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흄, 법 밖의 유해물질… 실내공기질 ‘눈먼 행정’

  • 등록 202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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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던 조리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그 원인이 ‘조리흄’이라는 유해물질로 지목되며 불행 중 다행으로 급식실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유증기, 유기화합물, 미세입자 등으로 구성된 조리흄은 고온의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며 흡입 시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이 다수 연구로 입증됐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법과 제도는 이 유해물질을 ‘관리대상’으로조차 취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뒤늦게 조리환경 개선을 위해 약 1,800억원을 투입했습니다. 환기설비 개선 명목으로 학교당 평균 1억원이 집행됐고 물리적으로는 대부분의 설비가 설치됐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환기설비가 실제로 조리흄을 얼마나 저감하고 있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은 전무한 실정입니다. 설비가 ‘설치됐는가’만 보고되고 ‘효과가 있었는가’는 아무도 묻지 않고 있습니다. 조리흄 농도가 얼마나 높을 때 저감조치를 해야 하는지, 저감 이후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낮춰야 하는지, 그리고 실제 그렇게 되고 있는지에 대한 계측조차 없는 어처구니 없는 행정입니다. 이는 명백한 ‘목적부재의 행정’에 다름 아닙니다.

 

조리흄, 유해물질 아닌 유해물질… 관련법령 ‘눈 뜬 장님’


관련 법령도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기환경보전법상 ‘입자상 대기오염물질’ 목록에는 조리흄의 핵심성분이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실내공기질 기준에도 조리흄이 없습니다. 지난해 발표된 제5차 실내공기질 관리 기본계획에 ‘조리매연 관리방안 마련’이라는 문구가 들어갔지만 아직도 조리흄은 측정의무가 없는 ‘그림자 물질’로 남아있습니다.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산정체계에 포함되겠다는 계획도 결국 ‘외부배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정작 가장 위험한 ‘실내 노동환경’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리흄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선결돼야 합니다. 첫째로 조리흄을 법령상 입자상 대기오염물질로 명확히 지정해야 합니다. 둘째로 실내공기질 관리기준에도 조리흄 관련 성분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행정지침이 아니라 법적기준이 마련돼야 측정이 의무화되고 저감조치도 강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돼야만 노동자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관리체계가 작동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제도개선은 산업적 파급효과도 기대됩니다. 조리흄 측정기술 및 저감설비 개발이 촉진되고 공공·민간 급식시설 전반으로 시장수요가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는 산업계의 기술 고도화와 일자리창출로도 연결됩니다.


급식실 조리노동자들은 매일 아이들의 한 끼를 책임지며 유해물질에 노출돼 있습니다. 이제는 사회가 이들의 안전을 책임질 차례입니다. 환기설비를 ‘설치했다’는 보고서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조리흄을 관리하고 저감하며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는 지금 당장 시행해야 합니다.

칸 기자 kharn@kharn.kr
저작권자 2015.10.01 ⓒ Kha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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