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권의 한 대형 건설현장에서 내화채움구조(관통부 화재확산 방지 구조)가 법규에 맞지 않게 시공된 사실이 적발됐음에도 해당 현장에 대한 처벌이나 강제시정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제보자에 따르면 해당 현장은 강관덕트 및 배관 관통부에 대해 건축법 제52조의 5와 시행령 제63조의 2에서 규정하는 품질인정 받은 내화채움구조를 적용하지 않았다. 특히 내화채움구조를 적용하면서 차염구조와 가연성 보온재를 연이어 설치한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관계 법령은 이를 금지하고 있지만 해석상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으며 관계당국 역시 적극적인 해석이나 행정조치를 하지 않는 등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염·차열구조 구분적용 필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관리하는 ‘건축자재등 품질인정 및 관리 세부운영지침’의 부록4 ‘내화채움구조의 품질시험방법’에는 설비관통부 단열재에 대한 적용 방법이 명시돼 있다. 여기에는 차염·차열 내화채움구조 개념을 분리해 현장적용토록 했다.
차염 내화채움구조는 화염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는 구조로 불에 탈 것이 없는 금속배관이나 보온이 불필요한 덕트구간에 적용된다. 반면 차열 내화채움구조는 화염뿐만 아니라 열까지 차단해 가연성 보온재가 사용된 구간에서도 발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하는 구조다
세부운영지침에 따르면 차염 내화채움구조를 수직부재(벽관통부)에 적용할 경우 세라믹 섬유블랭킷을 벽면에서 양쪽으로 1m씩 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PE단열재, 고무발포 단열재나 기타 가연성 재료가 사용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차열 내화채움구조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즉 금속배관이나 보온이 불필요한 덕트의 경우에는 불꽃만 막으면 되지만 가연성 자재가 사용된 경우에는 열에 의한 발화 가능성까지 차단해야 하므로 열까지 막는 차열구조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차염구조를 적용했다면 가연성 자재가 연속해서는 안되고 경계구간은 보온재나 별도의 가연성 자재가 없는 나(裸)덕트 상태로 둬야 한다.

모니터링 ‘설계불일치’ 적발에도 조치없이 ‘사안종결’
문제의 현장은 열을 막을 수 없는 차염구조를 적용한 상태에서 가연성 자재를 연속해 사용했음에도 관계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조치를 받지 않았다. 현장을 둘러본 점검자들은 설계도서상으로는 내화채움구조 외 구간에 보온이 전혀 없는 비보온 덕트를 설치하도록 돼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시공에서는 그 구간에까지 보온재가 감싸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즉 차염구조로서 나덕트를 적용해야 할 구간에까지 보온시공이 덧대져 있었던 것이다. 이는 ‘차열구조일 경우에는 보온시공이 가능하지만 차염구조일 경우에는 보온을 적용할 수 없다’는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며 설계도서와 현장시공 사이의 명백한 불일치를 보여준다. 차염구조를 적용할 경우에는 보온재 없이 나덕트로 해야 하며 만약 다른 규정에 따라 보온재를 빈틈없이 시공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내화채움구조를 차열구조로 적용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건축안전 모니터링 현장점검 결과에서도 확인돼 지적사항으로 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출됐다.
실제 점검의견에는 내화채움구조 설계도서에는 차열재 외 구간에 비보온을 적용해야 하나 현장에는 보온시공을 해 설계도서와 불일치한다는 점이 명시됐다. 또한 점검자는 차염구조일 경우에는 나덕트(비보온덕트)에 적용하고 차열구조일 경우에는 보온시공이 가능하지만 해당 내화채움구조는 차염구조로 내화채움구조 외 구간 덕트에는 보온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방화구획 등 서류를 확인한 결과 해당현장 내화채움구조는 차염구조 품질인정서를 제출했으나 설계도서, 관련규정에 따라 차열성능 품질인정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명기했다.
즉 설계도서와 현장시공이 불일치했으며 차염구조로 설계된 구간에 보온을 적용한 것이 문제의 핵심으로 확인된다. 차열구조는 열을 차단할 수 있어 화재시험에서 가열벽면 반대편 1m 구간의 덕트에 온도센서를 설치했을 때 발화가 발생하지 않는 수준까지 열전달을 막을 수 있다. 반면 차염구조를 적용하면 1m 구간 이후까지 높은 열이 전달돼 가연성 보온재가 발화될 우려가 크다.
이처럼 세부운영지침에는 단서조항으로서 ‘상기명시된 단열재 외에 가연성 재료가 사용되는 경우 차열 내화채움구조를 적용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음에도 일부 현장에서는 화재확산 방지를 위한 제도의 취지를 무시하고 이를 표면적·기계적으로 해석해 차염구조와 가연성 재료를 동시에 적용할 수 있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차염구조와 가연성 재료를 동시에 적용할 수 없으며 가연성 재료가 연이어 시공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차열 내화채움구조를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지자체는 전문성 부족을 이유로 명확한 해석을 내리지 않았으며 건설기술연구원은 책임 소재를 회피하며 적극적인 해석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현장에서 알아서 판단하라’는 입장으로 일관하며 사실상 직무를 회피하고 있는 지적이 일고 있다.
건설연은 모니터링 결과 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토부에 전달했으나 이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면서 ‘시정조치 권고’가 아닌 ‘시정조치 또는 종결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따라 지자체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해당사안을 종결처리 함으로써 불법시공이 그대로 현장에 적용되게 됐다.
이러한 기계적 해석에 따라 제도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시공을 해도 처벌을 받지 않다 보니 업계 일부에서는 ‘특정 현장에서 문제되지 않았으므로 합법’이라는 논리로 이러한 위험한 시공방식을 영업포인트로 활용하고 있다. 법령이 금지하고 있는 조치임에도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으니 해도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로 인해 화재발생 위험이 있는 잘못된 시공구조가 더 확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정석대로 차열구조를 적용하는 기업이 경쟁에서 불이익을 받는 왜곡된 시장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 문제는 단순한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조속한 제도개선과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나 건설연 등이 적극적으로 전문적 해석을 제공하는 일이 시급한 실정이다. 현장의 지자체 공무원 전문성이 중앙정부나 전문기관보다 떨어지는 것이 현실적이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현장별로 비전문가인 행정공무원이 판단을 떠맡게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선 공무원들 역시 관계당국에 적극적인 해석을 요구하기보다 문제를 회피하려는 안일한 태도를 보여 결과적으로 화재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어 개선대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