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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열재 ‘졸속행정’ 도마…늦장·땜질식 대응에 업계 ‘분노’

국토부, 심재준불연·품질인정제 부실관리…불법유통 횡행

단열재 화재안전 성능강화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건축법 및 하위법령이 시행됐지만 국토교통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하 건설연) 등 관계당국이 세부사항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나 지침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허술한 제도운영이 비판받고 있다.

국토부는 2020년 4월 이천 화재사고를 계기로 건설현장 대형화재 재발방지를 위해 같은 해 6월 ‘건설현장 화재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2021년 12월 단열재 심재준불연, 샌드위치패널 품질인정제 포함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건축법이 개정·시행됐다.

그러나 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시행시기 이전에 미리 마련됐어야 할 하위법령 ‘건축자재 등 품질인정 및 관리기준(이하 관리기준)’은 지난 2월, 이를 위한 세부 운영지침은 4월에야 제정됐다. 이마저도 세부 시험품목에 대한 지정이 없었고 오탈자도 발견돼 1개월여만인 5월 한 차례 개정됐다.

심재준불연, 품질인정제 시행이 공포된 2021년 12월 이후 6개월만에 국토부 고시, 세부운영지침이 마련됐지만 이마저도 불명확한 부분이 많아 단열재업계는 법령, 고시, 지침의 해석을 요구하거나 시행의 부당함을 강조하며 민원을 제기하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정부의 감시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이를 틈타 시장에서 불법자재를 공공연하게 유통시키고 있어 부실건축이 우려되고 있으며 정부방침에 따라 연구개발에 성과를 내고 있는 기술기업조차 제도적 요건을 만족시키기 어려워 건축산업 가치사슬 생태계에 시간적 공백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많은 부작용 우려에도 준비없이 무리하게 제도를 강행한 정부에 비판이 제기된다.

심재준불연 도입혼란 틈타 ‘불법’
글라스울, 미네랄울 등 무기단열재와 달리 화재안전 성능이 약하지만 단열성능이 우수해 건축물에 널리 사용돼 온 EPS, 우레탄 등 유기단열재업계는 그간 심재준불연 제도에 대해 ‘달성할 수 없는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해왔다.

이에 반해 몇몇 기업은 규제강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심재준불연 단열재 개발에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조차 시험설비 부족, 판정지침 미비로 인증을 획득할 수 없어 적기 제품출시가 어려운 실정이다.

심재준불연제도 시행 이후 단열재는 기존 KS F ISO 5660-1에 따른 콘칼로리시험, KS F 2271에 따른 가스유해성시험에 더해 외단열재의 경우 KS F 8414, 샌드위치패널의 경우 KS F ISO 13784-1에 따른 실물모형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 시험성적서가 발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시험기관간 개정된 법령에 적합한 콘칼로리미터법, 가스유해성, 실물모형시험에 대한 시험방법, 판정기준 등 지침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외벽 실물모형시험이 가능한 장소가 현재 건설연 4기,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6기에 불과해 시험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건설연은 지난 7월1일에야 시험을 개시했다. 건식은 1주 2회, 습식은 1개월 1회 시험이 가능한 특성에 따라 2024년까지 이들 시설에 시험일정이 가득 차있는 상황이다.

내년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이 4기, 사설 시험기관인 사람과안전이 4기 시설구축을 예정하고 있으며 방재시험연구원,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KOMERI)이 구축을 검토하고 있으나 적어도 1~2년간은 원활한 시험진행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당장 오는 하반기부터 1~2년간 시장에 법적 기준에 맞는 단열재의 공급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관련법령 개정·시행 당시 부칙에 따라 기존 제도 하에서 획득한 시험성적서의 유효기간 동안은 유통이 가능토록 했지만 오는 하반기부터 시작해 내년 상반기까지 1년 유효기간 만료가 도래하는 제품이 대부분이어서 기준에 적합한 제품의 공급차질이 예상된다.

실제로 시험성적서 유효기간이 만료됐음에도 현장에 시공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 광주광역시 한 현장에서 준불연 시험성적서가 만료된 EPS보드가 유통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저도 콘칼로리미터, 가스유해성 등 소재시험만 시행하고 실물화재시험은 시행하지 않은 성적서여서 외벽마감재 사용이 불가한데도 준불연 단열재로 유통된 사례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러한 실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의 관계자는 “유효기간이 만료된 제품이 현장에 적용된 사례가 보고된 적 없다”라며 “적발이나 제재조치를 하기 위해서는 신고가 접수돼야 하며 행정력의 한계 상 신고없이 전국의 수많은 건설현장을 관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신고접수된 건에 대해서는 누락없이 전부 출동하고 있으며 문제가 확인될 경우 지자체에 인계해 적절한 제재조치가 가능토록 인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유효기간 허용시점에 대한 당국의 해석이 당초 언급과 달라 업계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업계는 ‘법 시행일 이전 건축허가 등 신청을 한 건축물에 적용하는 마감재료는 종전규정을 따른다’는 요지의 관리기준 부칙 제3조 제2항에 따라 허가시점을 기준으로 제도대응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최근 국토부가 이에 대해 ‘설치일 기준’이라고 답변하면서 업계는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게 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건축법 시행을 앞두고 국토부는 업계간담회를 통해 기존 시험성적서 유효기간 내 활용을 허용하면서 유효기간이 만료돼 사용할 수 없는 시점이 건축허가일인지, 제품납기일인지, 시공일인지 특정하지 않았다”라며 “또한 유사한 질문에서 어떤 경우에는 ‘납품일’, 다른 경우에는 ‘설치일’ 등으로 오락가락 해명해 시장의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설치일 기준으로 유효기간을 삼을 경우 같은 건물에 2개의 법이 적용되는 사례가 발생할 것이며 공사를 하다가 다른 제품을 납품해야 하는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라며 “성적서 유효기간 적용은 설치시점보다 건축허가 시점이 적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유효기간을 건축허가 시점으로만 할 경우 납품시점의 자재가 정품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라며 “이 경우 법적 책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든 명확한 해석과 체계적인 적용이 가장 우선돼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품질인정제도 ‘개점휴업’
혼탁한 단열재시장을 정화할 강력한 제도적 장치로 여겨졌던 품질인정제도 역시 형식적으로는 시행됐지만 기준이나 지침이 불명확해 시행 6개월이 지난 현재 단 한건의 인정제품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최근 개정에 따라 샌드위치패널이 품질인정제도에 포함됐지만 건축법 시행시점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국토부의 늦장 개정과 땜질식 대응이 이어지면서 업계의 운영차질과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개정된 관리기준은 샌드위치패널의 품질인정 시 강판과 단열재 모두 불연재인 경우 실물모형시험을 면제받도록 했다. 그러나 최근 국토부가 불연재료에 도색이 입혀진 경우 실물모형시험을 시행토록 돌연 변경함에 따라 글라스울 샌드위치패널 업계의 사업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또한 샌드위치패널 중 내부칸막이벽, 쇼케이스 등에 사용되는 제품은 KS F ISO 13784-1에 따라 가설건축물을 세우고 화재안전 성능을 시험하는 방식의 실물모형실험만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 5월 세부운영지침이 개정되면서 갑작스럽게 KS F 8414에 따른 외벽을 세우고 화재상황을 연출하는 방식의 실물모형시험도 병행토록 변경됐다.

업계의 관계자는 “외벽에 대한 시험인 KS F 8414를 내부 칸막이벽까지 시행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라며 “영향을 받는 샌드위치패널 업계는 과잉규제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급증하는 실물모형시험 인증수요로 유효기간 내 인정절차 마무리가 불가능하게 되며 막대한 인증비용에 더해 제품공급 공백 발생에 따른 경영악화 우려도 제기된다.

이와 함께 품질인정제에서 허용하고 있는 ‘표준모델’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지속되고 있다. 국토부는 인정수요가 집중되는 초기대응을 위해 업계 각 협·단체로부터 표준모델을 신청받았으며 이를 적용한 제품의 경우 별도의 실물화재시험 없이도 제조·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상 제조기업이 표준모델대로 제품을 제조하고 해당 구조대로 현장에 시공하는지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은 없어 오히려 제도적 허점이 우려된다. 이에 더해 신고를 통해 적발돼도 인정취소 대상에 명시되지 않아 재시공만 하면 지속적인 생산·판매가 가능한 구조여서 오히려 편법·불법의 창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재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시행한 단열재 심재준불연, 복합자재 품질인정제도가 국토부의 미숙한 행정조치에 따라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서 국민의 안전은커녕 업계에 타격을 가하는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행 7개월이 됐음에도 품질인정제도가 차질을 빚음에 따라 관련기준을 반대해 온 EPS, 우레탄 등 업계는 개정철회 및 원복을 주장하며 시위를 지속해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라며 “시중에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성적서로 유통하거나 내부단열재 준불연 성적을 갖고 외단열재로 사용하는 등 불법·편법자재가 기승을 부리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토부가 규제완화 기조에 끼워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품질인정제 운영을 지연시켜 시행을 사실상 유예하거나 철회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라며 “국토부의 고의적 직무유기는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업계에 큰 변혁을 야기하는 제도를 만들면서 이처럼 졸속으로 진행하는 경우를 못 봤다”라며 “오락가락 해명, 땜질식 개정, 늦장 대응, 고압적 자세에 속이 터질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제도도입 초기를 감안하더라도 제도시행 후 반년 이상이 경과한 시점에서 세부운영지침의 허점조차 완결짓지 못해 업계가 품질인정제 신청접수도 못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라며 “기업생리 상 1~2년 사이에 존폐가 결정되는데 몇 년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고 안이하게 접근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