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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일방적인’ 신뢰 관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신뢰’이며 지켜지는 것이 인간된 도리일 것입니다. 세계문화사전에 따르면 신뢰를 뜻하는 영어 단어 trust의 어원은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의 trost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믿을 때 마음이 편안해 진다는 뜻일 것입니다. 배신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가 없기에 마음이 편안해질 뿐만 아니라 배신을 위한 예방에 들여야 할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게 해 주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 관계를 깬다면 어떻게 될까요?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그 사람과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한번 깨져버린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개인과 개인간의 문제가 아닌 기업간 신뢰는 ‘계약’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이어집니다. 계약이라는 것도 신뢰가 바탕이 됐기 때문에 기업간 할 수 있는 최대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공기업과 사기업이 맺은 계약관계를 그것도 ‘일방적으로’ 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기업은 어찌 보면 사기업보다 우위(갑)에 있을 수 있기에 당하는 사기업은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눈 밖에 나면 그 다음 사업에서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제대로 말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전력은 우리나라 공기업 중 최대 기업입니다. ‘신뢰’를 깨버린 상대가 한전이라니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멘붕’ 심야히트펌프업계
한전은 지난 2014년 8월부터 저효율 심야전기보일러를 고효율의 축열식 히트펌프보일러(이하 심야히트펌프)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조분야 대기업인 LG전자, 삼성전자, 캐리어에어컨을 비롯해 심야보일러시장을 양분했던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보일러도 시장에 진출하며 심야히트펌프시장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보급 초기 용량 부족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하효과가 크지 않다는 논란 등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지난해까지 누적 보급대수가 3만대 이상 보급될 정도로 히트펌프업계에서는 ‘블루오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레드오션’은 아니라는 생각이 많습니다.

심야히트펌프기업은 관련제품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과정에서 한전을 신뢰했기에 보급사업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기업의 최대 목표가 수익창출이니 참여했을 것입니다.

한전은 최근 심야히트펌프보일러에 하나의 공문을 보냈습니다. 지원금을 인하한다는 것입니다. 현행 히트펌프보일러 최대 소비전력(kW) 5~10kW 대당 200만원, 10~15kW 대당 250만원을 주던 지원금을 용량과 상관없이 무조건 대당 100만원으로 인하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것도 5월31일 18시 사업신청분부터 적용한다는 내용입니다.

올해 1월3일 한전 수요관리홈페이지를 통한 ‘2019년 축열식 히트펌프보일러 효율향상사업 시행 공고’를 6개월 만에 부정한 일방적인 통보였다는 점에서 심야히트펌프업계는 한전이 ‘신뢰’를 져버렸다고 허탈해 하고 있으며 일명 ‘멘붕’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영업한 소비자에게 지원금이 인하됐다고 설명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는 점에서 기업은 소비자에게 ‘신뢰’까지 잃는 이중고에 처할 위기입니다. 업계에서는 한전이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배경 설명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배신감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탈원전으로 한전 수익이 악화돼 지원사업을 줄인 것 아니냐는 ‘가짜뉴스’를 믿으라는 것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