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에너지빌딩(ZEB)은 파리기후협정과 4차 산업혁명의 접점에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지구온난화에 따라 환경재난이 몰아치는 가운데 신기술·기술융합으로 패러다임이 변하는 격동의 시기다.
두 가지 시대적 기류 속에서 ZEB의 가치와 비전이 나온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의 환경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들이 적용된 분야가 ZEB다. 국내 에너지 20%, 세계 에너지 40%를 사용하는 건축물의 제로에너지화는 우리가 필수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다.
이런 상황에서 ZEB를 알리는 연구·교육·홍보에 발 벗고 뛰는 이가 있다.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로 일컬어지는 플랫폼(Platform)을 건축업계에 접목한 이승복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다. 한국형 통합프로젝트수행방식(IPD: Integrated Project Delivery) 플랫폼 ‘IPD Process’를 개발한 ‘그린빌딩 전도사’인 그를 만나봤다.
■ 왜 ZEB가 중요한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너무 심각해서 전 세계가 멸망을 걱정해야 할 단계까지 왔다고 본다.
1970년부터 2008년까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이 2배 늘었다. 선진국은 온실가스를 엄청나게 내뿜으면서 산업화를 완료했지만 전 인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수여서 그 때는 문제가 감지되지 않았다.
지금은 중국, 인도, 중동 등이 산업화에 가세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종말까지 우려해야 할 정도로 매우 심각하다. 2012년에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복구비용이 세계적으로 190조원 발생했다.
이스터 섬을 아는가. 사람도 별로 없는 이곳에 모아이 석상이 서 있는 것을 두고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주장까지 나온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과거 매우 큰 문명이 있었지만 자원을 고갈시켜 결국 멸망했다는 학설이 있다. 이들은 환경을 마구 훼손하다 어느 순간 뭔가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우리 상황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더 심각해지기 전에 사람들이 인지해야 하고 세계가 움직여야 한다. 건축분야에서 답은 그린빌딩, ZEB다.
■ ZEB산업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엄밀히 말하면 ZEB는 기후변화, 환경문제 해결의 대안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환경문제를 들며 얘기하면 잘 안 먹힌다.
사실상 더 핵심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문제는 경제적 이슈다. 지금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가. 복구비용이 어마어마하다. 그것을 감당하면서 계속 놔뒀다가는 인류가 지속성장을 할 수가 없다. 경제적 성장률이 제로, 마이너스가 되면 얼마나 삶이 고통스러운지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알지 않나.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재난비용 지출을 줄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지출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은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 안할 수가 없고 ZEB를 안할 수가 없다. 이걸 잘 알리는 게 중요하다.
■ ZEB는 비용적 한계가 지적되는데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는 202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화석에너지보다 싸진다고 발표했다. 다른 패시브건축자재나 친환경·고효율 기계설비도 기술 발전에 따라 획기적으로 비용이 절감돼 충분히 해결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단지 시간만 흐른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가 오지는 않는 만큼 우리 건축업계에서는 나름의 노력을 해서 그 미래를 실현해야 한다.
■ 건축업계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이제는 양이 아니라 질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택지조성이나 재개발단지 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있어서 건축물량만 늘려서 수익을 내는 방식은 구시대적이다.
적은 일을 하더라도 좋은 건축물을 만들어서 높은 부가가치로 수익을 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착한건축’을 하자고 얘기한다. 우선 정말 좋은 건축물을 만들겠다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친환경적이고 에너지도 덜 쓰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함으로써 좁게는 소비자에게, 넓게는 인류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오직 그 목적만을 위해서 좋은 자재를 쓰고 제대로 설계해야 한다. 나아가 이런 인식의 확산과 산업의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서도 수익이 적절하게 배분되고 비용이 효율적으로 쓰여야 한다.
지금 건축계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삼성동 현대자동차 그룹의 GBC(Global Business Center)도 말로는 하나의 국제적 랜드마크라고 하는데 전혀 세계와 인류에 의미 있는 건축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건축물에너지효율 1등급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건 정부에서 현실성을 고려해 정해 둔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정말 의미 있는 건축물이 되고 싶으면 나름의 철학과 기준을 가져야 한다. 시카고의 윌리스 타워(Willis Tower)처럼 감동적인 친환경 전략이나, 프랑크푸르트의 코메르츠 뱅크(Commertz Bank)처럼 패시브‧액티브 시스템의 통합적 접근을 통한 획기적 에너지 절감이나, 암스테르담의 에지 빌딩(Edge Building)처럼 첨단의 IoT기반 스마트 BEMS를 통해 인류 미래기술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17조원이나 들여서 잠실롯데월드타워보다 5m 높은 건축물 짓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또한 건축산업 생태계가 건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장시간 근로, 낮은 보수로는 창의적 건축설계나 엔지니어의 상상력이 발휘되기 어렵다. 이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신명나게 일하고 싶도록 건축산업 생태계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착한 건축이 실현돼야한다.
■ 착한건축은 어떻게 가능한가
건축을 ‘프로세스(Process)’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건물은 결과물이고 건축은 과정이다. 과정이 엉망인데 결과물이 좋게 나올 리가 없다. 좋은 건축물은 좋은 건축과정의 당위적 결과일 뿐이다. 설계, 시공, 운용과정부터 단계별 계약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과정과 절차들이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검토돼야 한다. 그래야 질 좋은 건축물이 나온다.
이런 방향으로 건축산업 생태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통합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건축실무를 혁신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건축 프로세스는 후반부에 많은 업무가 집중되곤 한다. 게다가 친환경 요소를 도입하면 변경이 잦아져 비용증대 원인이 된다. 결과적으로 시간적, 금전적 손해로 이어지는 구조다.
IPD라는 통합프로세스가 도입되면 각 단계별 활동(Activity)을 세분화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초기단계부터 전략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 어느 설계단계에서 어떤 부분의 형태를 결정해야 하는지, 외피 재료를 어떻게 고를지, 에너지 성능개선을 위한 설계를 어느 단계에서 반영할지 영역별 활동을 세분화한다. 또한 이런 활동을 설계사가 할 것이냐 엔지니어가 할 것이냐 하는 역할도 규정해 둔다.
이렇게 되면 초기의 투자비용은 다소 증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 분야의 전략이 처음부터 논의되었기 때문에 후기 단계에서 재논의를 하게 되거나 새로운 요소가 갑자기 도입될 우려가 적다.
이런 시스템이 자리를 잡는 것이 IPD, 즉 통합프로세스의 적용이다. 이러한 통합 플랫폼의 구축으로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고 모두가 동시에 참여하는 원리다. 이러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서 통합적으로 설계‧시공‧운영함으로써 품질은 높이고 비용은 줄여 성능과 비용의 최적화를 이룰 수 있다.
■ 플랫폼을 이미 구축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앞서 설명한 부분들을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을 이미 만들어 온라인에서 운영하고 있다. www.aired.kr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다.
플랫폼이라는 것은 하나의 가상공간인데 이곳에 모든 정보가 다 들어가 있다. 과거 사회에서 지식 독점이 부를 가져왔다면 플랫폼사회 핵심은 개방과 공유다.
예전에 도요타가 미래자동차의 시험모델로 연료전지 차를 생각했다. 관련된 기술을 엄청나게 개발해서 거의 모든 특허를 보유했다. 그런데 갑자기 테슬라가 전기차를 들고 나오면서 모든 특허를 공유하겠다고 선언했다.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되니 세계 시장이 전기차 쪽으로 쏠렸다. 도요타의 관련 특허는 휴지조각이 된 셈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잘 벤치마킹해 건축산업의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앞으로는 개방된 플랫폼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공정하게 경쟁함으로써 건축산업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