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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ZEB ‘1년 유예’…탄소중립 정책 ‘후퇴’

2050 국토교통로드맵 상 민간의무화 2024→2025년 연기
전문가집단, “급격한 방향전환‧정부기조 엇박자 ‘당혹’”

정부가 올해로 예정된 민간 공동주택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의무화 시행을 전격 연기했다. 가뜩이나 달성이 불투명한 건물부문 탄소중립이 더욱 지연되는 조치여서 거센 비판여론이 예상된다.

기획재정부는 1월4일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해 투자여건 개선을 위한 규제를 유예하겠다며 민간 공동주택 ZEB의무화 시행을 당초 2024년에서 2025년으로 1년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2021년 수립한 ‘2050 국토교통분야 탄소중립 로드맵’을 통해 건물부문 탄소중립 추진을 위한 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며 이 로드맵에는 ZEB 의무화와 관련 내용이 담겼다.

로드맵에 따라 2020년 1,000㎡ 이상 공공건축물 ZEB인증 5등급 의무화를 시작으로 2023년 500㎡ 이상 공공건축물 및 30세대 이상 공공부문 공동주택 ZEB인증 5등급 의무화 등으로 규제가 확대돼왔다. 올해는 30세대 이상 민간 공동주택에 대해 ZEB 5등급수준 설계기준 의무화 등으로 확대될 예정이었다.

기재부의 관계자는 이번 경제정책방향 발표에서 “전 세계적 고물가‧고금리 등 글로벌 복합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으며 거시여건 소폭개선이 예상되나 구조적 리스크는 확대되고 있다”라며 “우리나라도 부문별 회복속도 차이로 민생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지역중심 건설투자를 위해 전방위적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기재부 발표는 지난달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가 심의‧의결한 ‘탄소중립‧녹색성장 이행점검 결과’와도 배치되는 것이어서 어떤 절차와 기준으로 단행된 조치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탄녹위 이행점검 결과심의에 참여한 한 위원은 “지난해 연말 국토부가 탄녹위에 제출한 자료에서도 민간 공동주택 ZEB의무화를 연내 시행하겠다고 보고했다”라며 “당시 심의에서 2022년 기준 건물부문 탄소감축량이 목표치에 도달하기는커녕 오히려 3%가량 배출량이 증가했음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어 “경기침체, 물가 및 공사비 상승 등으로 건설업의 여건이 어려운 부분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는 우리나라가 연말 COP28에서 발표한 정부 기조와 행정이 불일치하게 되는 것으로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효성 낮고 파장 클 것”
전문가들은 비교적 순탄하게 추진돼왔던 ZEB의무화 로드맵이 예고없이 전격 연기됨에 따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탄녹위 위원은 “탄녹위의 보고서가 강제력을 띠는 것은 아니나 심의‧의결된 내용은 민간이나 개인차원의 의견이 아닌 정부의 공식입장”이라며 당혹해했다.

이어 “오는 10일 탄녹위 사무국 주재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질의할 예정”이라며 “차후 건물부문 탄소중립 목표치 달성을 촉구하는 한편 변경된 정책방향 및 로드맵에 대한 배경‧원인 및 예상결과 분석 후 시나리오를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의 다른 전문가는 “경제상황이 어려우니 유보하겠다는 입장은 이해되나 원칙이 흐트러져서는 안된다”라며 “동일한 정부에서 발표하는 정책이 방향성이 서로 달라 엇박자를 내고 있어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실상 건설경기 위축으로 ZEB의무화의 영향을 받는 신축 공동주택 물건이 적으며 ZEB인증 5등급 수준은 건설사 역시 쉽게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상황이어서 실효성은 제한적일 것이나 정책방향 전환에 따라 모멘텀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일부 언론에서 일반건축물에 비해 ZEB 5등급 건축물의 공사비가 30% 증가할 것이라는 보도와 달리 현재 ‘건축물의 에너지절약 설계기준’, ‘친환경주택 건설기준’ 등에 따라 건축할 경우 ZEB인증에서 요구하는 건축물에너지효율등급 1++ 수준은 무리없이 달성할 수 있다. ZEB인증 획득 시 에너지자립률 확보를 위해 신재생에너지설비를 추가하더라도 전체 공사비의 2~3% 수준으로도 인증획득이 가능하다.

이미 LH는 지난해부터 ZEB인증 5등급 수준의 공동주택 건립에 착공해 순조롭게 진행 중이며 고덕강일지구의 경우 ZEB인증 3등급을 목표로 추진할 정도로 녹색건축 및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력과 경제성이 확보된 상태다.

이에 대해 국토부의 관계자는 “사실상 민간영역에서도 ZEB의무화 로드맵 이행을 위한 준비는 완료한 상태”라며 “다만 대상이 30세대 이상 공동주택이다보니 건설사 규모별로 입장차가 다른 부분이 있어 중소건설사에서 어려움을 호소함에 따라 경제여건을 감안해 약간의 숨통을 틔워주는 조치”라고 해명했다.

이어 “건설공사원가는 노무비, 재료비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4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체감된다”라며 “추가 공사비와 관련해서도 2~3% 수준의 증액으로 ZEB달성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나 이미 공사비가 급등한 상황에서 중소건설사는 2~3% 증가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므로 1년 한시적으로 유예해 분위기를 가늠코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정부가 건물부문 탄소중립 기조를 포기하거나 철회한 것이 아니다”라며 “목표달성을 위해 공공이 시장을 끌어가는 것도 중요하나 제반 여건을 파악하면서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이와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재부의 발표는 2017년부터 발표돼 시장에서 안착하고 있는 건물부문 탄소중립 기조 방향성을 급격하게 전환하는 신호탄으로 읽힐 수 있어 시장의 충격을 더욱 키울 우려가 크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이대로는 탄소중립 목표달성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건물부문이 기존 로드맵대로 시행했음에도 오히려 탄소배출량이 증가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정책방향 후퇴가 정부의 탄소중립 달성의지를 의심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