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유기 단열재로 인한 시공하자가 문제되고 있다. 단열재는 제조 후 시간이 흐르면 내부 발포가스나 수증기가 빠져나가는 등 이유로 수축‧변형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단열재에 휨‧밴딩이 일어나기도 하며 시공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단열재 변형으로 건물표면에 균열이 발생하거나 단열재가 벌어진 틈으로 열교현상이 일어나 결로 등 2차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숙성과정이 필수적이지만 관련 기준이 없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숙성이란 생산 직후 단열재를 자연상태에서 일정기간 방치해 안정화를 유도하는 과정이다. 대한건축학회는 단열재 품질확보를 위해 최소 6주 이상 숙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며 한국패시브건축협회는 EPS 단열재의 경우 7주 이상을 권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협‧단체, 기업별 권고사항이나 시방기준만 존재할 뿐 제조사와 시공사에게 숙성을 강제하는 법적 규정이 없어 지속적인 하자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건물에너지 누수가 우려된다.
단열재 미숙성 시 발생하는 문제
단열재가 적절히 숙성되지 않는다면 수축으로 인해 단열재 치수가 설계기준과 달라지며 이로 인해 단열성능이 크게 저하된다. 또한 숙성되지 않은 단열재에 수축‧변형이 일어난다면 외벽이나 내벽의 왜곡 및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유기단열재는 겨울철 수축이 발생하기 쉽다. 저온 환경에서 단열재 표면이 수축 두께가 줄어들며 이에 따라 울퉁불퉁한 변형이나 균열이 생길 수 있다. 현장에서 단열재를 고정하기 위한 화스너 주변에서 단열재가 수축해 접합부가 벌어지는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한 건물에서는 단열재 밴딩으로 인해 벽면이 불규칙하게 들뜬 모습이 육안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건물 외벽에서 이러한 하자는 외관상 문제뿐 아니라 건물 단열성능과 안전성 문제로 직결된다.
김양규 한국외단열건축협회 사무국장은 “KS M ISO 4898에서는 EPS, PIR 단열재 치수안정성을 5%, PF 치수안정성을 2% 이내로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단열재 변형으로 인한 시공하자를 방지하기에 부족한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단열재가 수축해 틈이 생기면 열교현상이 발생한다. 열교는 일반건물에서 외피 전체 열손실 30~50%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에너지누수를 초래한다. 열교는 에너지손실뿐만 아니라 결로와 곰팡이 발생의 원인이 되며 특히 석고보드와 같은 자재가 열교로 인해 습기를 흡수하면 결로로 이어져 자재 변색과 물리적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광주 한 공사 현장에서는 단열재의 수축으로 인해 발생한 틈이 열교현상을 유발한 사례가 있었다. 석고보드로 마감된 벽체에서 결로가 발생하며 자재가 습기를 흡수했고 이로 인해 벽면이 변색되고 손상이 일어났다. 현장에서는 열교로 인한 물 침투를 확인하기 위해 벽체를 절단해 내부 상태를 점검했다. 시공사와 감리자 모두 시공단계에서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며 열교발생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 사례는 충분한 단열재 숙성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단열재 숙성 실태
단열재 숙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단열재 종류에 따라 적합한 숙성기간과 조건이 달라지지만 체계적으로 검증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제조사는 경험에 의존하거나 대략적인 기준만을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신병진 벽산 시스템지원팀장은 “XPS는 대략 2주 이상 숙성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업체마다 숙성기준과 방법이 다르다”라며 “물량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시기에는 숙성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열재를 가공하다보니 시공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한국폴리우레탄산업협회 표준시방서에 따르면 ‘경질폴리우레탄폼 단열재는 제조 시 발생되는 내부열의 냉각을 위하여 동절기 7일 이상, 하절기 5일 이상 숙성기간을 거친 자재를 사용한다’고 명시돼 있다.
김낙진 우레탄협회 전무에 의하면 “경질폴리우레탄폼 단열재는 현장에서는 시방서를 따라 동절기 2주, 하절기 1주 정도 숙성을 거친 단열재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라고 밝혔다.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다면 제조사 측에서는 비용과 시간이 드는 숙성과정을 제대로 진행할 유인이 낮으며 이로 인해 시공사 측에서는 숙성된 단열재를 구하기가 어렵다. 외단열 미장마감공법 특성상 시공사가 단열재를 발주해 일괄시공하는 경우가 많으며 시공 후 하자에 대한 책임을 떠맡게 된다.
그렇다고 제조사에 숙성과정을 강제하지 못하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EPS 단열재는 부피가 커서 현장에서 이를 보관하거나 숙성할 공간이 부족하다. 또한 겨울철에는 자연상태에서 숙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산공정 자체를 변경해야 한다.
또한 시공사 입장에서 단열재 숙성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다. 단열재 로트번호와 제조일자는 확인할 수 있으나 숙성과정 적합성 여부는 제조사의 말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가격이 더 비싼 숙성된 EPS 단열재를 구매했으나 숙성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그대로 나타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열재 숙성문제는 건축품질과 직결된 중요한 이슈다.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숙성을 제조사의 양심에 맡기는 현재 구조는 소비자와 건축사에게 손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정직한 제조사가 불이익을 받게 만든다.
단열재 숙성기준 법제화는 건축품질 확보를 위한 핵심과제다. 현장상황에 맞는 법적규정을 마련해 제조공정에서 품질을 보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숙성기간과 조건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축적이 필요한 실정이다. 단열재 종류에 따라 적합한 숙성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연구를 통해 이를 체계적으로 검증하고 표준화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단열재 보관 및 숙성을 위한 시설이 부족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개발도 필요하다. 일부 기업에서 고온환경 숙성실이나 양생고를 운영해 단열재의 숙성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단열재의 숙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숙성이력에 대한 신뢰도 높은 정보를 제공한다면 소비자는 품질문제에 대한 우려를 덜고 숙성과정을 투명하게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