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이 지난 2020년 11월 개정한 ‘롤업셰이드 표준규격서’가 건물에너지 절감성능을 인정받은 신소재 제품의 시장진입을 차단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세계적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지속적인 개선요청에 대응하지 않고 경직된 자세를 보이는 데다 정부조달마스협회(이하 MAS협회)를 전면에 내세워 행정심판제도를 회피하는 등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는 비판이 제기된다.
조달청의 롤업셰이드 표준규격서 상 재질성능시험 항목은 인장강도(정상상태에서 잡아당기는 힘을 견디는 성능)를 89N 이상, 인열강도(일부 절개된 부위에서 잡아당기는 힘을 견디는 성능)를 6.7N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구조적인 소재특성을 감안해 기존에는 면제됐던 필름재질의 인열강도시험이 이번 개정안에서 강제됐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직물(섬유) 재질의 블라인드 외에는 롤업셰이드 품목으로 조달시장 참여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직물과 달리 필름재질의 경우 자연적으로 제품이 찢어지거나 마모돼 절개부위가 발생하는 경우가 사실상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으로 날카로운 기구로 절개면을 만들어 잡아당기는 형태의 시험을 받도록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험면제를 적용받아 조달제품으로 등록돼 납품한 지난 4년간 공공·민간시장을 통틀어 약 1,000여개 관공서건물 및 주택세대에 약 1만여개 블라인드를 판매해왔다”라며 “판매실적 중 그간 단 1건의 인열·인장강도 관련 하자사례, 파손 및 A/S 접수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통상 특정제품을 배제하는 형태의 규격개정이 이뤄질 경우 시중에 납품된 제품이 하자를 발생시키거나 성능·안전상 문제·민원이 제기돼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경우”라며 “그러나 이번 경우는 문제발생이 전혀 없었음에도 특정제품을 시장에서 배제시키는 조치여서 롤업셰이드 물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존 직물 블라인드업계의 ‘밥그릇 지키기’에 조달청이 협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표준규격서 개정에 따라 조달시장에서 배제된 필름블라인드는 실내로 유입되는 태양에너지를 반사시켜 실내 냉방부하 저감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제품으로 여러 시험기관 및 학술단체 등의 실증시험은 물론 다양한 적용실적을 통해 성능이 검증됐다.
해당 제품은 조달등록 이후 4년간 공공기관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0년 1억여원, 2021년 2억여원의 계약실적을 달성했으며 한 지자체 청사에 전면시공된 이후 체감·시험결과상 효용성이 입소문을 타면서 문의가 증가했다. 조달물품 등록이 취소된 이후에도 화성시청, 제주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등 다수의 공공기관에서 예산을 잡아두고 조달등록을 기다리는 실정이다.
콤비블라인드 ‘예외’…형평성 문제
이번 표준규격서는 특정제품에 한해 시험을 면제하는 특혜를 부여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직물 및 망사가 교차하는 ‘콤비블라인드’ 제품군은 망사부분에 한해 인장·인열강도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롤업셰이드 블라인드는 안전상 파손을 방지하고 내구성을 검증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장·인열강도를 측정토록 하고 있는데 기존 직물재질 블라인드의 경우 사용과정에서 찢어짐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해당 항목에 대한 검증을 중요하다고 판단할 여지는 있다”라며 “그러나 인열강도 항목이 정말 중요하다면 특정제품에 한해 시험을 면제하는 것은 부당하며 필름재질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고 망사재질은 허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달청은 인장·인열강도를 만족하는 직물이 포함된 콤비블라인드에 한해 망사재질 부분의 시험을 면제하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당초 조달청은 혼합재질의 경우에도 예외없이 해당 규정을 적용토록 했으나 한국블라인드커튼협회, 친환경차양협회, 한국차양산업협회 등 업계반발로 예외규정을 허용했다.
블라인드커튼협회는 조달청에 제출한 공문을 통해 “시험결과치를 보면 콤비블라인드 유통물량의 약 50% 이상이 불합격으로 재직공장, 코팅공장, 제조공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는 엄청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OECD 국가에서도 콤비블라인드 망사부에 대한 인장·인열강도 시험을 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러한 업계의 주장은 필름블라인드에도 동일하게 해당할 수 있는 내용이며 조달청의 해명 역시 필름블라인드를 조달시장에서 배제하는 조치의 논리적 근거로는 미흡하다는 평가다.
조달등록 절차 개선해야
조달청의 표준규격서의 불합리성을 제도권 내에서 개정하기 위한 조치에도 제동이 걸렸다. 해당기업은 조달청이 문제제기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사실상 조달청의 통제를 받아 계약물품 접수를 독점대행하고 있는 MAS협회가 접수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달청은 필름블라인드기업의 민원제기에 대한 답변에서 “조달청은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사용하고 있으며 시중에서 규격이 상용화된 ‘직물원단’을 사용한 롤업쉐이드를 다수공급자계약으로 체결하고 있다”라며 “2인 이상을 계약상대자로 하는 제도로서 1인 규격과 같이 범용성이 부족한 제품은 계약추진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해명했다.
조달청은 필름재질의 롤업셰이드 블라인드를 취급하는 업체 수가 부족해 다수공급자계약을 진행하기 어려운 만큼 다수업체가 유사품에 대해 규격추가를 요청할 경우 관련규정에 따라 추가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타사에 원단을 공급해 3인 이상의 사업자는 이미 확보됐으나 신규 조달품목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빨라도 1~2년이 소요되며 이마저도 조달청의 의지가 없을 경우 5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어 그 사이에 기업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라며 “탄소중립과 에너지절감이 절실한 이 시대에 효과와 성능의 탁월함을 과학적·공학적으로 인정받은 제품이 있는데도 직물로만 롤업셰이드 블라인드를 한정하는 이번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조달청 표준규격서 상 적용범위는 롤업셰이드 블라인드에 대해 ‘정부 및 공공기관 등의 건물창호에 설치돼 외부에서 실내로 유입되는 태양열과 빛, 내부의 복사열을 적절히 차단하고 냉난방 시 에너지소모를 극소화하고 쾌적한 실내환경을 유지시키는 자동 및 수동식의 롤업셰이드에 대해 적용’한다고 규정해 특별히 소재를 한정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조달청은 필름재질의 롤업셰이드 블라인드에 대해서는 인열강도가 기준에 미달한다며 신청접수조차 받지 않고 있다. 업계는 기존 직물블라인드대비 에너지성능이 탁월한 필름재질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판단에 대해 반발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행태에 대해 해당기업은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진행했지만 감사원은 조달청이 규정을 어겼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행정심판을 용인할 수 없으며 해당 품목을 취급하는 다수 기업들이 요청하면 품목등록을 추진할 수 있다는 조달청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MAS협회라는 ‘안전판’을 둬 접수조차 받지 않으면서 업계의 억울함이나 부당한 행정조치를 해소할 수 없도록 구조를 짜두고 정책적·시대적 요구사항에도 무사안일 행정을 우선시하는 행태는 해소돼야 한다”라며 “탄소중립시대에 창호, 단열, 설비교체 등과 달리 건물에너지성능 향상을 간편하게 달성할 수 있는 제품의 공공조달시장 진입을 차단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항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