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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명주 녹색성장委 총괄기획분과위원장

“그린뉴딜, 일자리보다 ‘인류생존 철학’ 앞서야”
건축부문 예산, 패러다임 전환에 ‘태부족’

녹색성장위원회는 정부의 녹색성장정책을 심의·조율하고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국무총리실 산하기구다. 2009년 설치돼 현재 10기 위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환경과 경제성장간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해 나가기 위한 과업을 수행한다.

이명주 녹색성장위원회 총괄기획분과위원장(명지대 교수)을 만나 포스트코로나시대 그린뉴딜 도입배경과 한국판뉴딜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 코로나대응에 그린뉴딜이 주목받는 이유는
코로나 이전부터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이 경고돼 왔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점진적인 지식축적으로 개선·발전되는 형태가 아니라 이전 시대의 시스템과 단절된 ‘파열’에 의해 새로운 체계가 정립되는 개념이다.

코로나팬데믹 직전 너도나도 4차 산업혁명을 말할 때 스마트교육·헬스케어 등 신개념 서비스들이 제시됐지만 사람들은 혁신의 리스크를 굳이 감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코로나는 마치 이것 때문에 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하듯 비대면을 핵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기술과 서비스의 필요성을 급격하게 끌어올렸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사용자가 원하는 곳에서 언제든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환경분야에서도 신기후체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코로나에 앞서 제기되고 있었다. 기존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블랙스완*과 같은 재난·재해가 세계 곳곳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한번 보기도 힘든 재난이 수차례 동시다발적으로 발현하면서 인류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해야만 하는 시점에 왔다.

이와 같은 기후위기는 도시집중 현상을 가속화한다. 도시는 비교적 재난대비 인프라가 갖춰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도시의 수용능력을 초과하는 인구가 집중되면서 위생, 질병, 쓰레기, 에너지 등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재해에 가장 취약한 곳이 곧 도시가 된다.

이에 따라 포스트코로나시대에 새로운 글로벌 경제·사회·환경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책기조인 그린뉴딜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야기한 숱한 재양과 자연이 주는 경고에 직면한 상황에서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질문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블랙스완(Black Swan):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 발생확률은 매우 낮지만 한번 발생하면 큰 충격을 동반하는 사건을 말한다.

■ 녹색성장과 그린뉴딜의 차이점은
그린뉴딜은 녹색성장의 발전된 형태다. 그린뉴딜을 통해 추진되는 정책은 녹색성장시대의 정책이 초석이 돼 지난 8년간 많은 지자체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으로 발굴·추진됐던 구체적이며 근본적인 대책들이다.

이에 따라 녹색성장이라는 정책기조 자체가 의미없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녹색성장과 그린뉴딜이라는 정책기조는 나름대로의 시대적 가치와 의의를 지니고 있다.

2009년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하고 2010년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2012년 녹색건축물조성지원법(이하 녹색건축법)을 제정했다. 녹색건축법에 제로에너지건축물, 그린리모델링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그린뉴딜정책에 건축관련분야의 폭넓은 공감대가 확산될 수 있었다. 법이라는 테두리를 만든 녹색성장이 산파역할을 했다.

물론 과거에 수립된 정책이 초기단계에서 만들어진 만큼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린뉴딜을 실행하면서 이를 개선하는 법과 정책으로 발전돼야 한다.

과거 추진했던 ‘그린홈 100만호사업’의 경우가 바로 그 예다. 건축물의 에너지소비량을 줄이지 않고 태양광패널 등 신재생에너지만 붙여 ‘그린홈’이라 명명했다. 당시에는 패시브설계 요소기술, 저에너지건축물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질 그린뉴딜의 핵심사업인 녹색산단, 그린스마트스쿨, 제로에너지건축물, 그린리모델링 등은 근본적으로 기후변화에 적응하며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저탄소경제 체계를 만들 수 있는 사업으로 계승·발전돼야 한다.



■ 한국판 그린뉴딜을 평가하면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범위와 규모 측면에서 부족하다. 먼저 그린리모델링을 추진한다는 것은 에너지성능 개선을 통해 환경적으로 기여할 수 있고 기후재해 속에서도 사람들이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국가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당분야에서 기술과 경험을 갖추고 있는가로 결정된다. 숙련된 고도의 기술자가 많을수록 탄탄한 산업기반을 갖출 수 있다. 이러한 정부정책이 시행되면 기술자가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양성될 수 있다. 선행작업을 했던 설계·시공·감리분야 전문가들이 조금만 방향을 잡아주면 건축·건설인의 기술·경험습득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포스트코로나 이후 지속가능성 개념이 뉴노멀로 자리잡은 시대에서 전 세계가 건물분야에 요구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제로에너지건축물과 그린리모델링분야 인력양성을 통해 국가경쟁력이 확보된다면 ‘K-건설·건축’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그린뉴딜의 첫발은 나쁘지 않았지만 기후변화 적응, 온실가스 감축,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철학이 부재한 상황에서 일자리창출에만 방점을 둬 아쉽다.

그린뉴딜은 인류생존의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려면 지속가능한 사회,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전체적인 프로젝트 구성은 이를 감안해 짜여야 하며 기술개발, 지원사업도 이에 벗어나는 것은 과감히 걸러야 한다. 공공부문이 투자해야 할 것과 덜해야 할 것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확하게 갖고 프로젝트를 진행토록 개선해야 한다.

■ 건물분야 그린뉴딜의 적정규모는
정부가 한국판뉴딜 종합계획에서 밝힌 그린뉴딜 중 건물분야의 핵심인 그린리모델링의 경우 올해 2,200억여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공공건축물 중 어린이집, 보건소, 의료기관 등 1,000여곳이 지원대상이다.

사실 공공청사, 초등학교, 주민센터, 마을 경로당 등도 모두 포함시켜야 한다. 전국 경로당 6만여개, 유치원 5만여개, 보건소 3,000여개, 공공청사 4,000여개, 초·중·고등학교 1만여개 등을 고려해 면적기준으로 공사비를 산출하면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600조원이 필요하다.

불특정 다수의 국민이 사용하는 공공시설물을 장기적인 로드맵을 기반으로 개선해야 하는 건축정책 방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2,200억여원이라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1~2년 내에 무엇을 고쳐야만 한다는 식의 정책으로는 적은 돈도 사용하기 어렵고 사용한다 하더라도 정확한 목표달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2년만에 그린리모델링이라는 사업자체가 무용지물이라는 ‘속 좁은 평가’를 받을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산업계에 전문가·기술자가 충분치 않기 때문에 당장 민간에서 추진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통찰력 있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세워 국민을 위한 ‘건축물 재생사업’을 국가기조로 채택해야 한다.

국가재정사업을 통해 그린리모델링을 꾸준히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력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기술·자재개발을 가속화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2025년 민간 제로에너지건축 의무화가 진행되는 시점에 기존대비 5%를 넘지 않는 돈으로도 에너지자립률 40% 이상을 감당하는 수준으로 민간시장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가 강력한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