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창고·다중이용시설 등에 적용되는 단열재에 심재도 준불연을 확보토록 하는 건축법 개정안이 2월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오는 12월23일부터 시행된다.
이번 법안통과를 놓고 유기·무기단열재업계에서 논란이 뜨겁다. 단열재의 난연성능 강화는 꾸준히 이뤄져 왔지만 이번 개정안은 그동안 물리적 방법으로 난연성을 강화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화학적 성질을 달리해야 하는 것이어서다.
지금까지 난연성능 규제는 준불연 성능에 대한 소재자체의 시험기준 강화보다 준불연 단열재 적용대상 건물의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따라 난연성이 취약한 유기단열재업계는 표면을 무기질로 덮거나 박막을 코팅하는 방식으로 준불연 성능을 만족하는 방식을 활용해 왔다.
기존에도 난연제 첨가, 배합식 변경 등 보다 근본적인 대응방법으로 평가되는 화학적 기술개발을 추진한 경우도 있었으나 상용제품에서 불량률이 높아 완전히 인정받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 따라 복합단열재도 표면처리를 제거하고 준불연 시험을 만족해야 해 일부업계의 제품은 법 시행 이후 시장에 진출하기 어렵게 됐다.
단열재 안전확보 vs 근시안적 법안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발생한 이천 한익스프레스 냉동·냉장물류창고 화재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발의한 내용을 토대로 대체입법안으로 마련된 법안이다.
지속적인 건축물 화재사고에서 단열재가 연소하며 사상자를 많이 발생시키고 있다는 문제인식에 따라 타지 않고 화재에 안전한 단열재로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에 대해 유기단열재와 무기단열재업계는 물론 유기단열재업계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대해 폴리우레탄(PU)단열재업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사실상 유기단열재 중에서는 준불연을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이 없고 소재 특성상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법안이 시행되면 그간 PU업계의 핵심시장이던 공장·창고공사에 납품할 수 없게돼 수많은 중소기업이 폐업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화재안전 명분에 매몰돼 실효성이 크지 않은 근시안적 법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비해 무기단열재업계의 관계자는 “심재준불연 강화에 대한 방향성은 이미 수년 전부터 논의돼 온 것이며 수차례 관·산·연 회의에서 유기단열재업계가 대응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힌 내용”이라며 “이미 유기단열재업계에서도 스스로 준불연성능을 확보했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수차례 배포했을 정도로 기술력이 있다”고 밝혔다.
스티로폼으로 알려진 비드법발포폴리스티렌단열재(EPS)는 업계 내에서도 가능하다는 의견과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EPS 원료 또는 비드(구슬)코팅을 통해 준불연 성능을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실험실 단계에서 가능한 기술로 양산품에서는 준불연 성능을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있다.
높은 단열성능으로 빠르게 시장을 확대해 온 페놀폼단열재(PF)의 한 기업은 자체적인 기술개발로 준불연 성능과 단열성을 만족하는 제품을 연내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단열재 준불연 성능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그간 유기단열재업계에 만연한 편법·불법생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정상적인 성능의 시험성적서를 확보한 제품도 현장에서 샘플을 채취하면 불량인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매년 시행하는 건축안전모니터링에서 지난해 8월 발표한 2019년 점검결과 단열만 점검하는 내단열재와 달리 난연·단열성능을 모두 점검하는 외단열재의 경우 적합률이 △압출법폴리스티렌단열재(XPS) 0%(점검 수 1건) △EPS 0%(6건) △PU 18.2%(9건) 등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불량률은 시험성적서 발급 시 편법적 시험검사를 시행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열·난연성 검사를 단일 시험편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어서 난연제를 많이 첨가한 제품으로는 난연성을 시험해 성능을 획득하고 단열성은 난연제 함량을 줄인 생산품으로 시험하는 편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통상 난연제가 많이 함유될수록 단열성능이 떨어지게 된다. 단열성능이 낮으면 국토부 고시에 따라 더 두껍게 단열재를 시공해야 하므로 벽체가 두꺼워지고 연면적이 작아지며 창호 등 자재선택이 어려워져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정상적인 성능의 제품을 납품할 경우 원가경쟁력에서 밀려 최저가입찰 시 낙찰받지 못하게 되므로 이와 같은 불량자재 유통이 업계에 만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기단열재업계 내부에서는 “난연성이 미달하는 불법자재는 작은 불씨의 착화에도 쉽게 불이 붙는다”라며 “이러한 편법관행을 자정하지 못한 것이 이번 개정안의 빌미를 만들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개정안, ‘단열보다 난연’ 부작용 감안해야
그러나 최근의 화재피해 확산에 대한 책임을 단열재업계에만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20년 6월 개최된 ‘건설현장 화재사고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열린 민·관협력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5~2019년 발생한 샌드위치패널관련 화재사고 총 1,318건 중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50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번 개정안의 계기가 됐던 이천화재 역시 PU단열재 뿜칠작업 후 벽면에 무기재 도포작업을 하기 전 위험공정인 용접·절단 작업이 진행된 것이 발화의 원인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화재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사안전 절차 준수 △단열재 품질관리 강화·시험검사 허점보완 △소방설비 정상작동 감시 등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단열재 소재 자체의 준불연을 강화한 이번 개정안은 건축산업에 몇몇 부작용이 우려된다. 먼저 높은 단열성을 갖춘 유기단열재를 규제하므로 건축물 단열성능 확보가 어려워져 탄소중립 대응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
난연제 함량을 증가시킬수록 단열성능은 저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열·난연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한 기술력은 EPS·PF·PU업계 대기업들이 보유하고 있으나 EPS는 소재특성상 다른 단열재에 비해 단열성능이 떨어지며 PF는 양산품에 대한 성능에 이견이 존재한다.
경제성에 대한 부담 증가도 같은 맥락이다. 기후변화보다 화재안전을 중시하는 정책을 선택할 경우 경제적 부담가중을 감수해야 한다.
난연성능에 대한 품질관리를 더욱 강화할수록 벽체가 두꺼워야 한다. 고단열 유기단열재로 꼽히는 PU나 PF에 비해 단열성능이 좋지 않으나 준불연보다도 난연성이 월등한 불연성 무기단열재를 사용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벽체두께 증가, 공사비 증가, 연면적 감소 등에 따른 경제성 악화가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