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건축의 종착역인 제로에너지건축은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 건축물보다 통상 30%가량 건축비가 많이 든다는 점이다.
이응신 명지대학교 제로에너지건축센터 연구교수는 “노원구 제로에너지 실증단지의 경우 1차에너지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더 많은 플러스에너지 주택인데 일반 건축비대비 약 30% 공사비가 증가했다”라고 밝혔다.
이승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박사도 “일반 시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친환경주택을 짓기 위해서라면 20%정도 부담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라면서도 “실제 돈을 지출하게 될 경우 부담의사가 더 낮아질 수 있어 사실상 10%대 정도로 내려와야 민간에 활성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한계 때문에 제로에너지건축은 아직 정부 주도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2025년 일부 민간건축물에 제로에너지건축 의무를 부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민간에서의 반발 때문에 로드맵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공동주택 건설기준을 패시브수준으로 강화한다는 내용의 ‘에너지절약형 친환경주택의 건설기준’도 6개월 연기돼 올해 12월 시행될 전망이다.
정부도 민간에서의 반발을 잠재울 직접적인 대안으로 인센티브가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예산문제 탓에 쉽사리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기축건물 개선 ‘답답’
신축건물이 아닌 기존건축물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신축이야 정책 추진방향대로 의무화하고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허가를 보류할 수 있어 강제로라도 끌고 갈 수 있다.
반면 기축건물은 강제할 수도 없고 비용을 많이 들여 친환경적으로 리모델링한다고 해도 매매 시 리모델링비용이 거래가격에 산정되지 않는 점 때문에 건물주들이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도 기축건물의 녹색건축화를 위해 그린리모델링을 지원하고는 있지만 실제 공사비를 지원하는 시공지원부문은 공공건축물에 한정하고 민간은 이자만 지원해주는 수준이어서 효용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초 발표한 ‘2016년 전국 건축물 현황’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건축물 705만여동 가운데 20년 이상 노후건축물이 57%에 육박하고 30년 이상은 36%에 달한다. 정부의 제로에너지건축물 추진의 취지가 온실가스 저감임을 감안하면 녹색건축이 더 시급한 쪽은 신축보다 기축건물의 그린리모델링이라고 볼 수 있다.
국토부의 관계자는 “문제는 역시 예산”이라며 “전기자동차는 정부에서 구입가의 절반가량인 수천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데 녹색건축도 이런 보조금 제도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도시재생 뉴딜, 그린리모델링 ‘기회’
녹색건축이 예산부족으로 민간확산의 전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활력을 잃은 구도심, 주거지 등에 커뮤니티시설 강화, 노후건축물 재건 등으로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취지다.
문 대통령은 이 사업에 5년간 연 10조원씩 투입해 뉴딜 수준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노후건축물 개선에 패시브설계 등을 적용함으로써 친환경, 에너지절약형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그린리모델링 등 녹색건축 관련분야의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실제로 공약집을 살펴보면 곳곳에 노후주택 개선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저층 노후주거지를 살만한 주거지로 전환 △노후화된 기존 주택을 공공기관이 정비·매입·장기임차 해 수선 후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 △쇠락한 농촌지역 고령자 공동주거지 건설과 농촌 노후주택 개량사업 추진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도시재생 뉴딜공약에 ‘패시브·액티브하우스 등 녹색건축을 주거취약계층에 우선 적용해 에너지빈곤과 미세먼지문제 해결’ 내용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공약대로 뉴딜사업이 추진된다면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그린리모델링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곽희종 국토부 도시재생과 사무관은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그린리모델링으로 이뤄질지 검토되지 않았다”면서도 “사업에 관련이 있는 모든 요소는 고려대상이며 현재 의견수렴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혀 가능성은 열려있다.
도시재생이란
신도시·재개발 사업 등 도시정비가 도시외곽을 대규모로 개발하는 사업이라면 도시재생은 쇠퇴한 구도심을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부흥시키는 사업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 도시화에 따른 인구집중과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시정비를 추진해 왔다. 전국적으로 1981년부터 2011년까지 여의도 면적의 약 326배 규모가 재개발됐다.
이에 따라 주택난과 산업용지난은 해소됐지만 구도심은 오히려 쇠퇴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외곽 신시가지 개발로 구도심 인구가 유출됐는데 1985년부터 2010년까지 대구시 중구의 경우 60% 인구가 감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따른 후폭풍으로 경제적 기반이 침체되고 투자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구도심의 건축물, 기반시설 노후화가 심각해졌다.
게다가 개발된 외곽도 문제가 발생했다. 산업시설, 기업이 도시외곽으로 이주하다보니 교통혼잡과 물류비용이 증가하는 비효율이 발생했고 환경적으로도 부담을 주게 됐다.
이에 따라 구도심을 재개발하는 사업이 잇따랐지만 역시 문제가 발생했다. 취지와는 다르게 지대가 가파르게 상승해 임대료가 폭등했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원주민이 어쩔 수 없이 이주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적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도시재생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되는 사업이다. 구도심을 자립가능토록 재생해 인구를 유입시킴으로써 도시외곽의 비효율문제까지도 해결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먼저 각 지역에 맞는 특색사업을 정부지원으로 발전시켜 경제기반 구조를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한다. 또한 마을단위로 임대주택, 커뮤니티센터 등 기초생활 인프라를 공급하고 사회서비스 프로그램을 연계해 주민 삶의 질을 개선하는 마을단위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한다.
도시재생은 노후주택개선, 조경개선을 포함해 도심의 생활시스템을 재생시키려는 사업으로 볼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 ‘신사’를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말로 중하류층이 살아가는 공간에 상류층이 치고 들어와 울타리를 친다는 의미다.
어디까지 진행됐나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7월1일 현재 대통령의 인수위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국토부 도시재생과 주도로 한창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국정기획위는 6월23일 수원시 행궁동 도시재생사업지를 찾아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성공적으로 도시재생이 이뤄진 사례를 참고해 정책을 구체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국토부의 경우 지난 5월부터 ‘범부처 도시재생 뉴딜 협업조직(T/F)’ 구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곧 관계부처와 협의에 착수할 전망이다. 기존 도시재생사업에 문화체육관광부와 중소기업청 등 부처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이 관여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T/F에도 이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된다.
국토부는 이와 함께 ‘릴레이 의견수렴’을 진행하고 있다. 지자체, 연구기관, 전문가 등의 목소리를 사업에 반영하기 위함이다. 의견수렴 절차에는 전국 지자체와 함께 주로 마을활동가, 각 지역 도시재생지원센터 전문가, LH, 국토연구원 등이 참여했다.
국토부의 관계자는 “의견수렴 과정에서 각 지자체의 도시재생사업 노하우, 전문가들의 연구결과, 시민단체들의 활동가 육성요구 등의 의견이 나왔다”라며 “향후 도시재생 뉴딜사업 관련 공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순조롭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50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혈세낭비 논란과 재원마련 방안이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에 더해 각계에서는 막대한 예산사업에서 혜택을 보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자칫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건축업계에서는 이번 정부들어 추진되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 임대료 상한제 등이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반쪽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와 투자가 제한돼 사업자 모집이나 민간자본유치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규제를 강화하지 않으면 투기자본 유입과 과도한 임대료 상승이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이 경우 기존 사회적 문제가 됐던 젠트리피케이션이 반복될 수 있으며 도시재생사업이 부동산정책이 아닌 만큼 사업취지를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린리모델링 녹여내야녹색건축은 기후변화, 온실가스 감축 등 인류적 가치에 따라 국가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정책추진이 부진해 당초 수립한 로드맵이 지연되더라도 언젠가는 달성할 목표다.
이에 따라 이번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에 그린리모델링이 적용되지 않을 경우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사업에서 노후건물을 일반건축으로 리모델링할 경우 십수년 뒤 다시 그린리모델링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 중복투자 가능성이 있다.
또한 그린리모델링은 하나의 사례를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이번 사업처럼 대규모 그린리모델링이 가능한 기회를 놓칠 경우 기축건물의 에너지효율화 목표가 더뎌질 수 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아직 밑그림도 채 그려지지 않아서 사실상 불투명한 상황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사업에 그린리모델링이 포함되기 위해서는 관련 학계, 업계에서 관계 기관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국토부 도시재생과의 관계자는 “녹색건축분야의 의견이 따로 수렴된 것은 없다”라고 밝혔다. 관련 분야의 의견개진 활동이 더욱 활발해져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도시재생사업의 상당부분을 노후시설 개선이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그린리모델링으로 사업이 추진될 경우 5년간 총예산 50조원 중 상당액이 녹색건축에 쓰이게 된다.
녹색건축이 예산부족에 허덕이며 좀처럼 민간확산을 못하고 있는 만큼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