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해 냉난방기기는 필수적인 에너지설비로 자리잡아 왔다. 그 중 하나인 히트펌프는 적은 구동에너지를 투입해 이보다 많은 열에너지를 획득할 수 있는 기기인데 하나의 장치로 냉방과 난방을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히트펌프는 투입에너지대비 산출에너지가 평균 3~4배에 달하며 가스보일러나 기름보일러대비 온실가스 배출량도 40~50%밖에 되지 않아 에너지절감 효과가 매우 큰 기기다.
이러한 고효율성으로 인해 히트펌프는 1970년대 후반부터 국제에너지기구(IEA)를 비롯한 선진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IEA의 에너지기술전망보고서 ETP2010에서는 2050년까지 건물에너지부분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량의 60% 이상을 히트펌프가 기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스웨덴에 본부가 있는 히트펌프센터는 현재의 히트펌프기술만으로도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8%까지 감축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이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는 500MW급 석탄화력발전소 약 500기, 자동차 5,200만대에 해당하며 이산화탄소 흡수량으로는 한반도 면적의 2.2배 면적의 열대우림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특히 EU에서는 2008년 12월에 공기, 물, 토양을 이용한 히트펌프 활용기술을 히트펌프로 포함할 것으로 법제화까지 했다.
실제 히트펌프는 효율측면에서는 어떤 기기보다도 우수한 것이 사실이나 생산할 수 있는 온도는 80℃ 이하의 온수로 제한돼 있으며 추운 겨울에는 효율과 용량이 감소하는 점이 한계로 지적돼 왔다.
그러나 최근의 히트펌프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냉난방, 급탕, 건조 등 생활에 필요한 수준의 열은 히트펌프에 의해 매우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게 됐다. 또한 공기열원 히트펌프 외에도 지열히트펌프, 수열히트펌프 등의 다양한 열원을 활용하는 기술들이 많이 적용되고 있다.
독일, 일본, 미국 등 히트펌프기술 선진국에서는 전통적인 냉난방에서 나아가 활용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생산온도를 높이는 연구를 수행해 왔다. 실제 산업부문에서는 100℃ 이상의 고온을 공정에 활용하기 때문에 기존의 히트펌프기술로는 한계가 뚜렷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독일의 Combitherm에서는 120℃의 가압온수를 생산하는 히트펌프를 출시하고 일본의 고베스틸에서는 저압증기를 생산하는 히트펌프를 출시하는 등 기술의 진보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또한 제로에너지건물이나 에너지저장과 연계해 히트펌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과 지역냉난방용으로 히트펌프를 중심설비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응용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히트펌프기술의 발달은 시장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2005년 이후 유럽의 히트펌프시장은 유럽의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8.4%씩 성장해왔으며 물량으로는 2012년 기준으로 약 5,400만대가 보급돼 대중적인 기기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인 대외 여건에도 국내의 히트펌프의 보급과 시장인식은 그리 호전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199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히트펌프는 동절기 성능이 나빠 시장의 불신을 조장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대기업을 위주로 보급이 시작됐다.
심지어 2~3년 전에는 동절기 전력난의 주원인으로 지목받는 웃지못할 상황도 연출됐다. 오래 전부터 에어컨은냉방기기로써 독보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작동 원리의 히트펌프는 아직까지 난방기기로써 중심적인 역할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보일러를 위주로 전기히터, 전기장판과 같이 구조가 간단하고 초기투자비용이 저렴한 경쟁기술들이 선호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에너지가격적인 측면만을 볼 때는 히트펌프 보급에 매우 유리한 여건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외국과 비교해 도시가스와 전력요금이 GDP대비 매우 낮은 수준이며 전력요금대비 가스요금은 상대적으로 비싼 수준이어서 히트펌프 보급에 의한 경제성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비록 바닥난방과 공기냉방을 선호하는 국내 주거환경과 누진전기요금으로 인해 가정용 히트펌프 보급은 제한적이지만 공동주택, 상가, 공장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크다. 일례로 최근 전국적인 A/S망을 갖춘 유수의 보일러 전문기업들이 히트펌프산업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은 빠른 미래에 전통적인 난방시장이 히트펌프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을 예견하게 한다.
최근 전력수급상황 개선과 더불어 히트펌프는 에너지절약과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할 수 있는 핵심기기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국가에너지 절약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히트펌프라는 손에 잡히는 기술을 두고도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야 말로 히트펌프의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