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용어가 한때 이목을 끌었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초인지라고도 하며 간단히 말하면 자기객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달심리학 용어로 보통 아이들의 학습능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100m 수영을 놓고 자신의 체력과 기술 등 역량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한 뒤 완주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식입니다. 완주가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면 체력, 기술 등 어떤 능력을 강화해야 할지를 알 수 있게 되므로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이 가능합니다. 이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먼저 정확한 진단과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탄소중립이라는 인류 절체절명의 의제를 놓고 메타인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에 우리나라가 배출하는 전체 온실가스의 1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불소계 온실가스(F-gas) 대부분이 반영돼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심지어 이를 파악할 정확한 통계조차 공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실제로는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물질을 대량으로 사용하면서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에 반영되지 않음으로써 대책도 마련되지 않고 있습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음에도 문제를 문제로 정의하지 않음으로써 문제가 없는 것처럼 돼버려 해결되지 않는 형국입니다.
HFC 18종 중 2종만 집계
F-gas는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3.2%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2022년 글로벌 온실가스 총배출량이 406억tCO₂eq이므로 F-gas 배출량은 약 12억9,900만tCO₂eq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면 2020년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6억5,620만tCO₂eq이며 F-gas 배출량은 1,514만tCO₂eq로 집계됩니다. 그러나 이는 F-gas의 일종인 삼불화질소(NF₃)는 빠져있으며 F-gas 배출량 중 80%를 차지하고 있는 수소불화탄소(HFCs)는 극히 일부만 집계된 수치입니다.
우리나라는 총 18종의 HFCs 중 단 2종만 집계하고 있습니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2022년 18종의 HFCs 사용량은 6,457만6,624tCO₂eq에 달합니다. 기후변화센터가 수출입통계를 바탕으로 확인한 HFCs 및 HCFCs 사용량은 7,150만tCO₂eq입니다. 이는 HFCs 외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₆) 등을 빼놓은 수치지만 이미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에서 밝힌 F-gas 배출량 1,500만여tCO₂eq를 아득히 넘는 수치입니다.
손으로 하늘가리기?
문제해결에 앞서는 것은 문제를 바르게 정의하는 일입니다. CO₂보다 수천, 수만배 강력한 온실가스인 F-gas가 내뿜어지고 있다는 것은 실체적 진실입니다. 이를 문제로 정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미 있는 F-gas를 외면해 온실가스 감축목표 이행부담을 줄이는 일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입니다.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에 F-gas를 제대로 반영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상황을 인식해야 명확한 감축목표를 세울 수 있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감축전략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다행히 국제관세협력이사회(CCC)가 18종의 HFC를 특게할 수 있도록 HS코드를 부여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를 바탕으로 하루빨리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를 정비하고 업계에 공지함으로써 관련기업들이 탄소중립을 향한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