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설비공학회는 국내 최대 기계설비분야 학술단체로 건축·기계설비분야 학술연구와 기술개발을 선도하며 국가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ESG 규제강화에 따라 건설·설비분야에서도 자발적 탄소시장(VCM)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학회차원에서 관련연구와 기술기반 구축을 적극 준비하고 있다. 송두삼 설비공학회 회장은 2019년 환경부 산하 ‘저탄소사회비전포럼’에서 건물부문위원장으로 건물분야 온실가스 감축계획 작성을 주도했으며 2022년부터 국토부 GR얼라이언스 위원장으로 국내 건물분야 탄소중립을 위한 기존 노후건축물 GR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송두삼 설비공학회장을 만나 건설·기계설비분야 VCM 활성화 동향과 향후 국내 VCM 활성화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 건물부문 탄소중립을 위한 VCM 역할은
영국의 리트로핏 탄소크레딧(Retrofit Carbon Credit)제도를 참고할 만하다. 리트로핏 탄소크레딧제도는 기축건물 에너지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기업투자를 통해 기축건물의 에너지효율 개선 및 탄소배출 저감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절감된 탄소배출량은 탄소크레딧으로 전환돼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 기업은 이 제도를 통해 기업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실제로 이코노미스트그룹과 유니스트 트러스트 뱅크와 같은 기업이 리트로핏 탄소크레딧제도에 참여해 탄소배출을 상쇄하며 영국 내 주택 에너지효율 개선을 지원한 성과가 있다. 또한 HACT(Housing Associations’Charitable Trust)와 PNZ(previously Arctica Partners) Carbon의 리트로핏 탄소크레딧제도는 공공임대주택(사회주택) 에너지효율 개선을 위한 추가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탄소크레딧을 활용하는 혁신적인 방안이다.
이 제도는 탄소배출 저감뿐만 아니라 거주자 삶의 질 향상과 같은 사회적 가치도 함께 고려해 기업들이 환경적 및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 건설산업 VCM 활용방안은
기존 탄소배출규제는 주로 기업이 직접 배출하는 Scope 1, 2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유럽연합의 CSRD(기업 지속가능성 공시지침), 미국의 SEC(증권거래위원회) 기후 공시규정 등 글로벌 규제기관들이 기업공급망 전체 탄소배출(Scope 3)까지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면서 건설업계도 공급망 탄소배출 저감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건설업 특성상 탄소배출 상당부분은 건축자재(시멘트, 철강 등)와 중장비 사용에서 발생한다. 이에 따라 건설사는 탄소저감기술을 도입하는 한편 VCM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부족한 감축분을 상쇄하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VCM을 통해 기업들은 탄소감축프로젝트에 투자하며 이를 통해 인증된 탄소크레딧을 획득하거나 구매함으로써 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다.
■ 국내 VCM 정책‧제도 개선방안은
현재 한국 VCM은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국제적 신뢰도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국내에서 발행된 탄소크레딧이 글로벌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기업들이 ESG공시 및 국제 탄소규제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ISO 14064(온실가스 감축 프로젝트인증)나 ICVCM(Integrity Council for the Voluntary Carbon Market) 기준을 적용한 인증시스템을 구축하며 국제시장과 정합성을 맞춰야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VCM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현재 기업은 탄소배출권거래제(ETS) 등 강제 감축시장에 익숙하며 VCM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업이 탄소감축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유인을 마련해야 한다. VCM을 통해 탄소크레딧을 구매한 기업에게 세액공제를 부여하거나 친환경 금융상품(녹색채권, 지속가능채권)에서 우대금리를 받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공공조달 및 입찰에서 VCM 참여기업에 가점을 부여하는 등 인센티브가 마련된다면 기업의 관심을 유도하며 국내 VCM 조기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 글로벌 VCM 시장전망은
최근 몇 년간 VCM이 급격한 위축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성장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우선 탄소중립 목표는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EU와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은 탄소감축 목표를 확대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따라 VCM은 ETS를 보완하는 유연한 감축수단으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최근 국제적으로 VCM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개혁 움직임이 활발하다. ICVCM(자발적 탄소시장 신뢰성 위원회)과 VCMI(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 이니셔티브) 등 주요 기관들은 탄소크레딧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인증기준을 강화하고 있으며 베라(Verra)와 골드스탠다드(Gold Standard) 같은 주요 인증기관들도 보다 엄격한 검증절차를 도입하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기반 탄소크레딧 이력관리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투명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보다 신뢰할 수 있는 크레딧을 확보할 수 있으며 VCM도 그린워싱(Greenwashing) 논란에서 벗어나 점진적인 신뢰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실효적 VCM 평가인증체계 구축 방안은
건물부문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VCM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면 인증‧평가기관과 산업계가 긴밀히 협력해 전문성을 확보하며 효과적인 평가방식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인증‧평가기관은 평가체계를 정립하며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탄소감축 인증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산업계는 VCM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적용하며 정부정책 및 인증평가절차 개발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먼저 인증‧평가기관은 탄소감축기술과 요소별 감축량을 적절히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에너지절감 및 온실가스 감축 요소기술에 대한 세부적인 감축량 산정방법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평가방식은 국제적 기준(IPCC, ISO 14064, GHG Protocol)과 국내정책(K-ETS)의 정합성을 고려해야 하며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M&V(측정·검증)시스템을 도입해 데이터기반 평가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평가과정의 객관성을 강화하며 검증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인증‧평가기관은 산업계와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감축효과를 검토하며 지속적으로 평가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평가기관은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인증절차를 개발하며 실증데이터를 바탕으로 감축량산정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 산업계가 보유한 BEMS 데이터‧HVAC 성능데이터 등을 활용해 빅데이터 분석 및 AI기반 감축량 검증체계를 마련하면 보다 신뢰성있는 VCM 탄소크레딧 평가가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