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평가 시장확대는 정부의지에 달려있습니다. 건축물 에너지효율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함으로써 관련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확실히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민간은 자연히 따라올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소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건축물의 에너지를 효율화하기 위해 ‘건축물에너지평가사(이하 평가사)’를 만들었다. 평가사는 건축물의 건축, 기계, 전기, 신재생에너지 등 각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연계해 통합적 관점에서 건축물의 에너지소비를 효율화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춘 전문인력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은 기후변화에 따른 에너지절감을 위해 녹색건축을 활성화할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이와 같은 전문인력이 중요하다고 보고 평가사 양성을 추진해 왔다.
2013년 민간자격으로 첫 시행된 평가사시험은 2014년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에 따라 국가자격으로 전환됐다. 2016년 2월 국가자격 첫 시험으로 시행돼 98명을 배출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2회 시험이 시행돼 61명의 평가사가 배출됐다. 현재 3회 시험일정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최근 3곳의 평가사협회가 하나로 통합되며 본격적으로 소임을 다할 채비를 마쳤다. 그러나 우여곡절도 많았다. 2016년 평가사 임무범위를 놓고 국토부와 대한건축물에너지평가사협회(이하 대한협회)에 갈등이 발생하자 협회 구성원 중 일부가 국토부와의 소통강화를 이유로 한국건축물에너지평가사협회(이하 한국협회)를 창립하는 등 분열양상을 보였다.
이후 배출된 제2회 합격생들은 양 협회의 갈등 사이에서 2회건축물에너지평가사협의회(이하 2회협의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통합을 추진했다.
세 협회에서 구성한 통합추진위원회(이하 통추위) 활동을 통해 마침내 지난달 3일 건축물에너지평가사협회(가칭, 이하 통합협회)가 출범하며 평가사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명칭은 다른 안이 나올 경우 이사회 의결로 확정할 계획이다.
명칭변경을 통해 통합협회로 거듭난 대한협회는 회장으로 박종원 평가사를 선출했다. 사실상 통합협회의 초대 회장이 된 박종원 건축물에너지평가사협회 회장을 만나 향후 평가사의 비전을 들어봤다.
■ 에너지평가사가 필요한 이유는
에너지의 절약과 효율적인 관리는 전 세계적인 과제이며 에너지소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건축물을 대상으로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건축물에너지평가사 제도가 만들어졌다.
평가사가 수행할 수 있는 건축물의 에너지평가 관련 제도로 건축물에너지효율등급인증제와 에너지절약계획서가 있다. 에너지효율등급인증제는 일부 공공건물에 의무화돼 있지만 절약계획서는 연면적 500㎡ 이상인 건축물 대부분이 제출하게 돼있다.
현재 계획서 등의 적절성이 평가되고 있지만 평가사의 종합적인 시각으로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
건축물의 에너지효율은 건축, 기계, 전기, 신재생이 통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있지만 에너지 관련해서 전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적어 한계가 있다.
새 정부의 탈석탄발전 및 탈핵발전 정책은 천문학적인 환경비용과 폐기비용을 고려할 때 적절한 정책이라 생각한다. 다만 대체 에너지로서 친환경 에너지의 확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의 절약과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평가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에너지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고 건축물의 전체적인 효율측면에서 조언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어야만 제대로 건축물 에너지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평가사들이 설계단계부터 참여해 건축물의 종합적인 에너지절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효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현장에서 감리를 하다보면 건축물의 설계변경이 이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정에 따라 실의 위치, 평면도가 바뀌는 등 부분적인 변경이 생기면 열, 에너지 관련해서 단열재, 설비 등도 조정돼야 한다. 이와 같이 변경이 생길 때 평가사로서 에너지측면에서 고려할 점을 이야기하면 현장에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다 많은 평가사들이 배출돼 시공, 감리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 현재로서는 평가사 역할이 제한적인데
모든 평가사들이 각자의 일터에서 에너지의 절약과 효율적인 관리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직접 절약계획서를 작성하거나 효율등급인증 평가를 수행하는 평가사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관련시장의 규모문제다. 현재 효율등급 업무는 국가에서 지정한 인증기관이 수행하고 있다. 법적으로 평가사는 이 인증기관에 소속되거나 등록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지금 형성된 시장규모는 이 인증기관들이 현재 고용하고 있는 정도의 인력만으로도 전체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다.
둘째로 평가사들의 역량문제가 있다. 사실 평가사들은 자격증만 획득한 상태다. 즉 기본적인 이론을 공부해서 자격을 취득했는데 본래 자신의 분야 외의 다른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과 경험은 더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평가사 시험은 건축, 기계, 전기, 신재생에너지 관련지식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지만 이론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평가사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재교육이 중요한데 지금은 다소 부족하다. 평가사는 3개월의 교육을 받아야 인증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평가사들은 시장전망이 불투명하다 보니 3개월간 현업을 접고 교육받기가 쉽지 않다.
건축물에너지평가사 제도가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성장과 평가사의 역량강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 에너지평가시장 확대를 위한 방안은
평가사협회가 주장하는 업역확대는 ‘지분나누기’가 아니다. 평가사들이 에너지관련 일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기존 시장에서의 반발이 크지 않으려면 일 자체가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만 에너지산업을 저항 없이 확산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투트랙(Two-Track)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강력하게 친환경건축물 정책을 추진해야 하고 협회는 역량강화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가 에너지평가사를 만들었다고 해서 평가사만을 위해 업역을 확보해 줄 필요는 없다. 단지 정책을 일관성있고 엄정하게 추진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제도적인 지원만 있으면 된다. 핵심적인 역량은 협회에서 자체적으로 쌓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시장확대는 정부의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정부는 건축물의 에너지효율화를 위한 비전을 제시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수립해두고 있다. 2020년부터 공공기관이 제로에너지의무화가 이뤄지고 2025년에는 민간까지 확대되며 2030년에는 전면적으로 의무화하겠다는 방안이다.
공공기관의 경우 단계를 잘 밟아가겠지만 시장규모가 훨씬 큰 민간의 경우는 잘 이뤄질지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에너지효율적인 건축물을 지으려면 초기투자가 많아져야 해 민간의 반발과 충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의 위축을 우려해 건축물제로에너지의무화 확대가 당초의 로드맵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이는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기술격차를 더 키워 녹색건축분야의 국제경쟁력을 약화할 것이다.
정부에서 손을 놓고 있으면 민간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는 강력한 추진의지를 갖고 먼저 나서서 시장에 확고한 신호를 줘야 한다. ‘믿고 따라오라’는 식으로 에너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관련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민간건축에 전면적으로 확대하기 부담스럽다면 큰 규모 건축물을 우선으로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연구와 인센티브 등 유인책마련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특히 인센티브가 선결조건이다. 현재도 친환경적으로 건축을 하면 용적률이나 취득세 등에서 혜택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강화될 필요가 있으며 정부는 적절한 수준에 대해 데이터분석 등 정책연구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평가사 역량강화를 위한 방안은
평가사 역량은 두 가지 측면에서 강화돼야 한다. 건축물 에너지평가 프로그램 운용능력과 건축, 기계, 전기, 신재생에너지 등 각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그것이다.
첫째로 평가프로그램 운용교육 기회는 정부의 지원 하에 반드시 제공돼야 한다. 평가사들은 자격시험을 통해 평가 프로그램의 구성과 효율등급산출방법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평가사의 기술력은 건축, 기계, 전기, 신재생분야의 설계조건의 변화가 전체적으로 건축물의 에너지효율등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해 최적효율화를 도출하는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의 교육은 프로그램 개선차원에서도 도움이 된다. 모든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에 대해 적용해 봐야 문제점도 찾고 개선도 할 수 있다.
현재는 건축물에너지평가를 위한 기초자료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기초자료에 대한 연구는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내용이지만 어떤 기초자료가 우선적으로 필요한지는 평가사의 실무를 통해 도출되고 정리돼야 한다.
둘째로 전문지식 강화를 위해서는 협회가 나설 방침이다. 평가사들은 자신의 전문분야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는 에너지효율등급 평가를 위한 기본적인 지식만 갖고 있다.
녹색건축분야에서 에너지효율을 이뤄내는 전문가가 되려면 다른 전공분야 지식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깊어져야 한다.
실제적으로 효율적인 에너지관리를 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관점에서 각 분야를 최적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능력이 필요하다.
평가사들로 이뤄진 통합협회에는 건축사, 기계기술사, 전기기술사, 신재생에너지 전문가, ESS 관련 전문가, 에너지컨설팅회사 운영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준비가 돼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교육프로그램에서 팀워크를 이뤄 상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자체 역량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평가사들은 각 분야를 아우르는 기본지식이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측면과 배우는 측면 모두에서 에너지를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능력을 전달하고 배울 수 있다.
■ 평가사의 장기적 비전은
평가사가 에너지효율화에 대한 고도의 기술력을 갖고 설계단계까지 컨설팅해야 수준 높은 건축물에너지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
현재 건축물에너지효율에 대한 평가사의 업무는 주로 설계가 완성된 건축물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즉 건축물에너지효율의 최적화를 위한 설계업무라기보다는 설계된 건축물의 에너지효율등급 인증을 위한 업무다.
예를 들어 건축주가 2등급을 맞춰달라고 하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단열, 설비 등을 기준에 맞춰서 집어넣기만 한다. 이것을 수행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은 진정한 의미의 지식과 기술이 아니라 단지 일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건축, 기계, 전기 분야별로 기본적 설계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야별 전문가가 각자의 분야에서 에너지 효율을 위한 설계를 수행하고는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각 분야가 연계된 진정한 의미의 최적 효율설계가 이뤄지기 어렵다. 각 분야에서 최적설계라 하더라도 연계됐을 때 효율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를 아는 사람들이 실무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하고 데이터를 쌓아가면서 나중에는 설계단계에 참여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역량을 강화한 평가사들이 설계단계부터 참여해 건축물의 종합적인 에너지절감을 도모할 수 있다면 에너지효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녹색건축 시장의 급격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 비전을 위해 협회역량을 결집해야 하는데
우선 통합협회가 출범했으니 업역확보와 권익증진이라는 협회 본연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사실상 최근까지도 통합에 전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협회사업에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한국협회가 의결정족수를 확보하지 못해 해산총회를 개최하지 못하고 있어 형식상 2개의 협회가 남아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공동합의문에 따라 통합협회의 출범과 함께 기존의 협회 회원들은 모두 통합협회의 정회원으로 등록이 된 상태다. 또한 정관상 두 협회의 설립목적이 동일한 이상 합력해 사업을 추진을 하는데 문제는 없다고 기대된다.
줄탁동시(.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껍질을 깨고 새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어미닭과 병아리가 안팎에서 동시에 껍질을 쪼아야 한다. 에너지분야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면서 녹색건축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내려면 정부와 협회의 관계도 이와 같아야 한다.
평가사는 실무와 교육을 통한 자체 역량강화로, 정부는 일관되고 적극적인 정책 추진과 에너지평가관련 기초데이터의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로 안팎에서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