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며 친환경 냉난방공조시스템(HVAC)으로 주목받은 히트펌프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IRA 시행으로 소비자 구매가 촉진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연료를 태워 열을 생산하는 대신 전기를 이용해 열을 이동시키는 장치인 히트펌프는 난방이 필요할 땐 실외에서 열을 가져와 실내로 전달하고 냉방이 필요할 땐 실내의 열을 실외로 빼낸다. 히트펌프는 보일러처럼 에너지를 발생시키기 위해 화석연료를 연소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어 탈탄소화 핵심기기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가스보일러에 비해 히트펌프는 화석연료로 생산된 전기로 작동할 때 온실가스 배출량을 20%, 풍력발전 등 청정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로 작동할 때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 또한 열을 새롭게 생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존재하는 열을 필요한 곳으로 이동시켜 작동하는 특성상 전력사용이 열을 이동시키는 데 국한되기 때문에 에너지효율이 높다. 비록 초기 설치비용이 크더라도 열을 이동시키는 원리 덕분에 난방과 냉방 모두 추가 장비 설치없이 가능해 일년 내내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소비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특히 미국 역시 바이든정부의 적극적인 탈탄소화 정책에 힘입어 히트펌프에 대한 인기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냉방시스템에 있어서는 여전히 에어컨이 히트펌프보다 일반적이지만 난방시스템분야에서는 2022년을 기점으로 기존의 가장 일반적인 난방시스템이었던 가스보일러를 이용한 공조기기인 ‘가스퍼내스(gas furnace)’ 구매량을 히트펌프가 제쳤다.
계속 높아지는 전기요금 역시 히트펌프의 인기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가정이 부담해야 하는 유틸리티비용은 꾸준한 상승 추세이며 이러한 경향은 친환경기조를 지닌 캘리포니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캘리포니아 최대 유틸리티기업인 PG&E는 2024년 1월부터 가정용 전기요금을 13% 인상해 한 가구당 전기요금이 무려 평균 33달러 인상됐다. 증가하는 가계 부담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소비자들이 전력 효율성이 높은 히트펌프를 찾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에 따르면 히트펌프는 평균적으로 석유 난방시스템에 비해 연간 6,200kWh를, 전기 난방시스템에 비해 연간 3,000kWh를 절약할 수 있다. 2023년 기준 캘리포니아 전역엔 약 150만개의 히트펌프가 설치돼 있으며 신규 단독주택 중 히트펌프 실내 난방기 점유율이 55%를 차지할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시장 공략 나선 글로벌 HVAC기업
시장조사기관인 Freedonia는 2022년부터 2027년까지 미국 HVAC장비 중 히트펌프 수요가 가장 높은 연간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예측에 따르면 미국 히트펌프수요는 2027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4.5%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기준 히트펌프수요 규모는 70억4,500만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속도로 성장할 경우 2027년 규모는 87억9,000만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미국 HVAC시장 내 주요 히트펌프 제조사는 Carrier Global, Electrolux, Daikin Industries, LG전자, Mitsubishi Electric Trane US, Rheem 등이 꼽힌다. 이중 미국의 대표적 HVAC기업인 Carrier Global은 기후솔루션과 히트펌프에 집중하기 위해 2023년 4월 화재, 보안, 상업용 냉동사업을 매각했으며 2024년 1월 독일의 Viessman Climate Solutions를 약 130억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Viessman은 사업영역의 70%가 히트펌프 및 관련 액세서리, 태양광(PV), 배터리 및 에너지효율 솔루션서비스인 유럽 HVAC분야 대표기업이다. CNBC의 보도에 따르면 Carrier Global은 현재 에너지용량과 가격대가 다양한 10가지 히트펌프를 시중에 판매하고 있다. 앞으로는 Viessmn을 인수한 목적이라고 볼 수 있는 에너지절약을 위한 가정 에너지관리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히트펌프수입국 중 한국 4위
미국의 히트펌프(HS Code 8418.61) 수입액은 2020년 당시 약 9,100만달러까지 성장했으나 청정에너지분야에서 자국산 제조역량을 확장하려는 미국 정부의 노력으로 2023년 기준 약 6,100만달러까지 감소했다.
반면 한국산 히트펌프의 수입액은 2023년 약 946만달러로 전년대비 667.06% 성장해 미국의 히트펌프 수입국 중 전체 4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엔 LG전자 등 한국기업이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에너지효율을 최대한 향상시켜 미국시장을 공략한 것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LG전자는 알래스카 앵커리지대학교(UAA)와 지난 2023년 12월 고성능 히트펌프 개발 연구를 위해 컨소시엄을 결성한 바 있다.
히트펌프수요 견인, 강력한 인센티브
글로벌 HVAC업계가 비즈니스모델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히트펌프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히트펌프시장의 성장을 가장 강력하게 주도하는 것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주별 자체 프로그램 등 정부 인센티브다. Mitsubishi Electric Trane US가 2023년 6월 약 1,000명 가량의 미국 주택소유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주택소유자의 63%가 인플레이션감축법에 대해 들어봤으며 54%가 세금 공제 및 리베이트 등 정부 인센티브를 히트펌프 설치의 주된 3가지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은 세 가지 측면에서 히트펌프 확대를 촉진하고 있다. 첫 번째 제조업체의 생산과정에 세금공제 및 자금 지원을 시행해 미국 국내 히트펌프생산을 확대한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은 ‘첨단 에너지 프로젝트 세금 공제’(Advanced Energy Project Tax Credit)에 100억달러를 배정해 주거용, 상업용, 산업용을 포함해 모든 청정에너지 제조시절의 설립, 확장, 재정비와 관련된 투자에 최대 30%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있다. 히트펌프 제조 역시 청정에너지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또한 인플레이션감축법은 미국 국내 에너지생산을 확대하고자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 수행에 5억달러를 배정했다. 이중 2억5,000만달러가 히트펌프 국내 생산시설 확대 용도로 에너지부에 할당됐다.
두 번째는 히트펌프 제조 및 구매, 설치용도 자금에 대해 저금리 대출프로그램 제공이다. 미국환경보호국(EPA)은 인플레이션감축법에 의해 조성된 온실가스 감축기금 중 200억달러를 태양광패널, 히트펌프 등과 같은 청정에너지기술 투자를 위한 공공 및 민간자금에 투입키로 했다. 자금을 받은 공공 및 민간 비영리단체는 ‘녹색은행’이 돼 청정에너지기술을 채택하기 힘든 저소득층 가정이 히트펌프와 같은 에너지효율적이며 친환경적인 제품을 구매하거나 새로운 주택건축 시 히트펌프가 설치된 신규 주택단지를 건설하는데 낮은 금리로 대출을 제공하다.
세 번째는 소비자가 히트펌프를 구매하거나 설치할 때 리베이트나 세금공제를 제공해 히트펌프소비를 장려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은 주택의 고효율 전기화를 위해 주택의 냉난방용 히트펌프설치에 최대 8,000달러, 히트펌프 온수기 설치에 최대 1,750달러까지 직접 리베이트를 제공한다. 또한 소비자는 2032년까지 히트펌프 구매 및 설치비용의 30%를 연간 최대 2,000달러 범위 내에서 세액공제를 신청할 수 있다.
연방정부 외에 각 주정부 역시 적극적으로 히트펌프 확대를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25개 주지사로 구성된 초당적 연합체인 미국기후연합(U.S. Climate Alliance)은 2030년까지 미국 전역에 총 2,000만대의 히트펌프 설치에 도달할 것을 합의한 바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2030년까지 총 600만대의 히트펌프설치를 목표로 정했다. 지난 2023년 10월 캘리포니아 에너지위원회(CEC)는 LG전자, Carrier Global, Daikin 등 대표 히트펌프 제조사 10개와 목표 달성을 위해 협업을 체결했다. 히트펌프 제조 10개사는 2030년까지 600만대의 히트펌프가 설치될 수 있도록 제조역량을 구축하고 제품 효율성과 부하 유연성을 향상해 전력망에 주는 부담을 줄이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 에너지위원회와 협력해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개발함으로써 히트펌프가 주류가 되는데 노력하기로 했다.
또한 캘리포니아주는 TECH Clean California 프로그램을 통해 단독주택 및 다가구건물 소유자에게 히트펌프 전환을 위한 비용을 프로젝트당 최대 1,000달러까지 리베이트 제공하한다. 뉴욕주는 Clean Heat이라는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해 유틸리티 청구비용을 리베이트로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 코넷티컷주와 메인주 역시 히트펌프 설치에 대해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등 각 주 정부가 히트펌프 확대 목표 달성을 위한 금전 지원을 펼치고 있다.
HSPF 8.5 이상 히트펌프만 판매 가능
에어컨, 보일러 등 전통적인 냉난방공조 시스템 대비 친환경적이며 에너지 효율적이라는 게 히트펌프의 주된 선택 요인인 만큼 해당 특성을 기술력으로 강화하는 게 필수적이다.
HVAC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물가로 가계경제가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 유틸리티비용을 절약하고자 고효율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점차 늘고 있다”라며 “제품을 추천할 때도 히트펌프 전환 시 유틸리티비용이 얼마나 절약될 수 있는지를 많이 홍보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히트펌프의 에너지를 측정하는 기준으로는 ‘난방계절성능계수’(HSPF)가 있다. 이는 해당 계절의 총난방 출력을 해당기간 동안의 총에너지 소비량으로 나눠 계산하는데 HSPF가 높을수록 에너지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환경보호국과 에너지부가 운영하는 에너지스타(Energy Star) 인증을 받기 위해선 HSPF가 8.5 이상이어야 한다. 에너지스타라벨이 있는 제품이어야 에너지효율지침을 충족한 것으로 인증받을 수 있어 각종 정부 인센티브 수혜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주요 HVAC기업의 히트펌프 모델은 10 이상 HSPF를 자랑하며 에너지스타 라벨 역시 대부분 획득하고 있다.
KOTRA의 관계자는 “탈탄소화를 위한 대안으로 다양한 청정기술이 소개되고 있지만 히트펌프는 이중 가장 빠르게 미국사회에 채택되고 있는 기술 중 하나”라며 “정부 차원의 다양한 인센티브가 그 속도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미 보편화되고 있는 냉난방용 히트펌프는 물론 아직 전체 온수기 판매량 중 낮은 비중을 차지하는 히트펌프 온수기 역시 에너지 고효율이라는 기술력이 보장된다면 미국시장 진출의 적기로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