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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혼탁한 단열재시장, 녹색건축 ‘발목’

불량단열재 제조·유통 ‘광범위’
출혈경쟁, 품질저하로 이어져
업계 자구책·제도 강화 ‘시급’



혼탁한 단열재시장이 건축물 품질향상에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녹색건축이 산업계에서 주목받으면서 건축물의 고품질화, 건설기술의 고도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혁신이 정체된 건설산업의 신성장동력으로 여겨지면서 우리나라 건설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녹색건축은 고도화된 설계·건자재·설비기술을 비롯해 BIM·통합설계와 같은 건축프로세스 혁신을 바탕으로 계획·설계·시공·운영·폐기 등 건축물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정밀한 조치가 요구된다.

이에 따라 건물분야의 기후변화 대응, 환경적 지속가능성, 경제성장, 산업고도화 등 거시적 효과뿐만 아니라 에너지비용 절약, 쾌적성 향상 및 건강증진, 하자감소 및 예방, 화재·재난·혹한·폭염으로부터의 보호 등 거주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건축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제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건물이 디지털·시스템화되며 유기적으로 관계해 균형을 이루는 만큼 어느 하나라도 불량할 경우 본래 의도한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게 된다.

이와 같은 건설산업의 흐름을 단열재시장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단열재시장의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권고기준을 지키지 않거나 불법·편법이 만연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수행하는 건축안전모니터링 등에서 지속적으로 불량한 단열재가 적발되고 있으며 불량자재에 따른 건물하자 발생이나 화재피해 확산과 같은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지난해 3월 건축자재를 관장하는 건축안전팀을 신설한 후 1년이 지나기도 전인 지난 2월 건축안전과로 승격했다. 또한 건축법 및 시행령, ‘건축물 마감재료의 난연성능 및 화재 확산 방지구조 기준(이하 화재확산방지기준)’, 관련 KS 등의 개정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현재 단열재시장에서 발생하는 품질관련 문제와 개선방안을 모색한다.

불량자재 제도·처벌 강화
건축용 단열재는 △비드법단열재(EPS) △압출법단열재(XPS) △폴리우레탄단열재(PU) △페놀폼단열재(PF) 등 유기단열재와 △글라스울단열재 △미네랄울단열재 등 무기단열재, △진공단열재 △저방사단열재 등 복합단열재 등으로 구분된다.

단열재의 성능규제는 크게 단열성능, 난연성능, 환경성능으로 나뉜다. 단열성능은 현재 ‘건축물 에너지절약 설계기준’ 상 지역별·부위별로 열관류율·두께를 기준으로 건축물에 적용돼야 할 단열재의 성능을 규제하고 있으며 각각의 KS에서 열전도율·열관류율 등의 시험방법과 이에 따른 등급분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난연성능은 건축법 및 시행령,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이하 피난방화규칙)’ 등을 통해 건축물 규모·용도·부위에 따라 적용해야 할 불연·준불연·난연성능 단열재를 규제하고 있으며 화재확산방지기준과 관련 KS를 통해 시험방법과 성능등급 분류기준을 규정한다.

환경성능은 단열재를 규제하는 법령은 없으나 환경부의 ‘건축자재의 오염물질 방출기준’을 통해 TVOCs, 톨루엔, 폼알데하이드 등에서 벽지·바닥재 등 6종의 자재를 관리하고 있다. 환경부는 국토부와 함께 단열재의 관리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연내 제도가 마련될 전망이다.

이와 같은 단열·난연성능 품질관리를 위해 건축법 시행령을 통해 품질관리서를 작성하고 자재공급자, 시공자, 감리자가 순차적으로 서명·날인해 보증토록 하고 있다. 또한 화재확산방지기준을 통해 건축사협회에게 자재 품질관리정보 DB를 구축·관리·공개토록 하고 제조·유통업자에게 외단열재의 표면에 제조사·제품명·밀도·난연성 등 정보를 표기토록 했다.

품질감시 방안으로는 건축법 및 시행령·시행규칙에 따라 국토부가 건축안전모니터링과 ‘불법 건축자재 신고센터’ 운영을, 산업표준화법에 따라 국가기술표준원이 ‘시판품조사’를 실시함으로써 관리하고 있다.

만약 법정기준에 맞지 않는 자재를 속여 판매하거나 불량단열재를 제조·유통하다 적발되면 건축법에서 따라 5억원 이하 벌금,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영업정지, KS인증 취소 등의 처분을 할 수 있다.



품질불량 ‘만연’
이와 같이 단열재 성능·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기틀이 갖춰져 있지만 현장에서는 불량사례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국토부가 2018년 시행해 지난해 7월 발표한 ‘제4차 건축안전모니터링’에서 단열재, 복합자재(샌드위치패널)의 △시공상태 △시험성적서 △열전도율 △두께 △밀도 △난연성 등을 점검했다.

단열재의 경우 114개 현장을 점검한 결과 20.2%가 불량으로 나타났다. 현장에는 KS인증이 표시되지 않거나 유사표시제품이 유통되고 있었으며 성능미달 자재가 생산 및 유통되고 있었다.

복합자재의 경우 불량률이 45.7%에 달했다. 점검시료와 시험성적서의 밀도가 다르고 강판의 두께를 얇게 해 생산한 사례가 적발됐다.

1~4차까지 역대 모니터링 결과 불량률은 단열재의 경우 18.2%→37.8%→48.4%→20.8%로 3차까지 10%p 내외로 증가하다 4차에서 절반가까이 낮아졌다. 복합자재의 경우 49%→44.4%→45.9%→45.7%로 불량률이 개선되지 않고 답보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2월 행정안전부가 국토부와 함께 실시한 안전감찰에서는 130개 건설현장에서 195건의 위법사항을 적발했다. 이중 시험성적서 위·변조가 87건, 불량자재 생산·시공이 43건으로 전체 적발건수의 약 66.7%를 차지했다.

이들은 타 업체가 받은 시험성적서를 자신의 것으로 위조하거나 두께, 시험결과, 발급연도 등을 임의로 수정하기도 했다. 또한 현장에 납품된 단열재를 화재시험한 결과 성능이 미달하는 것으로 나왔으며 특정 복합자재의 경우 제조업체나 건설현장에서 공통적으로 화재성능이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안부는 시험성적서 위·변조 자재업자 등 36명, 난연성능 미달 건축자재 생산·시공 제조업자 등 20명을 형사고발하고 제조업자 17곳을 영업정지했다. 건축자재를 불량하게 시공했거나 품질관리를 소홀히 한 건축사 28명도 징계처분이 내려졌다.





원가절감 명목 ‘품질 포기’
업계 전문가들도 현장의 불량단열재 제조·유통사례가 광범위하고 빈번하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으로는 정부의 모니터링과 감찰에도 적발된 것처럼 품질을 속여 파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부 제조업체들이 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을 생산한 뒤 시험성적서를 위·변조하거나 기준에 적합한 제품으로 시험성적서를 획득한 뒤 현장에 공급하는 제품은 품질을 낮춰 생산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단열성능이 높으면서 준불연성능을 갖춰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PF의 경우 2~3개기업이 생산하기 때문에 제품공급이 원활치 않아 KS성능기준에 미달되는 중소기업제품이나 중국산이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길용 방재시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중·소규모 건축물에 많이 설치되는 폴리에틸렌폼 재질의 단열재의 경우 시험성적서상 열관류율 값과 건축현장에서 샘플링한 열관류율 값의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시험성적서와 생산제품의 품질이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난연성능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소방화재학회는 2019년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건축용 압출발포폴리스티렌(XPS)의 자기소화성에 대한 실험적 연구’ 논문을 통해 현장에 유통되는 유기단열재 중 최소한의 화재안전성능인 ‘자기소화성(착화된 후 스스로 불이 꺼지는 성질)’이 불량인 사례를 지적했다.

지난해 1월 국내 한 신축공사장에서 용접과정 중 단열재에 불씨가 옮겨붙어 화재가 발생한 사건을 계기로 시중 5개사의 XPS 시료를 수거해 실험을 진행한 결과 2개사의 제품이 불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기단열재인 XPS는 불에 잘 타기 때문에 난연재를 첨가해 자기소화성을 갖춰야 한다. KS M 3808(발포 폴리스티렌 단열재)은 착화 후 120초 이내에 불이 꺼져야 하고 불이 났을 때부터 꺼졌을 때까지 단열재가 탄 길이가 60mm 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개 불량품 중 하나는 5번의 실험에서 모두 연소시간 120초를 초과하고 연소길이도 150mm로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다른 한 불량품은 연소시간은 기준을 충족했으나 연소길이가 평균 120mm를 초과했다.

환경성능 측면에서는 지난해 1급 발암물질인 폼알데하이드가 환경부의 내장재 기준치를 초과해 논란이 됐던 PF도 품질관리 불량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강재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박사는 “PF는 흡착, 진공흡입, 촉매중화, 베이크아웃 등의 방법으로 폼알데하이드와 같은 유해·위해물질을 허용기준치 이하로 만들 수 있다”라며 “위해물질의 위험도가 높고 단기간에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건축관련 단체의 한 관계자도 “PF 역시 다른 단열재와 마찬가지로 충분한 숙성과정과 후처리를 통해 유해물질을 제거할 수 있어 이론적으로는 현장적용에 무리가 없다”라며 “지난 PF 폼알데하이드 방출 논란은 제조사가 후처리과정을 소홀히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나친 ‘출혈경쟁’ 원인
업계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이와 같은 저품질 자재의 유통이 결국 기업생존이나 이익극대화를 위한 원가절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단열재업계는 신규기업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며 가격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열재산업은 제조공정이 단순한데다 최근 중국산 생산설비가 유입되며 설비비용 역시 크게 낮아졌다. 이에 따라 진입장벽이 낮아지며 수십개의 신규기업이 등장해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가격을 낮출 수 없자 발포제, 난연제 등 첨가물을 빼거나 원료를 줄여 품질을 낮추고 있다. 품질이라는 안전망을 지키지 않고 하한 없이 제품가격을 낮추면서 결국 업계가 자생력과 시장의 신뢰를 잃고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저가경쟁을 부추기는 시장구조도 문제다. 현재 단열재 제조업체들이 무리한 출혈경쟁을 벌이는 원인은 시장구조적으로 공급자들이 브로커에 종속돼있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단열재업계는 특성상 영세·중소기업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전국 곳곳의 건설현장을 직접 다니며 영업하기 어려워 브로커를 이용해 납품하고 있다.

영업의 편의성을 위해 브로커를 이용하게 된 것이지만 이와 같은 상황이 기업의 영업역량 저하와 브로커·현장간 네트워크 강화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종속구조가 형성됐고 이것이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

브로커는 계획된 단가보다 낮은 수준에서 공사현장에 금액을 제안하고 중간마진을 챙긴다. 낮아진 납품단가의 부담은 고스란히 제조업체로 전가된다. 제조기업이 품질을 낮추지 않고서는 경영을 유지할 수 없는 수준까지 단가가 형성된다.

일부 기업이 이와 같은 브로커와의 거래에 응해 납품하면 경쟁기업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같은 선택을 하게 돼 단열재시장의 품질저하 문제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건축설계업계의 한 관계자는 “브로커들은 대기업을 비롯한 시공사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라며 “이들은 어떤 현장에 좋은 품질의 자재가 공급돼야 하는지, 어떤 현장에 값싼 제품을 공급해도 되는지, 어떤 제조사가 요구사항에 잘 맞춰주는지, 어떤 제조사가 비싸지만 품질이 좋은지 꿰고 있어 입맛에 맞게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확한 통계가 나온 것은 없지만 비상주감리공사인 소규모 건축시장이 전체시장의 80% 수준이기 때문에 최소한 국내 납품되는 단열재의 절반 이상은 불량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즉 상주감리대상과 같이 건축자재의 품질시험을 보내는 현장에는 정상제품을 납품하고 비상주감리 현장에는 불량가능성이 높은 제품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상주감리대상은 △바닥면적의 합계가 5,000㎡ 이상인 건축공사 △연속된 5개층 이상으로 바닥면적의 합계가 3,000㎡ 이상인 건축공사 △아파트 건축공사 △준다중이용 건축물 건축공사 등이다.




업계, ‘환골탈태’ 필요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문제해결을 위해 제도·산업은 물론 업계 내·외 여러 분야에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정만 한국패시브건축협회 회장은 “물성, 품질이 같은 단열재를 취급하면서 매출을 높이려면 도면제공·시공자문·공사감독 등 서비스를 강화해야지 제품품질을 낮춰서는 안된다”라며 “업계가 자체적으로 단체를 만들고 공정하게 운영함으로써 공신력을 확보한 뒤 강력한 자체규제정책을 시행·집행함으로써 자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밝혔다.

이길용 수석은 “현장사용자들이 단열재의 생산·유통업체가 제시한 시험성적서만 믿고 적용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라며 “건축주나 품질관리자가 직접 시험기관에 의뢰해 적합한 제품인지를 확인한다면 개선효과가 클 것”이라고 밝혔다.

강재식 박사는 “최근 국토부가 시행한 처벌강화 조치와 행정예고돼 시행을 앞두고 있는 화재확산방지기준을 통해 시장정화가 기대된다”라며 “화재확산방지기준 개정안에는 시험방법, 화재방지 재료 및 시스템 등을 폭넓게 담고 있다”고 밝혔다.

혼탁한 단열재시장은 오랫동안 방치돼왔기 때문에 전문가들조차 해결이 쉽지 않다고 혀를 내두른다. 국토부가 최근 건축법 및 시행령, 피난방화규칙, 화재확산방지기준 등을 1년에도 수차례씩 개정해 처벌기준 강화, 품질관리제도 개선, 시험평가방법 개선 등을 추진하고 이에 더해 용역기관을 동원해 모니터링을 강화하자 업계로부터 민원과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국토부의 관계자는 “워낙 민감한 분야여서 민원에 시달린다”고 토로하고 있으며 단열재관련 정부용역을 수행하는 시험기관의 관계자도 “강성민원이 자주 제기되는 분야여서 조심스럽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의 ‘환골(換骨)’의 고통 없이는 ‘탈태(奪胎)’도 없다. 저가·출혈경쟁으로 산업이 발전한 사례가 없는 만큼 업계는 품질과 서비스 혁신을 통해 단열재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고 정부도 업계의 민원 때문에 시행이 미뤄지고 있는 화재확산방지기준, 관련 KS개정을 빠른 시일 내에 시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축설계사무소나 건설사 등 단열재 발주처·수요자 측에서 단가를 지나치게 낮게 요구하거나 품질을 소홀히 여기지 않도록 제도·구조·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녹색건축은 패시브건축을 기반으로 고효율설비와 신재생에너지설비 등 액티브 요소를 접목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패시브건축의 핵심요소인 단열재의 품질확보 없이는 녹색건축의 성능확보가 요원하다. 단열재시장 정화와 품질정상화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