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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AC 기술기준 전면 재검토 필요성 대두

대한설비공학회 하계학술대회, ZEB용 HVAC 기술기준 포럼 특별세션 개최

 

대한설비공학회 하계학술대회 ZEB용 HVAC 기술기준 포럼 특별세션에서는 제로에너지건축물(ZEB)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설비기술기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고단열·고기밀화된 ZEB에서 기존의 현열(온도)중심 HVAC시스템 및 성능기준이 한계에 부딪혔으며 특히 고온다습한 국내 여름철 기후특성을 고려할 때 잠열(습도)부하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핵심과제로 떠올랐다.

 

고온다습한 한국형 ZEB, 잠열부하 기준 마련 시급

강병하 국민대학교 명예교수는 ‘ZEB의 HVAC 기술기준 제정의 필요성’을 주제로 발표했다.

 

ZEB는 단열과 기밀성능을 극대화해 에너지부하를 최소화하지만 이로 인해 실내가 보온병처럼 밀폐돼 생활습기가 갇히고 필수적으로 도입되는 기계환기를 통해 여름철 고온다습한 외기가 다량 유입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 국내 대표 패시브하우스인 ‘람다하우스’의 실측데이터에 따르면 여름철 실내온도는 21~27℃로 쾌적하게 유지됐으나 상대습도는 60~85% 수준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높은 습도는 곰팡이 발생의 주원인으로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환경청(EPA) 역시 습도조절을 곰팡이 예방의 최우선 과제로 강조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현재의 성능기준과 실제 부하특성간 괴리에 있다. 국토교통부의 냉방설계용 온습도기준에 따르면 국내 여름철 냉방부하의 81%는 습기제거에 필요한 잠열부하이며 온도저감에 필요한 현열부하는 19%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행 열회수환기장치(KS B 6879)나 에어컨(KS C 9306)의 성능기준은 주로 온도교환효율(현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잠열부하를 제대로 평가하거나 제어하지 못한다.

 

강병하 명예교수는 “난방위주인 유럽에서 시작된 ZEB개념을 고온다습한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라며 “아열대화 돼가는 국내기후와 ZEB의 특성을 반영해 습도교환효율을 온도교환효율수준으로 높이고 냉방기의 현열비(SHR)를 평가하는 등 잠열부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HVAC 기술기준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열회수환기장치, 잠열교환효율 기준 신설 필요

성민기 세종대학교 교수는 ‘ZEB의 열회수형 환기장치 성능기준(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ZEB에서는 환기가 외부 습기유입의 주된 경로이므로 환기장치의 습도교환성능이 실내 습도환경을 좌우한다. 하지만 현행기준은 잠열교환효율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현열교환효율만 높은 제품을 사용할 경우 여름철에 외부의 습기가 그대로 유입돼 결로와 곰팡이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국내·외 성능기준 비교분석 결과 현행 국내표준(KS B 6879)의 하계 시험조건(35℃, 40% RH)은 잠열부하가 전체 엔탈피차이의 약 52%에 불과하다. 반면 고온다습한 기후를 가진 일본의 표준(JIS B 8639)은 시험조건(35℃, 75% RH)에서 잠열부하비중이 83%에 달해 잠열성능을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다. 실제 2024년 여름철 기후데이터를 비교한 결과 한국의 기후 역시 일본 못지않게 고온다습한 특성을 보여 국내기준의 현실화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열회수환기장치의 잠열교환효율은 평균 48.8% 수준으로, 50%를 넘는 제품은 소수에 불과하다. 일본제품의 경우 잠열성능을 중시해 대부분 50%를 상회한다. 최근 한국패시브건축협회에서 인증기준에 ‘유효잠열교환효율 50% 이상’ 항목을 추가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지만 국가 표준차원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성민기 교수는 “변화하는 국내 기후특성을 반영해 JIS표준처럼 잠열부하비중이 높은 시험조건으로 KS표준을 개정해야 하며 현열 및 전열효율기준과 별개로 잠열교환효율에 대한 명시적인 최소 성능기준을 신설해야 한다”라며 “이를 통해 제조사의 기술개발을 유도하고 ZEB의 실내 습도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냉방설비 제습성능 평가지표 도입 요구

서정식 한국냉동공조인증센터 본부장은 ‘ZEB의 냉방설비 성능기준(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기존 냉방설비의 성능은 냉방능력, 즉 온도를 낮추는 현열처리능력 중심으로 평가돼 왔다. 이로 인해 ZEB와 같이 잠열부하비중이 높은 건물에서는 냉방기를 가동해도 온도는 낮아지지만 습도가 높아져 쾌적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미국의 ‘전용외기시스템(DOAS: Dedicated Outdoor Air Systems)’과 그 성능 평가표준인 AHRI 920을 참고할만 하다. DOAS는 환기부하(온습도)와 실내부하를 분리해 처리하는 공조시스템으로 AHRI 920표준은 기존의 효율지표(IEER)와 달리 제습성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새로운 지표(ISMRE2)를 도입해 2025년 5월부터 최저 효율기준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도 DOAS와 같은 제습특화설비에 대한 새로운 평가기준 도입이 필요하다. 다만 북미의 표준을 그대로 가져오기에는 국내의 기후조건, 건물용도, 설계방식 등이 달라 현실에 맞는 한국형 표준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현행 냉방설비 성능표기를 건물의 부하특성에 맞춰 선택할 수 있도록 ‘현열비(SHR)’별 성능을 명기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서정식 본부장은 “최종적으로는 제습성능을 포함한 새로운 통합성능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고효율기자재인증이나 ZEB인증제도에 연계해야할 필요가 있다”라며 “냉동공조인증센터는 관련 제조사 및 전문가와 협력해 국내실정에 맞는 ZEB용 냉방설비 성능평가기준을 설비공학회 표준으로 개발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효과적 연계·제도수용성 확보 관건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학계와 산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기술기준 개정의 방향성과 현실적인 과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공통적으로 잠열부하관리의 중요성과 새로운 기준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실질적인 제도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다각적인 접근에 주목했다.

 

박덕준 KCL(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센터장은 “ZEB 관련제도가 인증, 에너지절약설계기준 등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어 새로운 기술기준이 이들 제도와 효과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라며 “현재 진행 중인 국가 R&D과제를 통해 새로운 건축물 에너지성능 평가 방법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인데 학계와 산업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열린체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심창호 에너지관리공단 연구소장은 “기술기준은 변화하는 기후환경과 젊은 세대의 높아진 온열환경 기대치를 먼저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라며 “과거 베란다확장 허용이라는 정책이 건조기산업 성장을 이끌었듯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필요성을 설득하는 과정이 기술적 논의만큼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병용 한밭대학교 교수는 “새로운 기준 도입에 동의하지만 국내 열회수소자기술이 일본의 코팅된 종이소자기술에 비해 아직 발전단계에 있어 시장이 즉각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국내 제조사들이 고정된 기준값을 맞추기 위해 개발하는 현재 방식에서 벗어나 미국의 DOAS표준처럼 다양한 기후대에 맞춰 자율적으로 성능을 제시하고 선택받을 수 있는 유연한 평가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기술발전을 촉진하는 길”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