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소장은 2005년 우리나라의 부동산경기가 활발할 때 미래 신축시장의 한계를 걱정했다. 앞으로 신축보다는 기존 건물의 유지·관리가 중요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해 국토교통부에 ‘건축기전설비의 성능진단 및 유지·관리시스템 개발연구’ 과제가 채택된 것이 그가 BEMS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였다.
이 소장이 과제를 진행하다 보니 일본에서는 1950년부터 공공건물을 대상으로 주기적인 설비·관리·진단 의무사항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건물관리는 시작단계였다.
당시 IT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강점을 살려 건물관리에 IT를 접목시켜 3년간 정책연구를 진행했다. 이후 2008년 국제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건설경기가 위축돼 예상대로 신축시장은 휘청거렸고 기름값이 오르며 온실가스 저감이 이슈로 떠올랐다. 경기가 좋지 않으니 기축건물의 유지관리가 중요해졌다.
이 소장은 “우연한 기회에 BEMS를 접했는데 처음부터 내가 BEMS를 하겠다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라며 “IT발달, 유가상승, 에너지절약 등 시대적 흐름에 따라 건물의 유지관리 업무가 중요해졌고 차별화된 연구를 하고 싶어 IT를 접목시키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장은 2006년부터 국토부뿐만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을 받으며 BEMS관련 과제를 하게 됐고 BEMS를 현장에 적용해 효과분석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실용화·사업화는 이전 과제와는 달랐다. BEMS와 관련해 2008년부터 4년간 IT업체들과 씨름했지만 실용화·사업화를 결국에 해내지 못했다. BEMS를 건물에 적용했어도 업체가 손을 털면 거기서 끝이었다. 그 업체의 데이터분석, 모니터링 등은 해당업체 외엔 다른 사람이 손댈 수가 없어 비용은 비용대로 들어가는데 성과는 없어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이 과정을 3~4년을 겪고 보니 회의감이 들었지만 노력 끝에 그 이유를 찾게 됐는데 아주 간단했다. 그것은 ‘개방형플랫폼’과 ‘표준화’였다. 이 두 가지가 실용화·사업화로 가는 길이었다.
그 뒤 이 소장은 2011년 연구원에 큰 제안을 하는데 BEMS관련 연구비와 시간을 달라는 것. KICT·국가위원회, 국회 등을 거쳐 ‘개방형플랫폼’과 ‘표준화’가 과제로 선정됐다. 이 소장을 비롯한 KICT의 연구원들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었다. 다른 국가R&D과제는 모두 접고 이 두 과제에만 집중했고 도중에 국토부는 2014년 녹색성장위원회에 BEMS를 안건에 포함해 ‘BEMS 표준화 및 인증기반 마련, 인력양성, 보급촉진 및 신규시장 창출’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다보니 이 장기과제와 BEMS 표준화를 위한 KS제정이 동시에 진행됐다. 그 당시 BEMS에 대한 정의자체가 혼재돼 있어 BEMS를 한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모두 다른 대답을 하니 BEMS KS제정이 절실했던 것이다. KS제정이 만들어진 지금은 어느 정도 BEMS정의가 돼 소통의 문제는 해결됐다.
BEMS산업 진출해야 하는 공조 전문가들
이 소장은 “임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BEMS 전문가 노릇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약사, 제약회사 직원들이 의사랍시고 환자를 고치려 하는 것과 같다”라며 “BEMS 전문가는 공조분야에서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공조분야전문가는 건물지하의 계측기, 기계 등과 씨름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건물을 진찰하는 진정한 의사, BEMS전문가가 되지 않겠는가”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BEMS를 한다는 업체가 건물에너지를 절감한다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물 모든 곳을 스캔한다”라며 “그렇게 해서 모니터링을 해도 에너지를 절감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니 건물주 입장에서는 BEMS에 대한 불신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BEMS의 설치가격과 에너지절감 효과를 물어보는데 이 소장은 “차를 사더라도 어떤 용도로 자동차를 구입할지, 차를 타고 목적지에 갈 때 교통사정, 운전자의 사정에 따라 도착시간이 다른 것과 같이 BEMS 또한 설치가격도 각건물마다, 용도마다 다른 것이고 어떻게 운전하느냐에 따라 BEMS의 효과가 달라지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BAS*는 설치하기 전까지 갑은 건물주고 을은 제공업체지만 설치한 순간 갑과 을은 뒤바뀐다”라며 “시스템이 배타적이고 폐쇄적이기 때문에 설치한 업체 자신들이 아니면 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소비자가 비용을 주고 설치했어도 시스템 파악이 어려우니 업체가 돈을 내라는 데로 줘야한다는 것이다.
‘BEMS는 그래선 안된다’고 강조하며 최종적으로 BEMS가 추구하는 것은 무인화로 사람은 BEMS가 잘 작동되는지 관리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 이 소장의 지론이다.
동등한 경쟁구도 만드는 개방형플랫폼
이 소장은 “업체들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판을 짜주는 것이 개방형플랫폼을 개발하는 이유”라며 “이 플랫폼이 구축되면 우리가 스마트폰에 원하는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는 것처럼 비용을 지불하거나 무료로 설치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BEMS시장에 진입하려는 신생업체가 플랫폼을 개발하지 못해 사업을 포기하는 것을 막고 사용자는 이 플랫폼으로 손쉽게 건물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방형플랫폼의 역할이다.
또한 BEMS는 전문가가 건물주와 계약한 비용에 맞춰 계측 포인트를 자동으로 설계하고 각 건물에 알맞게 설치지시서가 자동으로 현장에 나간다.
그 설치지시서를 현장 설치자가 확인한 후 설치해 전문가에게 설계경과를 보고한다. 설치완료 보고서를 받은 전문가가 점검한 후 설치는 완료되고 자동적으로 BEMS시스템이 에너지관리를 한다.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지 건물에너지 감축을 위한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KICT에서 개발한 개방형플랫폼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건물에 A회사 시스템을 설치해도 건물주나 관리자가 키와 패스워드를 알려주면 다른 회사도 추가 소프트웨어를 쉽게 설치할 수 있다. 처음 설치한 회사가 협조를 안하더라도 B회사의 하드웨어, C회사의 소프트웨어가 건물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주는 것이 BEMS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KICT에서 연구하다보니 건설분야가 다른 분야와 비교해 건설소비자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라며 “나에겐 건설·BEMS분야의 소비자 입장을 대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소장은 “한 분야를 꾸준히 연구해오니 BEMS전문가가 됐지만 우리나라는 자기자리를 지키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드물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KEY WORD)
1) BAS(Building Automation System): 빌딩의 냉난방·조명·방범 등 관리기능을 관제실에 설치된 관리 전용 컴퓨터로 조절하는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