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냉난방공조·신재생·녹색건축업계는 전례없는 복합위기에 직면했다. 국내 건설경기 침체는 전년대비 더 심화됐으며 실물경기 위축과 러·우 전쟁지속, 미국발 통상압력, 글로벌 금리인상, 원자재가 상승 등 대외환경 악재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모든 업종이 전반적인 실적부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신축아파트 및 오피스 등 민간건축 수요가 급감하면서 중앙공조, 보일러, 환기, 단열재, FCU, 펌프, 밸브 등 대부분의 기계설비 업종은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보일러업계는 연평균 성장률이 4% 수준에 머무는 가운데 신축수요가 사실상 멈추며 정체기에 돌입했고 중앙공조 및 냉각탑업계는 건축시장 수요위축에 따라 30~40%대 매출감소를 겪은 기업도 적지 않았다. 펌프, 밸브 등 주요 자재기업들 역시 대형 프로젝트 부진에 따라 수주가 감소하며 실적 감소세를 피하지 못했다.
업계, 기술고도화 통한 본원적 경쟁력 확보 집중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외부시장에서 기회를 발굴하거나 자체 기술력과 신제품 전략을 통해 반등에 성공한 기업들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외부시장 중심의 돌파구는 데이터센터(DC)다. DC시장은 클라우드 확산, AI시장 성장 등에 힘입어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졌으며 관련 쿨링·전원장비시장은 나홀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DC에 항온항습기, UPS, 배터리, 냉동기 등을 공급하는 기업들은 전체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선방하며 실적을 방어하거나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반도체산업의 회복세도 주요 납품기업 실적개선을 견인했다. 반도체 생산라인에 필수적인 반도체 공정용 칠러시장은 주요기업이 실적반등을 기록했으며 클린룸, 드라이룸 관련업계도 실적개선이 눈에 띄었다.
DC, 반도체시설을 포함한 이차전지, 병원, 실험동물시설, 대형건축프로젝트, 대형물류센터 등 고부가가치 수요처에 납품한 공조·펌프·밸브기업들은 여전히 일정수준 매출을 유지하며 기계설비업계 경제규모를 견인했다.
기술개발과 신제품 출시를 통해 제도변화에 발맞춘 기업들의 선전도 두드러졌다. 방화댐퍼 업계는 소방법 개정으로 제품단가가 10배 가까이 상승하며 시장규모가 급팽창했고 관련인증과 성능요건을 충족한 기업들이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단열재업계에서는 화재안전기준 강화에 대응해 준불연 성능을 확보한 제품군을 출시하며 고성능·고품질시장 중심으로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및 친환경컨설팅 업계는 제로에너지빌딩(ZEB)인증 의무화 흐름에 대응해 시장확대 기반을 다지고 있으며 B2B시장 경쟁격화에 따라 B2C 환기시장으로 눈을 돌린 환기기업도 소비자 친화형제품 출시와 유통망확보를 통해 활로를 찾고 있다.
시장전반이 정체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일부업계는 자체적인 기술고도화를 통해 차별화를 시도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냉각탑 업계는 초저소음, 백연저감형, AI기반 제어기술 등을 적용한 고부가가치 제품라인업 확대에 나서며 DC·발전소·산업시설 등 고정밀 냉각이 필요한 수요처를 중심으로 성장가능성을 이어가고 있다. 보일러업계 역시 인버터 압축기 기반 히트펌프, 신냉매 적용 공조기, 실내공기질(IAQ) 통합관리솔루션 등으로 업역을 확장하며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2024년 국내 건축설비 산업계는 ‘극심한 침체와 선택적 성장’이 병존한 해였다. 위기 속에서 기술력, 제품경쟁력, 시장대응력을 확보한 기업은 확실한 성과를 기록했으며 향후 산업구조 재편이 가속화될 것임을 시사하는 시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