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매는 동일양의 CO₂에 비해 지구온난화에 100~1만4,000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등 지구온난화와 오존층파괴를 유도하는 물질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위험성이 인식되면서 불소화합물의 일종인 냉매도 탄소 배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물질로 관리해야 한다. 누설될 경우 대부분 오존층을 파괴하거나 공기 중 산소와 결합해 kg당 1,000배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장기간에 걸쳐 발생시키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국제사회는 1990년대 오존층을 직접 공격하는 ODP(오존층파괴지수: Ozone Depletion Potential)와 GWP(지구온난화지수: Global Warming Potential)가 높은 냉매규제를 시작했다. 그동안 전 세계는 1989년 몬트리올의정서를 통해 CFC를, 1997년 교토의정서로 HCFC를, 최근 파리협약에 따른 키갈리개정의정서로 HFC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HFC규제 계획이 수립돼 실행 중인 선진국들을 제외한 개도국에서는 아직까지 HCFC의 퇴출이 끝나지 않았으며 HFC에 대한 규제도 없다. 우리나라는 개도국으로 분류돼 규제 일정이 늦어짐에 따라 국내 업체에서도 친환경시스템에 대한 개발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냉동·냉장용 대부분 장비들이 HCFC냉매 위주로 생산되고 있으며 HFC냉매가 신냉매로 인식돼 이제서야 HFC로 전환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그나마도 이행되지 못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제조사들 주도로 HFO나 하이드로카본 또는 자연냉매를 사용하는 제품들이 시장에 출시되고 있다”라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개도국의 냉동·냉장시장에서 선진국 수입품들의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글로벌 냉매규제 트렌드에 적극 대응하지 못할 경우 안방시장을 글로벌 기업에게 내줘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지만 국내기업 상황은 이런 우려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 산업계의 입장에서도 대체냉매로의 전환요구는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 가령 현재 국내 상업용 냉매사용기기는 주로 중소기업에서 제조하고 있는데 상업용 냉매사용기기 대부분이 현재 HCFC계 냉매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들 기기의 냉매가 HFC계 냉매가 아닌 low-GWP인 HFO계열 냉매로 전환돼야 한다면 해당 업계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냉매의 물질특성에 따라 냉매사용기기도 개발해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업계의 부담을 줄이며 냉매전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산업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냉매, BAU와 연결해야
냉매관리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량 BAU(Business As Usual)와 연결해서봐야 할 필요성도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냉매관련 한 전문가의 지적이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이산화탄소 감축량은 2030년까지 BAU대비 37%를 목표로 잡고 있다. 이는 약 5억8,000만톤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국내에서 수입·생산돼 적용되는 HFC와 HCFC를 합하면 대략 3만5,000톤~4만톤 정도로 추정되며 이를 CO₂톤으로 환산하면 약 6,300만톤 정도다. 이는 전체 감축 목표인 5억8,000만톤의 약 11%를 차지하는 물량이다. 어려운 감축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아쉽게도 냉매가 BAU 감축량에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이 국내 현실이다.
유기출 하니웰PMT 대표는 “국가적인 측면에서도 CO₂절감 로드맵에 기여할 수 있는 수치가 분명하다”라며 “효율적인 환경정책을 위해서는 감축효과가 큰 칠러, 에어컨과 같은 공조분야에 규제물질 전환비용을 최소화하는 인센티브제도를 만들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제안했다.
특히 냉매관리는 기후·생태계 변화물질의 종합적인 관리측면에서 국제사회와의 공조와 협력으로 모든 정책이 일관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구성, 추진돼야 한다. 냉매관리 관련 법규의 조속한 정비가 시급하며 가칭 ‘F-Gas 종합관리법’ 같은 종합관리체제 도입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진국들과 같이 사용처별 GWP 제한을 통해 기존의 HCFC보다 더 높은 GWP의 HFC로의 전환을 최대한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냉매관리정책 ‘말짱 도루묵?’
현재까지 중앙정부에서 이렇다 할 뚜렷한 ‘냉매관리 로드맵’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가 전향적으로 국제적인 흐름에 맞춰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는 냉매관리정책을 수립했다. 2019년 진행된 서울시의 ‘서울형 냉매관리 마스터플랜 수립연구’가 그것이다. 해당 연구에서는 서울시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2045년까지 수행할 건물과 운송부문에서의 구체적인 냉매관리 로드맵이 반영됐다.
연구용역을 수행한 그린폴라리스의 관계자는 “해당 용역을 수행했는데 용역을 수행하면서 느낀 점은 low-GWP 냉매를 사용할 수 있는 중앙정부 차원의 법적·제도적 기반이 부재한 현재의 상황에서 지방정부의 의지를 실행하는 데 제약이 많다”라며 “무엇보다도 서울시가 설령 low-GWP 냉매로의 교체나 냉매누출관리 등의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이러한 노력에 대해 인정받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장치가 부재하다는 점이 냉매관리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의지를 무용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하는 기준인 ‘지자체 온실가스 배출량산정지침(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HFC계 물질 수출입량 차이값에 국가 인구 중 서울시 인구비율을 곱한 값으로 HFC계 냉매배출량을 보고토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HFC계 물질에 대한 수출입량 데이터는 한국무역협회의 수출입무역통계를 사용토록 하고 있는데 해당 통계는 HFC-134a와 HFC-152a 두 물질에 대해서만 집계되고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종류의 냉매를 얼마나 사용하는지’에 따른 배출량 감소나 인구당 배출량 등을 기준으로 볼 때의 배출량 감소 등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방정부의 감축정책 시행에 따른 성과를 반영할 여지도 없다. 지방정부의 감축활동을 외부사업을 통해 감축성과를 인정받고자 해도 서울시 산하기관 대부분이 할당업체로 지정되거나 또는 공공부문 목표관리제 하에서 관리되는 기관이므로 조직경계의 문제나 법적 추가성 등의 문제때문에 외부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제약이 있다.
대기보전법, 사각지대 없애라!
환경부는 지난 2018년 11월29일 적정한 냉매관리방안을 담은 대기환경보전법을 시행했다. 관리대상 냉매사용기기가 기존 공기조화기에서 1일 냉동능력 20톤(20RT) 이상인 식품의 냉동·냉장용 및 산업용 기기로 대폭 확대됐다. 냉매의 무단배출을 막고 회수율 증대를 위한 냉매회수업을 신설했다.
또한 냉매사용기기 사용자는 가동 중인 냉매사용기기의 상태, 냉매 누출 여부 등을 점검하고 냉매관리기록부를 작성해 한국환경공단에 제출하거나 냉매관리기록을 냉매정보관리전산망(www.rims.or.kr)에 입력해야 한다. 냉매회수는 시설·장비를 갖춘 냉매회수업자에 의뢰토록 했다. 냉매회수 기술인력은 신규교육과 정기적으로 보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법정 관리대상이 1일 냉동능력 20RT 이상 고압냉매 사용시설로 한정됐고 저압냉매시설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어 ‘냉매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냉동공조 신규시장에 법정냉동톤 20RT 이하의 장비를 여러 대 설치하는 움직임과 저압냉매(R123)을 선호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라며 “20RT 이하 장비에 사용하는 냉매도, R123으로 대표되는 저압냉매도 환경파괴물질임을 알고 있지만 법령이 관리할 수 없는 사각지대로 이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환경부에서 후속 입법과정을 통해 보완하겠다고 하지만 현재 어떤 스케줄도 현장에 제시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한 냉매 회수 자격으로 일정 수준의 장비와 기술인력 확보를 규정해 누출을 최소화하고 회수율을 증대시킨 입법 강화 취지와는 일부 부합하지 않는 시장왜곡 현상이 있어 시급히 보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냉매회수업 등록을 위한 냉매회수기기 성능기준이 지나치게 완화돼 있어 현장에서 실효적인 냉매회수에 오히려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냉매회수 시장 규모대비 과도한 면허권 남발로 인해 면허자들의 최소 사업규모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추후 갈등의 소지가 내재돼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폐기물관리 성공사례는 폐가전 및 생활쓰레기 처리를 참고로 할 수 있다. 리사이클센터는 공제조합 중심으로 전국에 권역별로 12개사가 운영 중이며 생활쓰레기처리업 역시 20개사 정도 권역별로 나눠 관리 중이지만 냉매회수업은 2019년 12월 현재 397개사에 이른다.
냉매재생 및 폐기시설도 논란이다. 폐냉매 발생 추정량은 대략 연간 3만톤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전국에 3개(범석엔지니어링, 선진환경, 오운알투텍)업체만이 운영 중이다. 재생처리시설 규모는 연간 1,000톤, 폐기는 2개사 600여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대용량 폐냉매 재생·폐기 처리기술개발 및 참여기업 발굴이 현안과제이며 관련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발급된 냉매회수업 면허 역시 시급히 정비하고 기술인력기준 등을 냉매회수 현장 여건에 맞게 강화해 더 이상 불법회수 상황이 없도록 대비해야 한다”라며 “지역 권역별 거점화를 통한 근본적인 냉매회수·처리 체계가 도입될 수 있는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의 냉매관리 필요성 인식 제고 및 사업참여 유도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제도가 절실한 상황이며 미세먼지대책의 일환으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태양광발전 육성 등과 같이 냉매처리 설비 확충 및 참여 유도정책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GWP와 ODP를 고려한 계수를 적용해 환경파괴가 큰 물질일수록 보다 높은 환경세를 매겨 친환경냉매를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지적하고 있다. 걷힌 환경세는 친환경 냉매사용기기 개발 및 냉매회수·폐기 거점화에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