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열이 지난 2015년 신재생에너지로 지정된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시장은 여전히 초기단계다. 수열에너지는 여름철에는 대기보다 낮으며 겨울철에는 대기보다 높은 수온의 특성을 건물냉난방에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실외기가 필요없어 도시 열섬현상을 완화할 수 있으며 건물하중 감소로 건축비 절감과 옥상공간활용성도 증대된다. 풍부한 부존량과 과밀지역에도 적용가능한 장점으로 건물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최적솔루션으로 평가받고 있다.그러나 국내 히트펌프산업은 현재 기술안정화 단계인 반면 수열냉난방시스템산업은 아직 초기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운영안정성에 대한 낮은 신뢰도와 초기투자비 부담, 다양한 수열원활용기술 부족, 법·제도 제약조건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해 보급지체 원인이 됐다.해외의 경우 독일은 2050년까지 난방에너지 50%를 재생에너지에서 충당하는 목표를 제시하며 재생열공급의무화제도(RHO)를 도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히트펌프온수기에 재정지원하고 있다. 정부도 물이용부담금 면제·하천수사용료 감면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또한 대용량 히트펌프 기술개발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KS인증 부재와 ECO2 프로그램에 수열시스템 장점을 극대화하지 못하는 문제 등 제도적 한계가 여전하다.
이번 기획에서는 수열보급을 막고있는 장애요소를 점검하며 시장초기단계인 현시점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표준화정책과 규정, 기술개발 등을 알아봄으로써 수열에너지의 안정적인 정착을 도모한다.
활용가능 실증데이터부족, 수열보급 지체원인
수열은 광역원수와 거리가 가까울 경우 원활한 사업진행이 가능하지만 거리가 멀면 추가공사와 행정절차로 인한 비용소모가 발생한다. 태양열 등과 달리 수열원 인접지에만 설치할 수 있으며 관로관리주체 허가가 필요하고 수열원량 등 설치여건에 따라 용량이 결정된다는 특수성이 있다.
이처럼 고려사항이 많은 수열은 실증데이터 부족으로 인한 낮은 민간인지도와 설계·시공·유지관리 노하우 부족으로 보급사업 진행 시 적정시스템 구축에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9년 10월 신재생에너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댐과 광역원수를 포함한 하천수가 수열원에 포함되며 본격적 보급확대가 시작됐지만 대도시 내 이용가능량이 많은 하수나 유출지하수는 포함돼있지 않아 추가적인 수열원 확대가 필요하다.
이에 더해 현재 활용가능한 실증사례가 △롯데월드타워(3,000RT) △한강홍수통제소(100RT) △한강물환경연구소(60RT) △한국수자원공사 한강유역본부(500RT) 등 4곳 뿐이며 외부에 개방된 실증데이터는 롯데월드타워 1개소에 불과하다. 실증지를 확대해 설계사 이해도를 높이고 민간인지도를 향상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환경부는 민간설계사 역량부족으로 인한 보급사업 지체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수열에너지 설계·시공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설계·시공사들의 수열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시, 수열잠재량多… 열원 확대 시급
타 지자체에 비해 온실가스 저감목표가 높은 서울시는 재생열공급 의무화를 실시해 3만㎡ 이상 신축 비주거건물은 신재생에너지 의무설치비율의 50% 이상을 수열·지열로 공급토록 했다.
지자체 최초로 수열시스템을 의무적 열원 중 하나로 도입한 사례이다. 수열에너지 중 가장 핵심적인 열원은 생활하수로 광범위하게 도심 내에 적용이 가능하다. 상수도인프라 활용 시 약 4만2,900RT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존 냉난방방식대비 약 40% 에너지절감효과가 있어 연간 7,100TOE 에너지절약을 통해 소나무 14만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다.
서울시 수열사업을 담당하는 서울아리수본부는 지난해 4월 수열에너지 보급사업 일환으로 ‘원수관로 활용 수열에너지 도입희망자 공모’를 진행했으며 심사를 거쳐 잠실·성수에 진행 중인 복합개발 프로젝트에 1만9,000RT급 수열시스템을 보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현재 신재생에너지 활용다변화와 이용확대를 통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과 에너지비용 절감을 위해 수열에너지보급 확대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으며 2040년까지 수열에너지 4만RT를 공급할 예정이다. 또한 수열원 확대필요성에 공감하고 관련내용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 하수, 유출지하수 등 수열에너지잠재량은 2만2,311Tcal이며 하천생산량대비 4,129%로 높은 이용가능량을 가지고 있다.김재웅 아리수본부 생산부장은 “서울시에는 물재생센터의 하수처리수 및 유출지하수 등 수열원이 있다”라며 “해수표충수와 하천수로 정해진 수열에너지 범위를 하수재이용수, 지하유출수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국가에서는 1990년대부터 하천수·호소수 등 다열원을 활용해 지역냉난방사업을 추진하며 단일건물이 아닌 다수건물이나 대규모 시설에 수열냉난방을 설치하고 있다.
일본은 수열에너지원으로 하천수뿐만 아니라 해수 등을 신재생에너지로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도 댐 호소수를 월 1% 활용 시 1만9,486TJ규모로 표준 화력발전소 10기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가 잠재돼있어 수열원확대 필요성이 더욱 대두됐다.
수열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제성 면에서 효율적인 수열원이 존재하지만 미활용되는 상황이 안타깝다”라며 “다양한 수열원에 대한 연구개발이 용이하도록 미활용 소규모 수열에너지원과 하이브리드 수열시스템 등에 대한 연구공고가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활용되고 있는 정수·하수·유출지하수 등 다양한 자원들을 열원으로 포함 시 수열에너지 도입제약으로 작용한 수열원과 수요처 관로비용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환경부는 해외사례 벤치마킹을 통해 하천수로 제한된 수열에너지원을 확대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자료 마련을 위한 R&D를 2029년까지 추진할 예정이다.
R&D 종료 시 다양한 수열원에 따른 온도·탁도 등 핵심인자 변화에 대응가능한 열효율안정성·최적화 기술을 활용하며 동절기 동파방지기술 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열클러스터, 수열보급 확대방안 급부상
최근 AI·데이터센터(DC) 등 4차산업혁명으로 데이터 저장·수요가 급증하며 DC 에너지효율향상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수열은 냉난방에 쓰이는 전력을 약 30% 이상 줄일 수 있는 효과가 있으며 태양광, 지열에 비해 넓은 범위에서 활용가능해 DC 등 대형건물은 설치면적 제한영향이 적은 수열에너지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에 따라 수자원공사는 소양강·대청댐 등 댐 저온수를 활용한 DC서버 냉각열 공급을 위한 수열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강원도 수열클러스터사업은 25만평 규모에 1만6,500RT를 공급해 심층수(7℃, 24만㎥/일) 수열 공급 후 정수처리를 통한 생활용수 등을 활용하는 사업으로 DC에 프리쿨링 수열을 적용 예정이다.
프리쿨링 수열활용 시 기대되는 에너지절감률은 약 64.1%로 기존 수열보다 에너지절감효과 측면에서 높으나 히트펌프를 사용하지 않아 법적 재생에너지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수자원공사는 신재생에너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수열 법적기준을 변경해 수열에너지 기준을 물의 열을 직접 ‘또는’ 히트펌프를 사용해 변환시켜 얻어지는 에너지로 변환할 방침이다.충청북도는 충주·대청댐 수열클러스터를 포함한 수열기반 DC·스마트팜·산업시설 조성계획 등을 통해 2050 탄소중립 목표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타당성조사를 통해 대청댐 수열활용성을 평가 중으로 타당성이 입증되면 강원도에 이어 국내 수열클러스터 조성을 통한 수열보급 활성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대용량 HP KS인증기준 마련시급
수열클러스터 등 도입용량이 큰 사업의 신속추진을 위해서는 대용량 히트펌프KS인증이 시급하다.국내에서는 대형화되고 있는 DC 등 최신 산업계 요구에 대응할 대형공조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수열냉난방·재생열하이브리드 기술개발 △하천수 냉난방·재생열하이브리드시스템 기술개발 △공공시설 내 미활용에너지를 이용한 냉난방시스템개발 등 R&D가 진행돼 500RT급 대용량 히트펌프와 미활용에너지를 이용한 50RT급 냉난방시스템 등이 개발됐다.
이런 노력을 통해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대용량 히트펌프 기술개발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KS인증이 지열용 히트펌프만 운영돼 건축물허가과정에서 신재생설비보급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에너지공단은 ‘대용량 수열히트펌프 KS인증기준 신설용역’을 통해 대용량 히트펌프에 대한 KS인증기준을 수립 중이다.
현성호 환경부 물산업협력과장은 “연내 500RT급 히트펌프 KS인증이 신설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이를 시작으로 향후 더 높은 용량도 KS인증기준에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열시장 발전, 정부·업계 힘 모아야
수열기업들은 국내 수열시장 활성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실증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LG전자는 무급유 마그네틱 베어링 압축기를 개발했다. 500RT 대용량으로 개발돼 기존 소용량제품대비 설치수량을 줄일 수 있어 대형빌딩 등 대규모 건축물 적용에 유리하다.
이젠엔지니어링은 국내 최초 5,000RT 규모 수축열시스템 실증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물질제거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안정적 수열시스템 구축을 통해 다양한 수열시스템 실증사례를 이어가고 있다. 기업들의 활발한 기술개발을 기반으로 수열시스템 안정적 운영과 에너지절감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기존 실적이 있는 기업이나 충분히 기술력을 가진 기업으로 설계참여를 제한하는 등 적정규제가 필요하다.
수열기업의 관계자는 “수열은 현재 보급 초기단계로 면허와 규제에 대한 부분이 정립되지 않아 무분별한 설계·시공이 이뤄질 우려가 있다”라며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들에 대한 추가적인 개발이 필요하며 표준화에 정부와 관련기관 수열제도정립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 환경부는 ‘수열산업 육성방안 연구’를 통해 국내 14개 하천을 수열에너지생산에 활용할 경우 한국 표준원전(1,000MW) 20기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지난 2022년 9월에는 수열에너지를 ZEB인증제도에 반영해 인센티브 등 수열보급 확대기반이 마련돼 희망을 가졌다.또한 서울시 기후환경본부는 올해 재생열공사 보조금 시범지원사업을 추진해 수열관로 공사비를 수열공사비 15% 이내로 지원할 방침이다.
수열업계 전문가들은 대용량 히트펌프 KS인증과 수열원 확대를 통한 시장활성화가 이뤄지고 보조금제도 등 지원제도와 제도정립이 함께한다면 산업단지와 도시단위 등 사업이 더욱 확장돼 수열시장에 활기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환경부의 관계자는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수열에 대한 관심도는 높은 상황”이라며 “향후에도 기업들과 협력해 수열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어 “수열시범사업이 종료된 2027년 이후에는 평가단계를 거쳐 수열사업을 더욱 큰 규모로 진행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수열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