는 앞으로 이 기후변화를 어떻게 견디고 살아야 할까?


지난 6월에 발표된 '온실가스 감축로드맵 2030'에서는 건축물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내용을 여러 가지 담고 있다. 신축 건축물 에너지기준 강화, 기존건축물 그린 리모델링 활성화 등을 통해 건축물 부문에서 6,450 만톤을 감축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720만동의 건축물이 있고 서울시의 전력소비량 통계를 보면 83.2% 이상을 건축물이 사용하고 있다. 미루어 짐작한다면 도시 온실가스 배출 주범의 하나가 건축물이다. 일단 주범의 하나로 간주한다면 좀 더 치밀하고 섬세한 조치가 필요하다. 


특히 건축물 외피에 대해서 보다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부실하게 지어진 기존 공공건축물을 에너지효율 1++등급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노후화 된 기계 설비를 교체하며 태양광 전지판과 지열만 제공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노후 공공건축물을 분석해 보면 실내 열손실은 오히려 기계설비보다 건축물 외피를 통해 더 많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공간을 둘러싼 외피가 갖는 틈새(57.6%)부위에서 열이 가장 많이 손실되고 창호(27.6%), 외벽(9.1%), 지붕(3.1%), 바닥(1.3%), 그리고 기타(1.0%) 순으로 손실되고 있다.


그만큼 건축물 외피가 중요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건축물외피를 통한 열손실을 줄이는 것을 손봐야 한다. 건축물 외피의 단열성능을 독일의 패시브하우스 수준으로 향상시킨 후에 틈새를 막아 기밀을 확보하면 난방에너지 요구량의 50~60% 이상을 절감할 수 있다.


독일 패시브하우스 연구소에 의하면 외단열, 고기밀, 3중유리 시스템창호, 열교차단, 외부차양장치, 그리고 열회수형 환기장치 등의 요소기술이 제대로 적용된 패시브하우스는 전통적인 방식의 냉난방 설비를 별도로 설치하지 않아도 열회수형 환기장치의 후 냉각(Post-Cooling)과 후 가열(Post-Heating)만으로도 여름철과 겨울철에 실내에서 열적 쾌적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냉난방에너지를 건축물 외피 설계를 통해 최대한 줄이고 필요한 온열과 냉열은 열회수형 환기장치를 통해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로에너지 건축물은 건축물 5대에너지(난방 20°, 냉방 26°, 급탕, 환기, 조명)에 해당되는 에너지가 신·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공급되어야 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건축물의 외피를 통한 에너지 손실이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제 패시브하우스인증을 취득한 노원이지하우스의 에너지 통계자료를 통해 충분히 실증되고 있다.


외피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제로에너지건축물은 진정한 제로에너지 건축물이 되기 어렵다. 기존 건축물이든 신축 건축물이든 화석에너지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건축물 외피에 대한 신중한 기준과 설계가 적용되어야한다.


미국 시카고학파의 거장 루이스 헨리 설리번(Louis Henry Sullivan, 1856~1924)은 1896년 3월에 발간된 잡지 '리핀코트(Rippincott)' 에세이에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ever follows Function)" 고 적었다. 형태가 고전적 전례를 따라야 했던 당시에 오히려 형태는 기능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122년이 지난 이 시대는 지속가능발전주의(Sustainablism)를 추구하고 있다. 특별재난도시로부터 이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감축이 건축물 설계의 중요 고려항목이 되어야 한다. 건축물 외피를 어떻게 설계했는가에 따라 도시에서 소비하는 화석에너지 사용량이 달라질 수 있다.  '에너지는 건축물 외피를 따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