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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녹색건축…유지·사후관리 ‘전무’

G-SEED발급 후 평가항목 변경·훼손
실태조사 미흡…후속조치도 미온적
재인증·가치평가 방안마련 ‘시급’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녹색건축 인증건물 유지관리문제가 제기됐다. 안규백 당시 국토교통위 위원은 한국감정원의 국정감사에서 사후점검이 단 1차례도 이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정부가 인증제도 확대를 추진 중이지만 내실 없는 규모성장은 의미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미 인증을 획득한 녹색건축물에 대한 성능검증·복원·개선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어 관리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인증을 통해 인센티브를 획득한 뒤에 평가받은 항목을 변경하거나 다른 설비를 추가하는 사례가 많아 실제로는 성능저하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전문가 및 업계관계자들은 건물의 에너지절감, 친환경성 강화 등으로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 대가로 주어지는 인센티브지만 고의적 변경 또는 관리부실로 당초 기대한 공공성이 사라진다면 이는 곧 세금낭비가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녹색건축물 인증제도(G-SEED)의 사후관리 실태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제도적 준비상황을 점검함으로써 내실있는 인증제 운영방안을 모색해본다.



인증 후 변경사례 ‘각양각색’
지난 2002년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로 시작한 G-SEED는 2018년 7월까지 누적인증건수 1만841건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1만건을 돌파한데다 올해 7개월간의 건수도 1,110건이어서 지금 추세라면 지난해 1,763건도 넘어설 전망이다.


이와 같이 양적으로는 성장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녹색건축물이 인증당시의 에너지성능과 환경적 가치를 변함없이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우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현재는 평가항목에서 제외된 ‘핸드드라이어 설치’ 항목의 경우 다수의 건물이 점수를 확보하고 인증을 획득한 뒤 이를 철거하거나 운영하지 않고 페이퍼타월로 교체했다.


또한 4종 분리수거 용기를 각 층마다 설치해둬야 하지만 본인증 후에는 미관·활용성 등 이유로 철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동·식물 서식지와 도심녹지공간 확보를 위해 설치하는 수생비오톱도 관리의 어려움과 모기 등 해충에 따른 민원으로 물을 빼 기능을 상실케하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효율 측면에서도 악의적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냉방장치를 과소설계하거나 설계용량보다 작게 시공한 뒤 인증을 받고 후시공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건축물에너지효율등급에서도 도면에 없는 장비나 효율이 다른 장비는 확인하고 있지만 점검 후에 시공하면 적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태조사 후속조치는 미온적
G-SEED 인증건축물에 대한 유지관리, 인증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지속돼왔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한국환경건축연구원 등과 함께 2015년 ‘녹색건축인증 건축물의 실태 및 거주자 만족도 조사를 통한 인증 후 관리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2002년 제도시행 이후부터 2014년까지 서울시에서 G-SEED인증을 받은 397개 건축물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G-SEED에서 평가항목에 포함된 아이템별 사용률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증시점부터 조사시점까지 100%사용률을 기록한 항목은 전체 29개 중 6개에 그쳤다. 나머지 23개 아이템에 대해서는 적어도 2곳 이상이 사용하지 않거나 철거했다.


인증제도 특성상 등급기준에서 1점 미만을 초과해 해당등급을 획득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템 1~2개 인증점수를 제할 경우 등급하락 또는 인증취소 가능성이 높다.


100% 사용된 아이템은 △에너지계량기 △차양설비 △LED조명 △자동온도조절장치 △자연채광장치 △친환경인증자재 등이다. 주로 건축적요소이거나 자동적으로 동작하는 요소라는 점이 특징이다.


반면 80% 이하의 낮은 사용률을 보이는 항목은 3개였다. △연료전지(57.1%) △중수재활용시설(62.7%) △수생비오톱(77.1%) 등이다. 주로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운 항목으로 분석됐다.


연구에서는 이와 같은 결과를 토대로 △유지관리 기술정보 제공 △주기적 현장점검 관리 및 수행 △시설점검교육 및 관련자료 제공 △우수사례 표창 △재인증 유도 인센티브 추진 등 방안을 도출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16~2020년 녹색건축물 조성계획’에 유지관리 방안마련을 실행사업 중 하나로 설정하고 ‘유지관리 카드’를 제작·배포했다.


2018년 7월 기준으로 서울시의 2016년 인증건축물까지 관리카드가 배포가 완료됐다. 이후 유지관리카드 전산화시스템을 구축해 인허가시 제출하는 방안을 마련토록 추진할 방침이다.


다만 최근 2년간의 인증건축물에 대한 배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과 인허가시 제출을 통해 관리자에게 얼마나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지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더해 그나마도 서울시에만 국한된 것이어서 전국적 관리는 요원하다는 점과 지자체·공공기관의 관리인력 및 조직규모 부족이 한계로 지적된다.




사후점검 규정, 선언에만 그쳐
현재 G-SEED의 근거가 되는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에는 사후관리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제6조의 2는 정부가 녹색건축 기본계획을 시행하기 위한 사업을 세출예산에 계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으며 해당 사업을 규정한 2항과 7항에서는 각각 녹색건축 인증, 건축자재·설비의 사후관리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제15조의 2는 국토부, 지자체장이 녹색건축물 유지·관리의 적합성여부를 확인·점검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세출예산 계상은 선언적인 내용이어서 정부의 예산투입 의지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또한 실태조사도 시행령의 제11조 2에 따르면 녹색건축물을 리모델링·증축·개축·대수선하는 경우에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어 폭넓은 조사는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G-SEED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녹색건축 인증기준 운영세칙’에는 사후관리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제13조에서 인증결과 사후관리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인증기관의 심사결과에 대한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표본심사여서 성능의 유지관리와는 거리가 있다.




현실적 어려움 ‘산재’
지자체와 업계에서는 녹색건축물에 대한 유지·사후관리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장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먼저 유지·사후관리의 주체가 정부인지, 운영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인지, 지자체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인허가와 인센티브지급 주체가 지자체이고 전국 각지에 산재한 건축물의 관리용이성 측면에서도 지자체가 추진하는 것이 수월하지만 사실상 조직규모와 인력제한 때문에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녹색건축관련 전담조직을 운용하는 지자체는 서울시뿐이고 그나마도 4명이 건축문화 등 업무와 병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부는 각 지자체에 조직 및 인력확충을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고 일부 지자체 내부에서도 건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예산사정이 넉넉지 못해 쉽게 확충되기 어려운 구조다.


또한 사회적 측면으로 보면 국민들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절약, 온실가스 절감을 위해 녹색건축물 성능을 기계적으로 제한하면 필요에 따른 건축물 변경도 제약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파트의 경우 G-SEED를 통한 인센티브는 건설사가 받는데 개별 주택의 인테리어 과정에서 친환경자재가 변경될 수 있다. 업무용건물도 입주기업의 조직개편, 인력변동 등에 따라 설비의 추가설치 등이 필요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들을 모두 제한하는 것은 자유권, 행복권 등 헌법적 가치와 생산성 등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문제는 G-SEED 평가항목 자체의 문제다. 현재도 평가항목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를 유지함으로써 건물운용과정에서 지속적인 비효율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고지대에 위치한 건축물 또는 고속도로·자동차전용도로 인근에 위치한 건축물 등에 설치되는 자전거보관소는 효용이 낮다. 또한 연료전지는 에너지절약 및 온실가스배출 저감효과가 낮고 관리비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비용적 측면도 해결이 필요하다. 정부나 지자체, 운영기관 등을 대신해 인증기관 또는 민간기업·업자가 일정기간 단위로 사후점검, 실태조사를 실시할 경우 인건비가 발생하는데 이를 누가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건축주·건물주에게 부담하게 하면 비용부담 때문에 인증제도의 활성화에 제약이 될 수 있다.



인증유지 경제성 강화해야
결론적으로 대안마련은 제도적 정비와 산업적 노력이 병행돼야 할 전망이다. 전문가 및 업계관계자들은 인증성능의 유지가 건물소유자에게 경제적 이득을 제공한다면 사회적으로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제도정비는 이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채창우 KICT 녹색건축센터장은 “현재 G-SEED 운영세칙에 재인증 관련 내용을 포함하는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라며 “아직 재인증을 언급하는 수준에서 선언적으로 담길 예정이지만 향후 이를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학건 청연 대표는 “G-SEED 평가기준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어 재인증 시 새로운 기준에 맞추도록 하면 많은 건축물이 재인증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인증제도에 1회 재인증의무화 조항을 넣되 최초 인증기준으로 성능을 유지할 경우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추가로 제공하면 유지관리와 재인증활성화 모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신지웅 EAN 대표도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녹색건축인증의 유지가 건축물매매가, 임대료 등 부동산가치 측면에서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거주자 쾌적성, 건축물 거래가격, 공실률 및 회전률 등 데이터를 지속제공해야 하고 공시지가 산정에도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