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12일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는 파리기후협정 최종합의문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현재 지구의 평균온도는 1900년에 비해 약 1℃ 정도 오른 상태로 이대로 두면 2100년에는 4℃ 가량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파리기후협정은 이와 같은 지구 온도 상승을 최대 2℃로 제한하기로 했는데 1.5℃ 이하를 위해 노력한다고 명시했다. 교토의정서가 선진 38개국에만 감축 의무를 부담한 반면 이번 협정은 미국, 중국 등 195개 당사국 모두에 감축 의무가 주어지며 비로소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전 지구적 노력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의 37%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며 이를 위해 에너지신산업 등 신기후체제에 대비한 대응전략을 공표한 상황이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국가 총에너지소비 중 열에너지분야 28%, 전기는 13%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ESS, 전기자동차, 태양광 등 주로 전기에너지에 치중한 것을 알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열에너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온실가스 저감방안은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 고효율에너지기기 및 에너지절약, 그리고 신재생에너지다. 원자력발전은 현상유지를 천명하고 있는 만큼 본고에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 에너지절약은 건축물의 단열재 보강, 고성능 창호 적용 등과 같은 패시브 측면, 고효율에너지기기는 LED조명, 콘덴싱보일러, 고효율에어컨 등과 같은 액티브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제로에너지빌딩을 구현하기 위한 양축이며 선진국과 비교해도 그다지 뒤지지 않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적절한 보급정책이 뒷받침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격경쟁력이 뒤지는 고효율기기를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선진국과 격차를 보이는 분야는 신재생에너지분야다. 전문인력, 기술력, 시장규모 및 보급정책 등 갈 길이 먼 듯하다.
우리나라만큼 적은 연구비에 빠른 연구결과를 요구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연구성공률은 99%를 자랑하면서도 실제로 현장에 적용된 사례가 많지 않은 것은 완성도가 높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안심하고 적용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철저한 검증에 많은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에너지설비의 경우 건축·플랜트에 적용되기에 앞서 까다로운 평가와 인증 및 적용사례 등을 요하다 보니 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경향이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비가 투입된 연료전지만 해도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도 막대한 연구와 개발이 이어져야 한다. 연료전지의 가장 큰 장점으로 분산형 전원이면서 열생산도 동시에 가능하다고 강조하지만 같은 도시가스를 연료로 하는 복합화력(가스터빈+증기터빈)과 비교해 효율과 경제성 모두 현재로서는 열세이다. 반드시 극복해야 할 매우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동안 태양열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소형 태양열 냉난방겸용시스템의 출현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올해도 제습냉방을 적용한 2RT급 시스템이 출시될 예정이다.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태양열시스템은 경제성, 안전성 면에서 이상적이기는 하나 난방용으로 설치된 시스템의 경우 여름철에 넘쳐나는 고온수를 주체할 수 없어 집열기를 가림막으로 차단하거나 냉각기를 사용해 일부러 식혀야했다. 버려지는 열도 아깝지만 이를 소홀히 하는 경우 집열기 과열로 인해 수명단축으로 이어진다. 10RT 이상의 흡수식냉동기를 기반으로 하는 대형 태양열 냉난방시스템은 서울시 신청사를 비롯해 설치 및 운전실적이 일부 있지만 집열기를 대규모로 설치해야 하는 공간상의 제약이 있으며 90℃ 이상의 열이 필요해 수입산 진공관형 집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에 상용화를 앞둔 소형 태양열 냉난방겸용시스템의 핵심기술은 제습냉방이다. 이를 위해 KIST측에서는 15년이상 원천기술 확보에서부터 응용기술까지 한국적인 정서에서 보면 ‘장기간’에 걸쳐 개발을 수행했다. 히트펌프를 내장한 제습냉방기는 60℃ 이상의 열원에서 작동되며 국산 평판형 집열기를 사용할 수 있어 수입대체효과도 크다. 태양이 없는 흐린 날이나 비오는 날은 냉방부하가 작게 걸리므로 내장된 히트펌프만으로도 원활한 냉방이 가능하다. 보조열원이 필요없는 만큼 시스템도 매우 단순해진다.
앞서 언급한 연료전지, ESS, 전기자동차, 태양전지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기술들이며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성능과 경제성을 만족하는 제품으로 온실가스 저감에 기여하기까지는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이미 개발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고 추가적인 대규모 기술개발없이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앞서 잠깐 언급했던 히트펌프이다. 다행인 것은 지열에 이어서 최근에 일부 수열원 히트펌프가 신재생에너지기기에 포함됐다. 하지만 공기 등의 자연에너지를 열원으로 이용하는 모든 히트펌프를 신재생에너지기기로 인정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다. 대부분의 유럽 및 일본에서는 이미 공기열원 히트펌프가 신재생에너지기기이며 실제로 온실가스 저감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판명된 상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온실가스 저감방안을 유력한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히트펌프, 태양열, 지열 등 신재생열에너지 요소기술은 기술적으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으며 제도적인 보완과 지원만 뒷받침되면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다. 다만 에너지공단 ‘공공기관 신·증·개축 건축물에 대한 신재생에너지 설치 의무화 사업’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히트펌프의 열출력을 모두 신재생에너지로 간주하거나 냉방 시 열원측으로 방출한 열량도 신재생에너지에 포함시키는 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릇된 산정법으로 조속히 개정돼야 한다.
즉 히트펌프의 출력에서 얼마만큼이 신재생에너지인지 정확한 산정이 이뤄져야만 제대로 된 온실가스 저감효과를 기할 수 있게 된다. 히트펌프의 출력 QH에서 압축기 소비동력 W의 1차에너지를 뺀, 즉 QH-2.75W를 신재생에너지로 간주하자는 주장을 펼친 바 있었는데* 2.75W 중에서 온실가스를 발생하지 않는 원자력 등을 제외하면 이중 60%만이 온실가스 발생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QH-1.7W를 ‘온실가스 저감에 기여하는 신재생에너지의 양’으로 간주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가 판단된다.
올해부터 공공건물 신재생에너지 의무화 비율이 18%로 늘어나면서 목표량을 채우기에 마땅한 방식이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이다. 공공기관 신재생에너지 의무화나 정부에서 집중하고 있는 에너지신산업 등의 궁극적인 목표가 온실가스 저감이라면 강구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더 이상 수열원, 공기열원 히트펌프를 배제할 이유가 없다. 히트펌프의 성능계수만 적절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된다면 너무나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임을 강조해둔다.
창조스러워 보이는 연료전지(MCFC, PEFC 등)나 태양전지(DSSC, OPV 등)와 같은 미래의 첨단기술이 아니고 화려한 맛은 없지만 복합화력, 콘덴싱보일러, 태양열온수기, 시스템에어컨과 같은 확보된 기술이 지금 당장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수단이다.
*히트펌프와 신재생열에너지에 대한 고찰, 2015년, 설비저널 제44권 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