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실 실내공기질(IAQ)과 노동자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조리흄이 부각됨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조리흄 저감대책이 잇따르고 있다. 환경부는 제5차 실내공기질관리 기본계획에 조리흄 관련 대책을 포함하고 관리체계를 구축 중이며 교육부 또한 각 시도 교육청 및 고용노동부 등과 공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급식실 환기설비 개선사업에 총 1,8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조리흄이 아직 ‘입자상 대기오염물질(PM: Particulate Matter)’로 분류되지 않은 현행 제도 하에서는 저감대책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국가표준 정립을 통한 조리흄 대상물질 선정 및 실태파악과 맞춤형 설비개선이 제대로 추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입자상 대기오염물질이란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심사·평가를 거쳐 대기오염 원인으로 인정된 가스나 입자상의 물질로 환경부령을 통해 규정된다. 조리흄은 PM2.5 이하 미세입자뿐만 아니라 기체상 오염물질도 포함하고 있으나 현행법령에서는 조리흄에 대한 정의와 분류가 명확하지 않다. 이로 인해 배출 허용기준이나 방지시설 설치의무 등 제도적 규제가 적용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조리흄의 입자크기는 0.03~0.3㎛으로 매우 작아 PM2.5기준을 가진 현행 대기오염물질 관리 법령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일반적으로 급식종사자가 노출될 수 있는 조리흄 입자는 △TVOC(총휘발성유기화합물) △포름알데히드 △이산화탄소 등으로 다양하다.
학교 급식실을 비롯한 다중이용조리시설 노동자는 조리흄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2년 17개 교육청에서 4만4,548명 급식종사자에 대한 건강검진을 실시한 결과 폐암의심환자 379명(0.85%) 및 폐암확진자 52명(0.12%)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인 여성(35세 이상 65세 미만) 폐암발병률 0.0288%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노동자건강 및 학생안전과 직결된 조리흄을 해결하기 위해서 법제화·모니터링체계 등 실질적 개선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환경부 IAQ관리 기본계획… 조리흄 특성반영 한계
환경부는 지난해 제5차 실내공기질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29년까지 적용되는 이번 계획에는 조리매연의 단계별(측정-저감-관리) 관리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조리시설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산정체계인 CAPSS(Clean Air Policy Support System)에 포함시키겠다는 계획은 조리공간 내부에서 외부로 방출되는 조리흄의 배출량을 추산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작 문제가 되는 급식실 실내공기질과 노동자 건강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또한 다중이용시설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조리흄 모니터링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포함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관리방안은 기존 9종 유해물질에 대한 측정에 한정돼 있다.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 아크롤레인, 미세기름입자 등 조리흄 특유물질은 별도 측정항목에서 제외된 상태다. 이에 따라 작업장 내 조리환경에서 직업성 노출 허용기준이 적용되지 않으며 조리흄 전용 분석법 개발, 기준 설정 등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특히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조리흄농도 측정에 어려움이 있으며 급식실 급·배기장치 설치의 효과적인 운영과 검증을 위한 모니터링체제 구축에도 한계가 있다.
한국환경공단 실태조사는 기존 9개 오염물질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별도의 조리흄항목 추가계획은 현재로서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로 인해 PAHs 등 주요 조리흄물질에 대한 측정이 불명확한 상황이다. 조리흄에는 작은 입자 크기와 폐 침투성이 높은 물질이 포함돼 기존 유해물질 중심의 측정 만으로 조리종사자에 대한 건강 영향평가가 어렵다. 또한 조리흄은 미세입자와 유해가스 등을 포함한 복합 오염물질이므로 기존항목 측정으로는 특성과 위해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다.
교육부 TF, 실태파악·맞춤형 저감 부재
교육부에서는 2023년 ‘학교급식실 조리환경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학교당 1억원, 총액 1,800여억원을 보통교부금으로 각 시·도 교육청에 배부해 환기설비 개선사업을 진행했다. 경상남도 교육청의 경우 전체 970개교 중 2023년까지 151개 학교를 개선했으며 나머지 819개교에 학교당 약 3,000만~3억원을 투자해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서울·경기·세종 등 7개 교육청도 2027년까지 관내 학교 급식실 환기시설 개선에 약 9,064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조리흄 저감을 위해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단순한 공조·설비 공사만으로는 학교 조리실 환경 개선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홍천상 고려대학교 교수는 “공조·설비 부문만이 아니라 오염물질 관점에서 조리흄 저감방안을 검토해야 된다”라며 “조리흄을 단순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농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이에 맞춰 설비를 효율적으로 가동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급식종사자 폐암예방 TF를 주관하는 교육부는 권한, 전문성을 이유로 조리흄 저감에 대한 실태 파악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교육청에서도 학교별 예산파악과 설치여부 점검에 머물렀다. 경남교육청 등 일부 교육청에서 실태조사 용역을 통해 환기시설 개선사업 전후 유해인자 노출 수준을 분석하려 했으나 조리흄 지표물질 부재로 간접적인 방법으로 분석이 이뤄져 한계가 있었다. 고용노동부에서도 설비설치 확인 여부 외 별도 실태파악 계획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학교 급식실 조리흄 문제의 심각성과 현행대책의 한계를 고려할 때 보다 근본적이고 다각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조리흄을 법적으로 입자상 대기오염물질로 명확히 분류하는 것이다. 이는 △대기환경보전법 △실내공기질 관리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법령에 조리흄 관련시설을 배출시설로 추가하고 배출량 산정방법 고시를 신설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인자로 지정될 경우 조리종사자들에 대한 특수 건강검진 의무화, 국소 배기 환기장치 설치의무, 적절한 보호구 착용의무화 등 직접적인 작업자 보호조치가 법적으로 강제될 수 있다.
또한 조리흄의 복합적인 특성을 고려한 표준화된 측정 및 분석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조리흄의 실제 위해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주요 조리흄 물질에 대한 별도 측정항목 설정, 전용분석법 개발, 명확한 기준설정이 필수적이다. 전문가 의견을 수용해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조리흄 측정기준을 마련하고 식품위생법상 집단급식소를 중심으로 관리대상 범위를 설정한 뒤 향후 단계적으로 일반 음식점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환기설비 개선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에서 조리흄 제거를 위한 배기설비를 규정하고 있으나 현장여건 및 설치방법에 따라 오염물질 제거성능이 달라질 수 있어 구체적이고 표준화된 방법이 시급하다.
이윤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실내환경관리센터장은 “조리흄으로 인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조리흄 측정 또는 평가방법 마련이 급선무”라며 “이미 존재하는 한국공기청정협회의 단체표준인 ’SPS-KACA016-0146: 가정용 레인지후드의 미세먼지 제거효율 시험방법‘ 등을 참고해 조리흄 제거 시험방법을 제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공기정화설비 외에 기계환기설비 설치 확대를 통해 조리흄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자연환기가 제한되는 급식실 조리공간의 특성을 고려할 때 기계환기시스템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규제적 대응한계 극복… 기술혁신 통한 산업활성화 필요
법적규제를 통한 대책마련 외에도 관련 기술개발 촉진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조리흄 문제에 대응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환기업계에서 조리흄 기술개발시장은 미래 성장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평가받지만 현재 몇가지 현실적 문제로 인해 기술개발에 대한 유인이 떨어지고 있다.
환기업계의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언론을 통해 조리흄 문제에 심각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아직도 현장실무자 조리종사자들의 문제의식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어 조리흄 저감기술 및 제품에 대한 실질적 수요창출이 이어지지 못한다”라며 “교육부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급식실에 덕트, 송풍기 등 다양한 부속을 모두 포함한 제품을 납품해야 하는데 불분명한 시장수요로 인해 환기업계가 제품군을 확대하고 개발하는데 주력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리흄이 입자상 대기오염물질로 분류돼 법적 강제성이 확보된다면 조리흄 기술개발은 큰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다. 현재는 불명확한 시장수요로 인해 혁신기술 개발유인이 부족하지만 조리흄이 법적인 유해물질로 분류된다면 시장에 의무적 수요가 창출되며 더 많은 기업이 첨단기술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조리흄 예산이 후드, 덕트 등 일부 설비에만 집중된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어썸레이의 탄소나노튜브 및 미세 X-ray를 활용한 공기살균·정화기술이나 다빈워텍의 솥 일체형 흄방지기 등 다양한 기술이 조리흄 저감을 위해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청 예산투입은 주로 후드, 덕트 등 전통적 환기설비에만 한정돼있다. AI환기 시스템, 이동식 후드, 로봇 조리시스템 등 조리흄 저감을 위해 다양한 혁신기술의 개발을 장려하려면 이러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한다.
IoT기반 조리흄 모니터링시스템 개발도 활발한데 이 또한 조리흄 측정방법과 모델링에 대한 보다 명확한 기준이 정립된다면 더욱 고도화되고 현장적용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케이웨더의 조리흄 통합 공기관리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 기술은 IoT기반으로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VOCs 등 10가지 실내공기질 요소를 실시간으로 측정 및 분석하며 주방후드, 급배기, 송풍기 등 공조시스템을 실시간으로 원격·자동제어할 수 있다.
조리흄은 환경, 노동, 교육이라는 다면적인 문제가 복합돼있어 어느 한 부처만의 노력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현재 운영 중인 교육부 TF 외에도 법적구속력을 가진 상설협의체 또는 통합 관리기구 설립을 검토해 각 부서가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통합 관리체계는 조리흄 노출 실태파악, 건강영향 조사, 저감대책 수립 및 이행, 예산집행의 효율성 검증 등 전과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조리흄은 노동자 건강과 학생 안전에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다. 다중이용 조리시설의 조리종사자는 조리흄에 장기간 반복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어 폐암과 호흡기 질환 등에 무방비할 수밖에 없다.
조리흄 문제는 학교급식실에만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 군부대, 민간 조리시설 등 다양한 다중이용시설로 확대될 여지가 크다. 이에 따라 조리흄 관리의 기준을 선도적으로 마련하고 민간의 기술개발과 시장참여를 유도한다면 조리흄 저감은 실내공기질 향상과 산업 활성화를 동시에 이끄는 정책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조리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만큼 조속하고 선도적인 조치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