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탄소시장 ‘VCM’ 건물 탄소중립경제성 보완

  • 등록 202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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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권거래제‧탄소세 중심 CCM, 탄소감축 ‘한계’
VCM, 자발적 탄소감축 촉진·기업 기술혁신 유도
VCM 품질검증 필수… 신뢰 확보가 시장성장 좌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적 노력의 일환으로 시장기반 탄소감축 메커니즘이 등장했다. 이를 탄소시장이라 하며 탄소시장은 크게 규제적 탄소시장(CCM: Compliance Carbon Market)과 자발적 탄소시장(VCM: Voluntary Carbon Market)으로 구분된다.

 

CCM은 정부나 국제기구가 법적의무를 부과해 기업이나 국가가 정해진 감축목표를 준수하도록 하는 시장이다. 배출권거래제(ETS)와 탄소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CCM은 정부가 배출권을 직접 할당하며 규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시장유동성이 낮으며 기업들이 최소한의 규제준수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아 혁신적 감축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탄소배출량 산정 시 Scope 1·2(제품 제조공정 및 에너지소비)뿐만 아니라 Scope 3(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는 간접배출)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K-ETS(한국형 배출권거래제)는 연간 온실가스배출량 12만5,000톤 이상인 사업장의 Scope1‧2 배출량을 대상으로만 규제를 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기업은 CCM을 적용받지 않으며 Scope 3 배출량은 사업장 외 활동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적용범위를 무작정 확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2050 탄소중립을 CCM만으로 실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VCM, 자발적 감축 촉진... 건물 탄소중립 해답

건물은 우리나라 총 탄소배출량의 25% 가량을 차지하는 온실가스 다배출분야다. 국내 건물 탄소중립은 정부주도로 이뤄지는데 지원금이나 보조금, 인센티브, 규제로 접근하는 방식은 예산이나 확장성 면에서 한계가 있다.

 

특히 국내 건물분야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축건물에 비해 43% 이상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노후건물의 에너지효율을 개선해야 한다. 2022년 기준 전국에서 30년 이상된 노후건물은 약 301만동으로 전체건물 41%를 차지한다. 노후건물 한 동을 그린리모델링(GR)하는 데 평균 2억9,000만원이 소모되며 전체 노후건물 중 절반만 리모델링하더라도 총 4,000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된다. 결국 GR을 정부차원의 지원과 예산배정으로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자발적으로 건물 탄소중립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건물 성능향상이 건설기업이나 건물주에게 경제적 이점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VCM활성화가 경제적 이점을 제공하는 한 가지 해답이 될 수 있다.

VCM은 CCM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했다. VCM은 기업과 기관이 법적의무없이 자발적으로 탄소감축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인증기관으로부터 탄소크레딧을 부여받아 이를 플랫폼에서 거래하는 시장이다.

 

CCM과 VCM은 여러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CCM은 정부주도의 강제적 감축시스템으로 배출권할당 대상기업이 의무적으로 시장에 참여해야 한다. 반면 VCM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기업과 기관 및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탄광매립지 △바이오매스 △메탄포집 등 다양한 탄소저감프로젝트를 통해 크레딧을 생성할 수 있다.

 

또한 CCM은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배출권거래제도를 설계하며 총량을 설정함으로써 배출권시장을 주도하는 반면 VCM은 민간 인증기관이 크레딧을 발행하며 이를 별도 거래플랫폼에서 자율적으로 거래한다.

 

특히 VCM은 기업 가치사슬 내·외부 전 영역에 대해 법적의무와 상관없이 탄소제거 실적을 거래하는 시장이므로 기업이 자율적으로 설정한 탄소중립 목표나 ESG경영전략에 맞춰 Scope 3 배출량을 감축할 유인이 생긴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VCM 탄소크레딧 거래가치는 7억3,200만달러로 평균 크레딧 구매가격은 6.53USD/ 톤이었다.

 

관건은 VCM에서 탄소크레딧을 구매할 수요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가다. ESG 의무공시제도나 RE100이행 등 투자유치와 글로벌 수주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VCM 크레딧을 활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성 평가가 기업가치평가에 충분히 반영되도록 사회적 여건이 조성돼야 하며 VCM 크레딧이 이러한 지속가능성 활동을 담보한다는 인증 및 평가 신뢰성 확보가 우선돼야 할 전망이다.

 

한국에서도 환경부 2025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에 ‘민‧관합동 탄소크레딧시장 TF’를 구축해 VCM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VCM에 대비하고 있다. 환경부 산하 기후위기대응단은 국내 탄소크레딧의 신뢰도를 높이고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며 정부차원에서 VCM에 대한 기본원칙을 만들 예정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도 탄소감축인증센터를 발족했으며 올해만 5개가 넘는 VCM거래플랫폼이 개장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 국내 VCM 규모와 거래량은 해외에 비해서 한참 부족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해외 VCM사례를 조사하고 적용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시장안정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시범사업을 추진해 VCM 실효성을 검토하는 등 추가조치가 필요하다.

 

기술기반 VCM, 건설업계 새로운 활로

VCM이 침체된 건설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는 VCM을 통해 친환경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신규사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건물에서 HVAC, BEMS, 폐열회수시스템 등 기술로 에너지를 절감한 후 대한상의 탄소감축인증표준(KCS)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태양광·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건물운영에 도입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한 에너지소비량이 많은 데이터센터에 고효율 냉각시스템을 도입하거나 디지털트윈 및 IoT를 활용한 스마트건설기술을 적용하는 사례로도 확장될 수 있다.

 

실제로 스마트윈도우 필름을 통해 건물 냉난방부하를 감소시킨 방법론이 대한상의 KCS에 등록된 사례가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건축‧기계설비기업이 온실가스를 감축하며 이를 KCS인증을 통해 탄소감축 효과를 인정받으면 VCM에서 크레딧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글로벌 규제강화, ESG경영 확대, SBTi(과학기반 감축목표) 등 글로벌 이니셔티브 참여기업 증가로 Scope 3 감축요구가 강화되는 추세에서 건설기업은 VCM을 활용한 자율적 감축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가치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건설업계 탄소배출량 92%는 Scope 3 배출량에 해당하므로 VCM을 통해 대외적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전망이다.

 

탄소크레딧, ESG·기술인증·해외진출 활용

VCM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탄소크레딧 효용이 인정받아 크레딧에 대한 수요가 충분히 창출돼야 한다. 현재 탄소크레딧 자체가 금전적 이익을 주지는 않지만 ESG공시, 글로벌규제 대응 및 프로젝트수주 경쟁력 확보 등 간접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글로벌 대기업은 국가차원 탄소중립 목표에 맞춰 탄소배출 감축전량을 수입해야 하는데 내부감축만으로 목표달성이 어렵기 때문에 탄소크레딧을 구매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 목표를 세우고 VCM에서 대규모 탄소크레딧을 구매하고 있다. 2021년 탄소배출을 상쇄하기 위해 산림복원프로젝트와 탄소포집기술을 활용한 크레딧을 구매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에너지‧기술기업은 단순히 탄소배출을 상쇄하는 것 외에도 VCM을 활용한 신사업 모델을 개발하기도 한다. 글로벌 에너지기업 쉘(Shell)은 탄소크레딧을 구매해 자사고객 탄소배출을 상쇄하고 있다. 쉘은 항공사와 운영업체 등을 대상으로 지속가능 항공연료를 공급하거나 탄소크레딧을 대신 구매하는 식으로 고객에게 탄소중립을 제공한다.아직 국내에는 직접적으로 탄소크레딧을 거래해 경제적 이익을 본 사례는 많지 않으나 VCM방법론 등록으로 보유기술과 제품에 대한 친환경성을 인증받아 신규 투자유치에 성공하거나 해외시장 진출에 성공한 사례가 존재한다. 엘디카본의 경우 폐타이어 열분해기술을 적용해 친환경 소재인 카본블랙과 열분해 정제유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VCM방법론을 인증받아 약 1,000억원 규모 투자유치에 성공해 신규공장을 건설하기도 했다.

 

 

VCM은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일단 시장이 활성화된다면 다양한 경제적 효과가 창출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해외 금융회사들은 펀드를 통해 탄소프로그램 및 기술기업에 투자하거나 크레딧 거래플랫폼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VCM에 참여하고 있다. HSBC 글로벌 자산관리(Global Asset Management)는 기후변화 자문회사인 폴리네이션(Pollination)과 협력해 지속가능한 임업, 재생 및 자연기반 바이오연료 등 배출량 감소로 수익을 창출하는 친환경 프로젝트에 투자했으며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과 싱가포르 재무부 투자지주사 테마섹(Temasek)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 초기성장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탈탄소화 파트너(Decarbonization Partners)를 설립하기도 했다. 국내는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VCM에 참여하고 있으며 금융감독원에 자발적 탄소배출권에 대한 자기매매 및 장외거래 중개 업무에 대해 부수업무를 보고한 증권사는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SK증권 등 총 8곳으로 보고된다.

 

VCM‧CCM 연계로 국가탄소감축 기여

장기적으로 VCM이 CCM과 연계돼 CCM 한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UN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국제항공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가 있다. CORSIA는 국제 항공사들이 바이오항공유(SAF) 사용 및 엔진기술 개발 등을 통해 배출량을 줄이며 남은 배출량에 대해서는 VCM 크레딧을 활용해 상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캘리포니아 ETS와 싱가포르·콜롬비아 탄소세 등에서도 VCM 크레딧을 상쇄용으로 일부 허용하고 있으며 이는 효과적인 감축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K-ETS에서 할당대상업체는 제출해야하는 배출권의 최대 5%를 VCM에서 발행된 상쇄배출권(KCU)으로 활용가능하며 VCM기반의 감축 외부사업 확대를 검토 중이다. 이런 방식으로 CCM과 VCM이 연동된다면 시장에서는 VCM 활성화로 다양한 감축프로젝트가 증가하며 CCM 탄소감축 목표도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또한 탄소중립정책에서 유연성을 제공하며 국제탄소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VCM 신뢰성 확보, 품질기준‧검증강화 관건

VCM 신뢰성 확보도 핵심과제다. VCM 거래량은 2021년 정점을 찍은 이후 꾸준히 감소했다. 2023년 VCM시장규모는 전년대비 61% 감소했다. 이는 VCM에 대한 그린워싱 이슈가 제기되며 탄소크레딧 신뢰성과 투명성요구가 강화된 영향으로 보인다. 가디언 보도로 세계 최대 탄소크레딧 인증기관인 베라(Verra) REDD+ 프로젝트의 94%가 실질적인 탄소감축 효과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혀진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비정부기관에서 탄소감축 실적을 인증받아 탄소크레딧을 발행받는 VCM 특성상 신뢰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임을 시사한다.

 

 

현재 가장 통용되는 인증표준은 Verra와 Gold Standard다. Verra가 운영하는 ‘VCS(Verified Carbon Standard)’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자발적 탄소크레딧 인증 프로그램이다. 과학적이고 투명한 MRV(측정·보고·검증) 체계가 갖춰져 많은 기업과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Gold Standard는 탄소감축량뿐만 아니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부합하는 사회·환경적 편익을 창출하도록 설계된 점이 특징이다. △커뮤니티 개발 △보건개선 △생물다양성 보전 등 공동편익을 중시하는 기업의 선호를 받는다.

 

또한 국제기구는 VCM 품질과 평가기준을 담은 가이드라인·권고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영국정부와 유엔개발계획(UNDP)의 주도로 VCM 무결성 이니셔티브(VCMI)가 결성돼 탄소크레딧 품질을 보증하는 무결성지침(CoP: Claims Code of Practice)을 발간했다.

 

 

CoP에 의하면 기업은 탄소배출권 총량 가운데 고품질 탄소배출권 비중을 어느 정도로 부여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고품질 탄소배출권이란 자발적 탄소시장 청렴위원회(IC-VCM)가 정하는 핵심 탄소원칙(CCP) 10가지 항목을 충족해 발행‧거래‧만료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없는 탄소배출권을 말한다. 최종적으로 기업은 VCMI의 측정·보고·검증(MRV) 방식과 평가틀(AF)에 맞춰 독립적인 제3자기관의 검증을 받을 수 있도록 기존에 제출한 탄소중립 계획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들을 공시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대한상의에서 △실제성 △추가성 △지속성 △검증가능성 등 기준원칙을 포함한 KCS를 발표해 탄소크레딧 신뢰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 최근에는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결합해 탄소크레딧의 투명성과 추적가능성을 높이려는 다양한 시도도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탄소크레딧 신뢰성과 투명성이 확보된다면 VCM은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전략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종성 기자 jslee@kharn.kr
저작권자 2015.10.01 ⓒ Kha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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