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VAC분야에서 미국냉동공조학회(ASHRAE)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학회이며 탁월한 학술적인 업적을 낸 회원에 대해 펠로우(석학회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전체 회원 6만명 중 1%정도만이 펠로우로 선정된다. 최근 ASHRAE 펠로우로 선정된 한화택 국민대 교수는 실내공기환경분야 세계 최대 학술대회인 ‘Indoor Air 2020’ 조직위원장도 맡고 있다. 한화택 교수를 만나봤다.
■ 현재 국민대에서 맡고 있는 분야는
유체역학과 공기조화 관련 분야를 주로 강의하고 있으며 공업교육론이나 실험 관련 과목도 담당하고 있다. 연구분야는 HVAC 중 주로 ‘V’에 해당하는 환기에 관해 연구한다. 추적가스 방법이나 환기제어와 같은 실험적 연구와 IAQ모델링이나 CFD와 같은 해석적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그동안 환기효율과 열회수 환기장치에 관해 연구했으며 최근에는 수요대응 환기제어에 활용하기 위해 베이지안 통계기법과 인공신경망 방법을 이용한 이산화탄소 농도 기반 재실인원 추정 알고리즘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 ASHRAE 펠로우는 어떤 의미인가
여러 학회에서 펠로우(석학회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정 기간 학회에 기여하면서 탁월한 학술적인 업적을 낸 회원들을 선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펠로우(fellow)란 원래 영어로 동료, 친구라는 의미이니까 아마도 같이 활동하면서 같이 늙어가는 학술적 동료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인 것 같다. 대한설비공학회에서도 몇 년 전부터 펠로우제도를 시작했다.
각 학회마다 펠로우 운영방식은 다르지만 ASHRAE의 경우 하계 및 동계 학술대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활동을 챕터(일종의 지회)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각 챕터가 펠로우 추천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중앙회는 적정기준에 맞는지 심사할 뿐이다. ASHRAE 회장도 사실상 추천권이 없다. 한국 챕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운영방식을 잘 몰라 회장단에게 한국인 펠로우를 특별히 배정해 줄 것을 부탁한 적도 있었다.
■ ASHRAE 펠로우 선정된 소감은
개인적으로 국제 전문가그룹에서 동료로 인정받은 것 같아 매우 기쁘다. 더구나 ASHRAE 펠로우는 전체 회원 6만명 중 1% 내외에 불과하다고 하니 특별한 영예로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학계나 업계를 위해 특별한 역할이나 활동을 해야 할 것 같은 무게감을 느낀다.
국내에서는 김광우 서울대 교수에 이어 2번째로 선정됐다. 앞으로 한국 내 회원들, 특히 후배 회원들의 귀감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으며 한국 챕터를 중심으로 펠로우 3호, 4호로 이어질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하겠다.
■ 국내 냉동공조시장을 평가한다면
냉동공조산업은 제조업과 건설업 그리고 설계업이 긴밀히 연결된 종합산업이다. 학술적인 부분과 산업적인 부분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성장해왔고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할 분야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 관련 산업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먹고사는 문제가 1순위라면 거주 공간에 대한 문제는 2순위쯤 된다. 즉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분야임에는 틀림없으나 이제 새롭게 변신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1차 산업 전체가 한동안 어렵다가 요즘에 건강한 먹거리로 다시 살아나고 있으며 입는 문제는 예술을 입힌 고부가가치 패션으로 계속 성장해 왔다.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 대한 관심은 이제 시작됐다고 본다. 대기 중 미세먼지와 생활용품 관련 유해물질 때문에 최근 일반인들로부터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에 대한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먹거리와 패션에서 보는 것과 같은 디테일이 좀 약한 것 같다. 플레이팅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한땀한땀 장인의 수고가 들어간 것 같은 정교함을 필요로 한다.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자부심으로 감동적인 성능을 제공하는 고급화기술로 승부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기청정기나 에어컨처럼 기계설비 제품들도 점차 직접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산업구조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고객에게 직접 다가감으로써 제품의 차별성을 설명하고 기술의 우수성을 선택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4차 산업혁명이 냉동공조산업에 미칠 영향은 4차 산업혁명은 냉동공조산업 전반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기회가 아니라 위기가 될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연결성과 융합화 그리고 지능화라고 봤을 때 열유체와 건축환경을 중심으로 했던 냉동공조산업에 IoT기술을 융합하고 센서를 연결해 축적된 막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궁극적으로 설계, 시공, 운전 등 각 측면에서 지능화를 이뤄내야 한다.
1차 산업혁명 당시 각 산업별 방직, 운송, 발전, 조선 엔지니어가 개발된 증기기관을 어떻게 가져다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발전한 통신계측제어기술을 우리 분야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열린 마음으로 관련 기술을 받아들이고 관련 인력을 이 분야로 끌어들여 융합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 기계설비법이 통과됐는데
오랫동안 설비업계가 꿈꾸던 숙원사업이 이뤄져 기쁘게 생각한다. 앞으로 최소한의 법적 보장을 받게 돼 냉동공조 모든 분야가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품의 효율을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분야보다는 아무래도 시스템설계 및 공사 관련 설치산업분야가 기대가 된다.
특히 실내환경이나 환기 또는 방재분야와 같이 건강이나 안전 관련 분야가 크게 수혜를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계설비가 이제까지 주어진 건축공간에 수동적으로 끼워 넣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설비가 제대로 설치되고 운전되기 위해 필요한 설치 공간, 유지관리 인원, 점검 절차 등의 기준을 제시하고 여기에 맞춰 건축물이 설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에 따른 거주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책임을 기계설비업자가 진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만큼 책임감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 저서활동이 활발한데
과학, 역사, 철학 등 모든 분야에는 교양서적이 넘쳐 나는데 유독 공학분야에는 교양서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공학이 워낙 세분화된 전문 분야이기 때문에 교양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공학이 소외되고 단절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반인들과 끊임없이 소통할 필요가 있다. 공학을 쉽게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학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설비공학회 설비저널에 10여년 동안 연재했던 생활속의 공학이야기를 1편 ‘공대생도 잘모르는 재미있는 공학이야기’와 2편 ‘공대생이 아니어도 쓸데있는 공학이야기’ 두 편으로 엮어서 지난 해 출판했다. 최근에는 청소년을 위한 ‘10대를 위한 공학’이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너도 엔지니어가 될래 (원제: Engineered)’라는 초등학생용 공학 그림책을 번역한 적이 있는데, 공학설계를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서 아주 쉽게 설명한 책이다. 구체적인 공학지식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공학이 무엇인지 잘 소개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공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깊이 있는 책을 써보고 싶다. 공학지식을 단순히 나열하거나 소개하기 보다는 전공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흐르는 공학적 사고방식이나 공학적 방법론 등을 정리하려고 한다.
과학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발견된 과학적 원리들이 대단한 것도 있지만 그에 앞서 관찰을 통해 검증가능한 과학적인 방법론을 정립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다. 객관화하고 정량화하는 작업은 과학과 유사하지만 공학에는 최적화 작업이라든가 창의적인 설계 등과 같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공학만의 독특한 방법론과 학문적 특성이 있다.
■ 최근 냉동공조분야 인력수급이 어려운데
국민대학교도 마찬가지다. 몇몇 전공분야를 제외하면 전체 대학원이 어려운 것은 사회적인 추세인 것 같다. 졸업생 입장에서 취업이 최우선이다 보니 학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었고 전반적인 대학원 진학도 눈에 띄게 줄었다. 현실적으로 대학원이 취업에 도움되지 못하고 취업됐을 때 경력기간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도 대학원 교육이 지적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학문적 자부심을 키워주지 못한데 대해서 스스로 공학교육을 돌아보게 된다.
우수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산업체에 지속적으로 실용적인 고급인력을 제공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 냉동공조분야를 이끌고갈 학문적 후속세대가 맥이 끊기지 않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기계설비법을 잘 활용해 냉동공조분야가 매력적인 분야로 거듭나야 할 것 같다. 산업이 발전해야 후속세대가 모여들고 후속세대가 모여들어야 산업이 발전하는 연쇄적 상승효과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Indoor Air 2020’을 유치했는데
지난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Indoor Air 2018’에 다녀왔다. Indoor Air 학술대회는 ISIAQ(International Society of Indoor Air Quality and Climate)에서 주관해 매 2년마다 열리는 실내공기환경분야에서 가장 큰 학술대회로 참석자가 1,000여명에 이른다. 여기에는 보건 의료, 건축 환경, 공학 기술 등 다방면의 전문가가 참석하는 그야말로 융합학술대회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다음 Indoor Air 2020 대회는 2020년 7월20일부터 24일까지 5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최종 확정됐으며 ISIAQ측과 계약을 맺고 돌아왔다.
Indoor Air 2020 주제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반영해 ‘Creative and Smart Solutions for Better Built Environments’로 잡았다. 사회적으로 공기 중 미세먼지 문제를 비롯해 가습기, 항균필터, 라돈 침대 등 생활용품과 관련된 공기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발달된 IT기술을 실내공기에 접목시키고자 정했다.
학술대회이니만큼 실내공기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과학적 이해가 우선돼야 하지만 공학적 문제해결에 방점을 두고 산업적 응용 특히 4차 산업과의 연계를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한국공기청정협회에서 주관하는 공기전시회(Air Fair)와 같은 기간에 개최함으로써 산업과 학술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만큼 연구자뿐만 아니라 산업체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회 기간 동안 다방면의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적절히 활용하고 제품이나 기술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