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건축학회 건축교육혁신원과 탄소중립건축원은 7월8일 건축센터 지하1층 강당에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내 건축의 방향과 과제’ 포럼을 개최했다.
건축물과 관련산업이 전체 에너지소비와 폐기물의 1/3 이상, 탄소배출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건물에 관한 환경적 고려와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정책적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포럼은 탄소중립건축 실현을 위한 국가적 과제 설정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적 과제 제안을 목적으로 이뤄졌다.
탄소중립 건축, 정책·교육 등 전방위적 개선 필요

김창성 건축교육혁신원장(협성대 교수)는 기조발표로 ‘환경친화건축과 탄소중립의 실현’을 주제로 발표했다.
한국은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연평균 4.17%의 감축률을 기준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설정했지만 2022년 기준 실제 감축률은 2.3%에 불과했다. 이는 현재 국내 온실가스 감축이 운영탄소 위주로 집계돼 생산·운송·시공·폐기 등 전과정에서 발생하는 내재탄소가 반영되지 않아 건설산업 감축분이 과소평가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건물부문 탄소감축을 위해 친환경 건축의 개념이 등장했다. 친환경 건축은 시대에 따라 △에너지절약형 건축 △생태·지속가능성기반 그린빌딩 △재난회복력 중심 리질리언트 시티 △순배출량 제로(Net Zero) 건축 순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생태중심주의, 공생적 지속가능성, 인간중심 쾌적성의 세가지 개념으로 구조화된다.
이러한 친환경 건축을 현실에 접목시키고 실효성있는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방위적인 정책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국토부, 환경부 등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친환경 건축 관련 유사 인증제도를 통합관리하고 국가가 공인하는 표준 기상데이터를 구축해 5년 주기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중복적인 제도를 정비해 현장의 혼란을 줄이고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사용되는 건물 에너지성능 평가프로그램 'ECO2'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알고리즘과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애쉬래(ASHRAE) 스탠다드 140과 같은 국제기준에 맞춰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의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설계단계의 성능목표가 시공 후 실제로 구현됐는지 검증하는 커미셔닝을 선택이 아닌 필수 항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용적률 완화, 세금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준공시점이 아닌 인증성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건물에 부여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면 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다.
김창성 건축교육혁신원장은 “설계중심의 건축학과와 기술중심의 건축공학으로 이원화된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라며 “AI기반 스마트 친환경 건축, 지속가능한 도시설계 등 핵심분야를 통합적으로 교육하는 유럽 선진국처럼 융복합적 인재를 양성해 미래 건축환경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재훈 전남대학교 교수는 ‘기후변화 대응 탄소중립 건축물 – 운영탄소에 대한 해외기술 동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건축물의 탄소배출은 운영탄소와 내재탄소로 구분된다. 건설부문 전체 탄소배출량의 약 39% 중 상당부분이 내재탄소이며 특히 설계 초기단계에서 그 배출량의 50% 이상이 결정된다. 따라서 진정한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설계단계부터 내재탄소를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글로벌시장은 이미 내재탄소 규제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7년부터 전생애주기평가(LCA) 보고를 의무화하며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와 캐나다는 건물용도별로 탄소배출 상한선(kgCO₂/m²)을 제시하는 등 정량적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배출량을 보고하는 수준을 넘어 한계값을 설정하고 이를 인허가 및 인센티브와 연계하는 강력한 정책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상하이타워는 구조시스템 최적화를 통해 내재탄소를 14% 감축했고 스위스의 K-118 프로젝트는 리모델링 시 기존자재를 재활용해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인 바 있다.
배재훈 박사는 “현재 에너지중심의 탄소정책만으로는 탄소중립 실현이 부족하다”라며 “건물의 전생애주기 특히 내재탄소까지 포함한 LCA기반의 탄소정책으로의 전환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대석 BSD 코리아 이사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패시브 디자인과 건축교육’을 주제로 발표했다.
건물운영단계 탄소감축을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평가기준이 중요하다. 영국은 ‘넷제로 카본 빌딩 스탠다드’를 통해 단순히 CO₂ 배출량이 아닌 연간 에너지사용량(kWh/m²)과 최대부하(W/m²)를 핵심지표로 삼는다. 건물 자체에서 신재생에너지를 다량 생산해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들더라도 건물의 근본적인 에너지성능 자체가 나쁘면 전력망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사용량을 기준으로 삼으면 건물의 근본효율을 평가할 수 있고 계측을 통해 투명한 검증이 가능하다.
독일 패시브하우스 연구소의 난방에너지 요구량 기준인 ‘15kWh/m²·a’는 영국 표준에서도 인용될 만큼 강력한 국제기준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는 외기온도가 10℃ 이하로 떨어질 때부터 난방이 필요한 수준의 고성능건물에 해당한다.
또한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리바운드 효과(Rebound Effect)’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단열성능 개선 후 절약된 난방비로 다른 소비를 늘리거나 오히려 실내온도를 더 높여 에너지사용량이 줄지 않는 현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단위면적당 성능이 좋아져도 1인당 점유면적이 늘어나면서 총에너지 사용량은 그대로일 수 있다.
오대석 이사는 “에너지 절감량을 비용으로 환산하고 투자비 회수기간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며 “건축가가 설계를 통해 제안한 성능개선 효과에 대해 완벽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검증하고 피드백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진탁 경일대학교 교수는 ‘탄소중립 건축을 위한 인증 & KDS 설계기준: 필요성과 정립방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과거 친환경 건축 정책이 운영에너지에 집중됐다면 이제는 운영탄소와 내재탄소를 통합한 전 생애주기 평가체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한건축학회는 내재탄소부문에 대한 ‘탄소중립 설계인증 프로세스’를 개발해 시행 중이며 첫 번째 인증사례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인증제도의 핵심목표는 국내건물 용도별 탄소배출량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데이터가 축적돼야만 해외기준을 무분별하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실정에 맞는 과학적인 탄소배출 한도와 허가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강제력 있는 국가표준 즉 ‘탄소중립 건축설계기준(KDS)’이 마련돼야 한다. 인센티브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며 KDS를 통해 정량화된 목표치를 제시해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설계가 가능해진다. 영국의 표준이 △명확한 정의 △증거기반 보고 △일관된 규칙 △달성가능한 목표치 등을 제시하는 것처럼 국내 KDS 역시 이러한 원칙을 담아 전 생애주기 기반의 통합 가이드라인으로 정립될 필요가 있다.
오진탁 교수는 “이제까지의 노력이 운영에너지에 치중됐다면 앞으로는 전 생애주기기반의 탄소평가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라며 “우리나라 실정을 반영한 통합 가이드라인과 국가표준(KDS)을 정립해 건축 전주기의 탄소감축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용상 에너지전산연구소 대표는 ‘글로벌사례로 본 탄소중립설계의 전략과 적용’을 주제로 발표했다.
현재 제로에너지건축(ZEB) 의무화 정책에서 단열, 기밀 등 건물의 근본성능을 높이는 패시브기술이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영하 20℃ 부터 영상 40℃ 를 넘나드는 한국 기후에서는 패시브기술이 필수적이지만 현장에서는 여러 현실적 문제가 존재한다.
국산 고성능 기밀자재가 없어 관공서 설계에 적용하기 어려우며 실험실의 작은 시험체로 측정한 창호성능이 실제 대형창호의 현장 성능과 큰 괴리를 보이는 등의 문제가 있다. 또한 혹한기에는 결빙을 우려해 국산 열회수환기장치가 가동을 멈춰 무용지물이 되는 것도 문제다. 고단열 건물에너지 손실의 20~30%를 차지하는 열교(Thermal bridge)는 제대로 평가조차 되지 않고 있다.
윤용상 대표는 “현재의 접근방식은 일반 자동차에 태양광패널만 덧붙이는 것과 같다”라며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고효율 전기차가 패시브·액티브기술의 조화로 만들어지듯 건축교육 역시 설계와 공학의 교차점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융합적 방식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성 건축교육혁신원장은 “설계중심의 건축학과와 기술중심의 건축공학으로 이원화된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라며 “AI기반 스마트 친환경 건축, 지속가능한 도시설계 등 핵심분야를 통합적으로 교육하는 유럽 선진국처럼 융복합적 인재를 양성해 미래 건축환경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재탄소·운영탄소부터 인증·교육까지…분야별 과제 제시

이후 이태구 탄소중립건축원장이 좌장을 맡은 가운데 패널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자로는 △오상근 건축성능원 부원장 △윤성훈 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 회장 △정재원 한국건축친환경설비학회 회장 △신지웅 EAN테크놀로지 대표 △김학건 청연 대표 등이 참석했다.
오상근 건축성능원 부원장은 정부부처별로 상이한 건물부문 탄소배출량 통계의 문제를 지적하며 신뢰도 있는 데이터관리의 중요성을 제시했다.
오상근 부원장은 “내재탄소 감축의 핵심은 95% 이상을 차지하는 자재 및 전문건설 협력사에 있으나 현재 정부정책은 대기업에만 초점을 맞춰 이 공급망이 단절된 상태”라며 “현재 구조기준만 있는 KDS를 단열, 방화 등 비구조분야로 시급히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성훈 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 회장은 “탄소중립 정책을 주도하는 국가위원회에 정작 건설·건축전문가가 거의 없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나올 수 있다”라며 “공사비 상승분에 대한 경제성 분석과 정부의 선도사업 없이는 시장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여러 부처에 흩어진 인증제도를 단순화하고 고밀·고층건물 위주인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재원 한국건축친환경설비학회 회장은 “현재의 인증제도는 준공 후 성능을 검증하지 않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면죄부로 전락할 수 있다”라며 “정부가 공인한 단일 평가툴(ECO2)에 의존하는 방식이 오히려 기술혁신을 저해한다고 지적할 수 있어 툴의 사용은 자유화하되 구조 기술사처럼 그 결과에 책임지는 전문가 자격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지웅 EAN테크놀로지 대표는 “정부계획이 운영탄소에 치우쳐 내재탄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라며 “설계자가 탄소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건축학 교육과정에서부터 LCA분석, 탄소회계, 에너지시뮬레이션 등 공학적 소양을 갖추도록 커리큘럼이 개편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건 청현 대표는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미국의 LEED인증처럼 친환경 건축이 ‘부동산 가치를 높인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건물주들의 자발적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딱딱한 보고서가 아닌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웹사이트나 영상콘텐츠 제작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